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큰 병에 걸리면 극도의 절망감 다음에 찾아오는 것이 (평범한 월급쟁이라면) 돈에 대한 불안감인 것 같다. 엄마는 금액이 큰 보험을 들지 않아 보험금이 얼마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걱정하셨다. 더군다나 동생은 아직 대학생이고 나는 직장을 때려치우고 공무원 준비를 해서 막 시험이 끝난 상태였기 때문에 모아놓은 돈을 다 써서 집안에 보탬이 될 수 없었다.
우선은 엄마가 들어놓은 보험을 같이 살펴보기 시작했다.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보험관리를 엄마가 전부 하셨기 때문에 30살이 되도록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는 상태였다.
한심했다. 나이를 허투루 먹었다는 자조 섞인 말이 속에서 튀어나왔다.
엄마와 보험사들을 직접 방문하며 엄마의 병이 들어놓은 보험에 해당되는 질병인지 해당된다면 진단금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또한 수술비는 보장이 되는지 또 돈을 받기 위해 필요한 서류들이 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복잡하고 어려웠다.
하지만 몇 군데를 따라다니며 모르는 것을 물어가며 챙기다 보니 겹치는 부분이 생기고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엄마는 적은 액수의 보험을 여러 군데 들어놓아 걱정을 덜 수 있을 만큼의 진단금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왜 보험을 드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매달 내는 액수가 부담스럽지만 이렇게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 큰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준비해야 될 서류가 덜 까다롭고 넓은 범위까지 보장이 되는 보험사가 어떤 곳인지도 비교할 줄 아는 눈이 생겼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월급을 받고 적금을 들고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일보다 병원을 알아보고 보험 증권을 들여다보며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거나 집에 냉장고나 정수기가 고장 나 사람을 불러 고치는 사소한 일들에서 오히려 나는 내가 더 어른스러워짐을 느꼈다. 또 그만큼 내가 철저히 집안일에는 무관심을 했음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