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트루 Mar 29. 2019

<바이스> 풍자와 코미디를 살짝 넣은 공포 영화

브런치 무비 패스 #2

*스포일러와 영화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이 있습니다.

**[브런치 무비 패스]의 후원을 받아 관람한 후기입니다.




이 심플한 포스터 한 장이 질문을 던진다.

부통령이 세상을 바꿀 수 있나요?

그리고 대답한다.

안될 게 뭐예요?



#<빅 쇼트>의 아담 맥케이, 이번엔 정치 풍자극이다.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을 비롯한 총 8개 부문 후보에 올라 분장상을 수상한 영화 <바이스>는 쟁쟁한 연기파 배우들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소재로 재치 있는 경제학 강의를 보여준 <빅 쇼트>의 아담 맥케이 감독의 만남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다.

이 영화는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 재임 시절, 정부에서 대통령을 제치고 최고 실권자로서 미국을 주물렀던 '딕 체니'의 일대기를 그린다. 대통령이 아닌 부통령을 소재로 한 영화라는 것부터 심상치 않은 이 영화는 역시나 코미디 영화들로 인정받은 맥케이 감독의 냉소 가득한 시선과 신선한 위트를 한껏 보여주며 딕 체니의 삶을 보여준다. 


딕 체니의 젊은 시절부터 시작해 미국 최고의 실권자가 되기까지의 일대기가 다소 지루할 수 있는 정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거의 복사기 수준의 연기와 감독의 독특하고 날카로운 시선이 만나 몰입감을 높이며 매우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그리고 미국 대통령을 한낱 허수아비로 만들고 실제 정권을 휘두른 딕 체니가 어떻게 '부통령'이자 동시에 '악(vice)'인지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고무줄 몸무게'로 유명한 크리스찬 베일. 완벽하게 딕 체니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Vice : 악; 범죄, 악덕 행위, 비행

영화의 제목인 '바이스(vice)'는 사전적 의미로 '악, 범죄, 악덕 행위, 비행'을 뜻한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인공인 딕 체니(크리스찬 베일)가 맡은 극 중 역할이 미국 부통령이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vice 뒤에 president만 붙이면 '부통령(vice president)'이 된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부통령인 그가 곧 '악'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처럼 맥 케이 감독은 심플하고도 함축적인 이 영화 제목을 통해 마치 보란 듯이 직격탄을 날린다. 


<바이스>는 과묵하고 성실했던 국회 인턴인 딕 체니가 결국 부통령으로서 어떻게 권력을 이용하여 대통령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실제 정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변모해가는지 보여준다.

딕 체니는 젊은 시절 술에 빠져 학업을 내팽개친 문제아로 대학을 중퇴하고 돈을 벌기 위해 전봇대 위에서 전선을 설치하는 인생을 살며 밑바닥을 찍는다. 하지만 약혼자 린(에이미 아담스)이 그런 딕 체니의 모습을 견디지 못하고 최후 경고를 하자 그는 자신의 인생을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는다. 

그 뒤 국회 인턴을 하게 된 딕 체니는 뭐든지 시키면 과묵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자세로 도널드 럼즈펠드(스티브 카렐)에게 총애를 받아 정계에 드디어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의 도움으로 백악관에 작은 집무실을 가지게 된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아내가 된 린에게 전화를 하며 즐거워하는 그저 욕심 없는 젊은 정치인이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딕 체니는 대통령에 출마하고자 한다. 하지만 당시 사회에서는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는 '동성 간의 사랑’이었던 딸의 레즈비언 선언으로 모든 기회와 욕망을 내려놓고 정계에서 물러난다.


