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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 Nov 12. 2020

첫 번째 항암

일주일간의 정밀검사 결과 간과 림프절까지 전이되었다고 했다. 복강경 수술로 어느 정도 제거하려 했는데 범위가 넓어 항암치료부터 먼저 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드라마에서 본 항암치료는 매우 고통스럽고 유난스러운 거였다. 하지만 현실은 좀 덜 고통스럽고 좀 덜 유난스럽게 지나갔다. 나는 목 언저리에 관을 삽입하는 등 매우 무서운 상상을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평소 맞듯 팔에 링거를 반나절 동안 누워서 맞았다고 했다. 당시 내 동생이 서울에 엄마와 올라갔기 때문에 나는 아빠와 나의 남자 친구를(운전을 교대해줄 사람이 없어서) 대동하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운전을 해서 엄마를 데리러 갔다. 

엄마는 복강경 수술 전 정밀검사 때문에 금식을 많이 해서 이미 살이 많이 내렸었는데 항암치료까지 받으니 더 기력이 없으셨던 것 같다. 그래도 특유의 밝은 성격은 그대로여서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에 휴게실 중간중간 꼭 들려서 본인은 먹지 못하지만 우리는 호두과자나 소떡 같은 것들을 꼭 사 먹어야 한다고 당부? 하셨다. 


암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많이들 강조하는 게 음식을 골고루 잘 먹는 것이라고 했다. 항암이든 수술이든 다 체력이 좋아야 버틴다고 했다. 그래서 평소 요리에 관심도 없던 내가 전담 요리사가 되어 이것저것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엄마는 첫 항암 치료를 받은 후부터 5일 정도 제대로 드시지도 못하고 누워만 계셨다. 오후에 억지로 억지로 산책을 나가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걷지도 못했기 때문에 다리가 특히 말라가고 식은땀을 많이 흘려 온몸에 땀띠가 났다. 


하루는 엄마가 배가 너무 아프다며 끙끙거리며 흐느꼈다. 겁이 많은 엄마는 너무 아프니 엄마 그냥 죽으면 안 되냐고 울먹거렸다.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진통제를 찾아 엄마에게 먹였다. 조금만 참으면 지나간다고 그 말밖에 할 수 없어 답답했다. 차라리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우리 가족에게 기둥이었다. 그런 기둥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차라리 내가 아프고 죽더라도 내가 죽는 게 났겠다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던 것 같다.


하루하루 시간이 더디게 흘러갔다. 조금씩 기력을 회복해가며 먹고 싶은 것이 생기고 산책을 나가면 어제보다 조금 더 걸을 수 있게 되어 희망을 얻었다. 암 진단을 받고 정말 오랜만에 엄마와 농담도 하고 다 같이 집에서 영화도 보게 되었다. 평소와 같은 일상이 다시 기적처럼 찾아온 것이 기쁘고 감사했다.


매일 밤 나는 엄마가 무엇을 먹었는지 무얼 했는지 기록하며 하루를 정리했다. 이렇게 매일 썼던 글을 보며 느끼는 것은 어찌 되었든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매일매일을 살아내는 존재라는 거였다. 그리고 암이 매시간 매분 매초 사람을 절망하게 할 순 없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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