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극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다양한 직업과 다양한 성격이 있고,
너무나도 많은 인생이 있었다.
시행착오가 많은 질병들이 있었고, 정치적인 분란, 전쟁, 가치관들.
억울한 사람들,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들,
이 세상은 주인공만 대체되는 언더스터디들의 향연 같아.
마치 처음 등장한 히어로처럼
이 시대를 관통하는 무언가가 나타나는 것처럼 놀라워들 해.
그런데 그런 역할은 시대마다 있었어.
그리고 소시민, 평민의 삶으로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들이 늘 있었어.
그것은 어떤 때는 해학적으로, 신파적으로, 풍자적으로, 감동적으로, 긍정적으로 해석되기도 했지.
그래서 요즘은 나는 왜 세상이 계속 반복되고 인생을 환생한다고 표현하는지 알 것도 같아.
주인공만 바뀌었고 내용이 똑같으니까.
사소한 소재들만 바뀌는 거지.
마치 한참 유행하는 탕후루처럼 말이야.
마치 한참 유행하는 드라마의 소재만 바꿔서 몇 년 뒤에 재등장, 각색되는 것처럼 말이야.
마치 한참 유행하던 옷스타일이 되돌아오는 것처럼 말이야.
삶이 무의미하기도 했지.
지금은 삶이 그래서 무의미하다는 건 아니야.
그냥 가끔 우습다고 말하는 거야.
너무 당연한 시간들에 너무 격정적으로 웃고 울고 슬퍼하고 분노하던 내가 사실은 이미 반복되고 있던 모습인 거니까.
그래서 환생한다고들 하나 봐.
다시 태어나도 똑같으니까.
물론 그걸 말한 사람은 다른 뜻으로 말한 거겠지만.
그래서 요즘엔 사랑도, 욕망도, 꿈도 다 시시해졌어.
이미 루트가 다 비슷한 듯 결말엔 그랬습니다. 했다는 게 참 뭐랄까 기운이 빠지지 않아?
누군가는 그런 대열에 속해 보고 나서나 그런 얘길 떠들라고도 하겠지만.
달리기 시작 전에 경주의 끝을 보고 왔다면, 아니면 달리는 그 과정의 의미 자체가 트랙이 전부라면.
그걸 알고도 미친 듯이 뛸 수 있겠어?
그런 사람이야말로 현실을 즐기는 사람 같기도 하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더더욱 몽상가 같아.
무언가 대단한 걸 기대했나 봐.
그래서 우울한 걸까.
사실 그렇게 우울하지도 않아.
그냥 이 세상이 반복되는 이 굴레가.
우리가 아이를 낳고, 경제가 반복되고, 역사가 반복되고.
그런 일개미 같은 삶이 조금 허무할 따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