싸움 대신 멈춤을, 오해 대신 이해를 배우며
상쾌했던 새벽 이후로,
우리는 조금 달라졌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다만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줄이기 위해
서로의 안과 밖의 속도를 조율하고 있다.
가족 외출은 여전히 작전 같다.
여전히 내가 나와 아이를 챙기고,
남편은 내가 준비하는 동안 아이를 본다.
시간 감각이 없는 나에게
남편이 집을 나서야 하는 시간을 미리 알려주면
나는 그 시간과 10분 전으로 알람을 맞춘다.
두 번째 알람이 울리면 무조건 외친다.
“나 준비 다 했어.”
이젠, 내 일상이 작은 훈련처럼 느껴진다.
알람 하나에도 마음을 다잡고,
작은 일에도 감정이 흔들리지 않으려 애쓴다.
폭풍은 지나갔지만,
아직 발밑에는 조심스러운 잔해들이 남아 있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다시 다치지 않기 위해 마음을 고르고 또 고른다.
그럼에도 그 잔해 위를 걷는 게, 지금의 평화다.
⸻
발끝에 툭 하고 걸리는 첫 번째 잔해,
그건 바로 완벽히 준비해서
제시간에 한 번에 외출하는 것이다.
한 번에 나가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일 줄이야.
현관 앞에 섰다가 “아! 맞다, 미안!” 하고
다시 들어가는 일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있다.
이제 남편은 잠시 멈칫한 후
작은 한숨을 내쉴 뿐이다.
난 그 한숨에 바짝 긴장하지만,
그게 싸움으로 번지는 일은 거의 없다.
⸻
두 번째 잔해부터는
내 기능적인 문제라 상대에게 미안하고,
때로는 부끄럽기도 한 부분이다.
그 여러 가지 중에서도
요즘 남편에게서 느껴지는 작은 이해와 배려가 있다.
그건 대화를 나누는 몇 가지 순간들에서 드러난다.
내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추면
예전엔 답답해하며 화를 내던 사람이
이제는 “무슨 말하려다가 잊어버렸지?”라며
먼저 알아채준다던가.
충동적으로 말이 튀어나와 대화가 끊어질 때면
나도 그걸 인지하고
“미안, 잊어버릴까 봐 마음이 급했나 봐.”
라고 먼저 사과하면
그 잠깐의 침묵 속에서,
그도 나처럼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는 걸 느낀다.
⸻
미리 감지되는 잔해는 대비할 수 있다.
그 정도의 잔해는
내가 신경을 바짝 세우면 피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면서도
감지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건 나의 ‘감지 기능’ 자체의 문제였다.
가장 위험한 잔해는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누군가의 표정, 잠깐의 침묵,
혹은 나도 모르게 세게 닫힌 문소리 같은 것들.
그 작은 신호들을 놓치고 나면
이미 누군가는 다친 뒤였다.
나는 이제 그걸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눈으로만 보지 않고,
마음으로도 듣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내 안의 속도가 세상의 속도와 부딪히지 않도록,
하루에도 몇 번씩 멈춰 선다.
그렇게 오늘도,
감정의 잔해를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