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에 앉아서

안착

by Haro adh


고백 이후,

내 마음은 더 이상 떠 있지 않았다.


안정이라기보다는

자리에 앉았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무언가를 더 증명하지 않아도 되고,

계속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그렇게 멈추자,

그제야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과의 거리,

관계의 결,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차지하고 있던 위치까지.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

살아보겠다고 허우적거릴수록

몸은 더 가라앉는다.


첨벙거리는 사이

부유물들이 떠올라

시야는 흐려지고,

어디가 위인지 아래인지조차 알 수 없어진다.


그럴 땐

힘을 빼고 가만히 몸을 맡겨야 한다.

그러면 몸은 뜨고,

부유물은 가라앉고,

시야가 다시 열린다.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찾아왔다.



그렇게 힘을 빼자,

관계의 부유물도 가라앉기 시작했다.


나라는 사람의 알맹이를 보던 관계와,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의 껍데기만 보던 관계가

조용히 구분되었다.


그리고 그 차이를 바라보다가

하나의 생각에 닿았다.


어떤 관계는

내가 주는 위치에 있을 때만 유지되었고,

어떤 관계는

내가 같은 높이로 서려는 순간부터

어색해지기 시작했다는 것.


받는 쪽에 있을 땐 편안했지만,

주고받는 방향이 달라질 것 같아지자

그 관계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그 질문은

누군가를 탓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관계가 무너진 이유를

조금 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한 것이었다.



남은 관계들은

의외로 조용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고,

증명하지 않아도 유지되었다.

내가 무언가를 더 해내지 않아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안착했다는 감각은

새로운 관계를 얻어서가 아니라,

이미 곁에 있던 것들을

다시 정확히 보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걸.



예전의 나는

내가 인지한 상황이 전부라고 믿었다.


이제는 안다.

내가 본 장면은 일부일 수 있고,

내가 느낀 감정이

항상 전체를 대표하지는 않는다는 걸.


그래서 요즘의 나는

조금 더 멈추고,

조금 더 살핀다.


조심스러워졌지만

위축되지는 않았다.


여전히

관심이 향하는 곳에는

깊게 몰입하고,

흐름을 읽고,

맥락을 정리한다.


다만 이제는

그 감각을

무작정 쏟아내지 않는다.



관계도, 선택도

힘을 주지 않을 때

비로소 제 자리를 찾는다.


나는 지금

그 자리에 앉아 있다.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지 않고,

떠오르려 애쓰지도 않는 자리.


그렇게

조금 더 정확한 시야로

사람을 보고,

나를 보고,

다음 방향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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