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조금 깊어지면 이상하게도 편의점이 생각난다. 배가 고픈 건 아닌데, 뭔가 하나쯤은 더 필요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슬리퍼를 신고 집 앞 편의점으로 향한다. 자동문이 열리며 들려오는 짧은 멜로디. 형광등 아래 진열된 물건들은 낮보다 더 또렷해 보인다. 삼각김밥, 컵라면, 과자, 아이스크림. 특별할 것 없는 물건들이지만, 밤이라는 시간과 만나면 괜히 더 솔직해진다. 낮에는 참았던 것들을 밤에는 쉽게 집어 들게 된다.
나는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 오늘의 기분에 맞는 물건을 고른다. 유난히 지친 날에는 따뜻한 컵라면을, 기분이 괜히 허전한 날에는 달콤한 초콜릿을,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싶었던 날에는 캔커피 하나를 고른다. 계산대 위에 물건을 올려두는 순간, 오늘 하루의 마음 상태가 조용히 정리되는 기분이 든다. 계산을 마치고 봉투를 들고 나오면, 편의점 불빛이 유난히 환하게 느껴진다. 그 밝음은 위로라기보다 확인에 가깝다. “오늘도 수고했어”라고 말해주는 대신, 그저 환하게 서 있을 뿐이다. 그래서 더 좋다. 괜한 조언도, 과한 공감도 없다. 그냥 그 자리에 있는 빛.
가끔은 편의점 앞 플라스틱 의자에 잠시 앉아 캔을 따기도 한다. 밤공기가 생각보다 차갑고, 멀리서 자동차 소리가 들린다. 같은 동네에 살지만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던 사람들도 이 시간에는 스쳐 지나간다.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르지만, 같은 시간에 같은 불빛 아래를 지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묘한 동질감이 생긴다. 편의점은 거창하지 않다.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지도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그날 밤의 공백을 잠시 메워준다. 텅 빈 냉장고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 안보다, 형광등 아래의 진열대가 더 따뜻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봉투 안에서 비닐이 바스락거린다. 사소한 소리인데도 이상하게 안정이 된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생각한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작은 것들로 채워지는구나 하고. 내일 아침이면 다시 평범한 일상이 시작되겠지만, 적어도 오늘 밤은 편의점 불빛 아래에서 잠시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