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자리
밖에서의 나는 여전히 괜찮았다.
오래 묵은 친구를 만나도,
낯선 사람들과 있어도
웃음과 농담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그럴 때면,
조금 특별하게 빛나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집은 달랐다.
아이가 태어난 뒤,
나는 누군가의 세계가 되었다.
가볍게 흘러가던 하루가
책임이라는 무게를 갖기 시작했다.
그 무게가 벅차진 않았다.
오히려 아이가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육아에 과몰입했다.
모든 것이 아이 중심이었다.
영유아 검진을 받는 과정에서
아이의 언어 자극이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내가 더 잘할 수 있었던 걸까?’
부모 상담에서 내 양육 성향도 확인했다.
나는 완벽 점수가 높은 편이었다.
누구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
하지만 그 마음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했다.
“아이가 좀 더 크면,
엄마만의 관심사도 필요해요.
모든 걸 아이에게 걸어두면
서로 숨 막힐 수 있어요.”
그 말이
내 마음 어딘가를 톡 건드렸다.
⸻
그러던 어느 날.
아이 교육 강의를 듣고 나가려던 순간,
부모 상담을 해주셨던 선생님이
밝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요즘 하는 이야기들 보니까,
같이 일해보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예전 같으면
기꺼이 달려갔을 기회였다.
하지만 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좋아하는 일은
직업으로 삼는 순간 싫어진다던데요?
전 그냥… 주변에 좋은 교육 알리고
도움 되는 얘기 나누는 게 좋아요.”
말은 가볍게 했지만
그 선택에는
무겁고 솔직한 마음이 있었다.
⸻
일이 싫은 게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의무가 되고,
즐거움이 성과가 되고,
순수한 진심이 목적으로 오해받을까
그게 두려웠다.
밖에서는
내가 하는 말이 유익해 보일 수 있다.
그런데 너무 가까워지면
‘그 진심에 의도가 있었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나는 그런 시선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가까워지는 건 반갑지만,
그 친밀함 속에서
내 허술함이 드러나는 순간—
그 실망을 마주할 내가 무서웠다.
⸻
그래서 나는 이 지점을 지킨다.
멀어지지도 않고
더 가까워지지도 않는 거리.
나를 보호하면서
관계도 이어갈 수 있는 거리.
그게 지금
내가 안전하게 숨 쉴 수 있는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