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이 기준이 되다

확신은 언제나 아주 별일 아닌 장면에서 시작된다.

by Haro adh


그건 정말 별일 아닌 장면이었다.


누군가의 아이 이야기였고,

나는 습관처럼 귀를 기울였다.

정답을 말하려던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설득하려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흩어져 있던 이야기를

상대가 이해하기 쉬운 순서로 정리해

다시 건네고 있었을 뿐이다.


말을 마치고 나서야

상대의 표정을 보게 되었다.


그 사람에게는

지금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게 하는 기준이 되었다는 걸

그제야 눈치챘다.


나는 잠시 멈춰 섰다.

내가 한 말이

단순한 위로도, 지나가는 조언도 아니었을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이 감각이

집 안에서만 유효한 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동안 나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하기 싫어서도 아니고,

관심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조심스러웠다.

내가 건네는 말이

혹시나 실수가 되지는 않을지,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을지

이미 충분히 겪어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보고, 느끼고, 이해하면서도

쉽게 내놓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은 달랐다.


내가 가진 방식이

누군가에게는

막막함을 건너는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나는 예전처럼 무작정 뛰어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외면하지도 않았다.


내가 파악하고,

상황을 정리하고,

다음에 일어날 일을 예측하며

대처 방법을 함께 생각하는 이 방식이

무모하지도, 과하지도 않다는 확신이

조심스럽게 자리 잡았다.



그래서 나는

고백을 했다.


그동안 오만하게 거부해 왔던 나의 태도에 대해,

망설이면서도 사실은 계속 마음에 두고 있었던 그 감정에 대해.


예전의 나를 정리하고 싶었고,

달라진 마음 상태의 나에게

이제는 다른 선택지를 열어주고 싶었다.


그건 결심이라기보다는

인정에 가까웠다.



나는 여전히 조심스럽다.

사람들 앞에서 한 박자 멈추고,

말을 내기 전 한 번 더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변하지 않는 것도 분명히 있다.


관심이 생기면

끝까지 파고들고,

맥락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누군가의 혼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향.


이제는 안다.

그게 문제만은 아니라는 걸.



아직 모든 것이 정해진 건 아니다.

이름도, 구조도, 속도도

아직은 만들어가는 중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다.


나는 다시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고 있고,

이번에는

내 방식을 숨기지 않고 있다는 것.


마침표는 찍지 않는다.

이건 아직

다음 이야기가 시작되기 직전의 순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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