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의 힘

by 진성이

우리는 종종 특별한 순간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인생을 바꿀 기회, 극적인 변화, 눈에 띄는 성과 같은 것들. 하지만 막상 하루를 돌아보면 대부분은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씻고, 같은 길을 지나 출근하고, 비슷한 자리에서 일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처음에는 이 반복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매일 비슷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어딘가 정체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남들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은데, 나만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다. 반복은 멈춤이 아니라는 것을.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그 안에서는 분명히 작은 변화들이 쌓이고 있다는 것을. 어제보다 조금 능숙해진 손놀림, 지난번보다 덜 흔들리는 마음, 전보다 빠르게 정리되는 생각들. 눈에 띄지 않을 뿐, 반복은 우리를 조금씩 앞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를 떠올려본다. 첫날은 숨이 차고 몸이 무거웠다. 둘째 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 몇 주가 지나자 몸은 조용히 적응하고 있었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지만, 어느 날 문득 계단을 오르는데 예전만큼 힘들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게 바로 반복의 힘이었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한 번의 거창한 이벤트보다, 매일 건네는 짧은 안부 인사가 더 오래 남는다. 화려한 말보다 꾸준한 태도가 신뢰를 만든다. 반복되는 관심과 배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두께를 만든다. 그리고 그 두께가 관계를 단단하게 지탱한다.


공부나 일도 그렇다. 하루에 몇 시간씩 책상 앞에 앉는 일은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그 시간이 쌓이면 생각의 깊이가 달라진다. 한 번에 도약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사실은 수많은 반복의 시간을 통과했을 가능성이 크다. 반복은 느리다. 그래서 불안하다.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빠른 변화를 좋아하고, 눈에 보이는 성취를 원한다. 하지만 인생의 많은 것들은 느린 속도로 자란다. 나무가 자라듯, 계절이 바뀌듯, 조금씩 그리고 꾸준히.


돌이켜보면 나를 지탱해온 건 거창한 결심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 다시 일어나는 일, 하기 싫어도 자리에 앉는 일, 지쳐도 포기하지 않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이었다. 대단해 보이지 않는 그 행동들이 결국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반복은 우리를 단단하게 만든다. 같은 일을 계속한다는 것은 지루함을 견디는 힘을 기르는 일이기도 하다. 그 시간을 통과한 사람만이 얻는 안정감이 있다. 쉽게 흔들리지 않는 마음, 쉽게 포기하지 않는 태도. 오늘도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게 성장하고 있다. 반복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가장 조용하게 무언가가 완성되어 가는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반복을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 느려도 괜찮다.

같은 하루를 또 살아낸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충분한 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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