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would save me?"
아이가 생겼을 땐
나는 일에서 멀어졌다.
아이가 태어났을 땐
사람도 멀리하게 되었다.
임신과 출산은 나의 많은 걸 바꿨다.
다 떨어진 체력과 면역력…
감정은 하루에도 수없이 오르락내리락, 날뛰었다.
막연함에 눈물과 분노가 반복되었다.
애를 낳았을 뿐인데
나의 세상은 뒤집혔다.
그리고 결국
상사는 조용히 경계를 그었다.
나는 한순간,
옷에 붙은 먼지처럼
아무렇지 않게 털려 나갔다.
내 세상은 뒤집혔고
나는 조용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구하기로 했다.
누가 건져주지 않으니까.
그리고 그 구원의 무게는
고스란히 육아 위에 올려졌다.
아이가 곧 나의 성적표가 되었다.
영유아 검진은
엄마인 나의 점수를 확인하는 시간 같았다.
원장님은 담담하게 말했다.
“아이가 섬세해서 주변의 반응을 잘 느껴요.
특히 부정적인 분위기에는 더 민감한 편이에요.”
“그리고 언어 자극이 조금 더 필요해요.
표현할 때 쓰는 부사와 조사가 아직 부족해요.
대화로 많이 채워주세요.”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있는데,
언어 자극이 부족하다고?
내가 무엇을 놓쳤던 걸까?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내가 모자라서
아이에게 영향을 준 걸까?’
죄책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
‘코어’라는 물고기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만큼 자란다고 한다.
작은 연못에서는 연못만큼,
넓은 바다에서는 바다만큼.
적어도 우리 아이의 세상만큼은
작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
아이 교육과 육아 강의가 있다면
갈 수 있는 모든 곳에 갔다.
틈이 나면 책을 읽고,
궁금한 건 자료와 논문을 뒤졌다.
‘아는 만큼 보인다.’
정말 그랬다.
아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책을 읽어주던 중
아이 손에 다른 책이 들려오면
흥미가 사라진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연결된 주제의 책을 가져온 것이었다고.
그걸 나는
그땐 미처 몰랐다.
⸻
내 ADHD 특성 중
과몰입과 깊이 파고드는 집요함은
늘 나를 힘들게 했던 것들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집중하는 일 앞에서는
누구보다 빠르게 배우고 이해하는
강력한 능력이 되었다.
처음으로
내 ADHD가 고마웠다.
나는 아이 문제에 닿는 한
언제든 비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 사실이
나의 시선을 아이에게서
조금 바깥으로 움직이게 했다.
우리 아이만이 아니라,
아이를 둘러싼 환경.
같이 자라는 친구들.
그 부모들에게까지.
아이의 세계가 넓어지려면
바깥의 세계도 함께 넓어져야 한다는 생각.
그제야 비로소
나는 다시 사람들과의 연결을
생각하게 되었다.
아주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
나는 지금
바깥세상을 차근히 바라보고 있다.
마침표는 찍지 않는다.
이건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