이처럼 극 초반까지는 바라던 대통령이 되지는 못했지만 대통령 수석보좌관을 비롯한 국방부 장관 등을 역임한 그가 정치보단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남자로서 좋은 인상을 남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역할을 맡은 샘 록웰


그러나 전직 대통령인 아버지 조지 부시의 후광만 믿고 날뛰는 망나니 아들 조지 W. 부시가 자신에게 부통령 자리를 제안한 그 순간, 딕 체니는 그에게 내재되어 있는 정치와 권력에 대한 야망이 다시 샘솟기 시작한다. 결정적으로 그의 법률 자문가가 부통령 자리에서도 국회와 사법부의 간섭 없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는 조지 W. 부시의 제안을 승낙한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지 W. 부시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부통령이 된 딕 체니는 자신의 측근들을 정치계 여기저기 심어두며 행정부를 장악하고 이라크 침공과 애국자 법을 통과시키며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특히 9.11 사태 후, 이라크와 알카에다 테러집단의 연관성이 없으며 국민들이 이라크 전쟁에 대해 의문을 갖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뜻대로 의미 없는 전쟁을 일으킨 딕 체니는 미국의 법을 따르는 것이 아닌, 미국의 법을 만들어가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모든 걸 이뤄낸 부조리하고 악랄한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

이러한 딕 체니의 행보는 자신이 전 CEO로 있었던 세계 최대 석유 기업인 '핼리버튼'이 500% 이상 성장하는 기적과 같은 성과를 이루게 되며 개인적인 부와 권력을 동시에 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와 대비되게 보여준 이라크전에 참전한 미국 군인의 자살률이 30% 증가했다는 것과 결국 이라크에는 대량 학살 무기가 없었다는 자막은 더욱더 딕 체니의 악랄한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영화의 신선하고 독특한 표현

지극히 부조리하며 개인의 욕망에 의해 수십 년 간의 미국 역사와 세계 역사가 흔들린 진실을 코미디 출신 감독인 맥케이는 다양한 그만의 방법으로 표현해낸다. 그리고 그런 방법은 나에겐 제대로 먹혔다.

<바이스>를 보면서 가장 신선하고 독특해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



첫 번째는 조지 W. 부시가 딕 체니를 자신의 러닝메이트이자 부통령으로 함께 하자고 설득하는 장면과 딕 체니가 낚시를 하는 장면을 교차하며 보여준 부분이다.

어떻게 보면 조지 W. 부시가 딕 체니를 살살 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것조차 딕 체니가 오히려 그를 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결국 물고기가 미끼를 문 것은 조지 W. 부시가 미끼를 문 것으로 보인다. 결국 딕 체니의 낚시는 성공한 것이다.  

이로써 그는 자신이 원하는  군사, 에너지 자원 부서 및 외교 정책과 같은 위임권을 갖게 되며 실질적인 정치계 행사인으로 등극한다.


두 번째는 뜬금없는 엔딩 크레딧의 난입이다.

조지 W. 부시의 러닝메이트 권유 전화를 받은 딕 체니가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이를 거절하며 행복한 노년을 보내는 모습이 나오는데 갑자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설마 이렇게 끝나진 않겠지 하면서도 이렇게 끝나지 않을 영화인걸 알다 보니 이조차도 매우 재밌었다. 결국 엔딩 크레딧이 다시 내려가며 딕 체니가 조지 W. 부시와 만나는 장면이 나오고 극적으로 타결하는 모습이 연출되는데 이조차도 맥케이 감독의 재치가 엿보인다. 

그냥 그렇게 딕 체니가 정치계에서 물러나 가족과 함께 노년을 보냈다면 그도 행복하고 미국도 행복했을 텐데 하는 바람을 재미있게 풍자적으로 그려냈다.


세 번째는 이라크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생방송을 하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떠는 한쪽 발이 곧 전쟁으로 인해 떨고 있는 이라크의 무고한 시민의 발 떨림으로 바뀌는 모습이다. 이는 한 사람의 욕심이 가득 찬 집권과 결정이 세상을 어떻게 바꿨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며 감독이 말하고자 한 딕 체니의 악랄한 부분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고한 사람들의 떼죽음. 그리고 나중에 밝혀진 실존하지 않는 이라크의 대량 학살 무기. 그렇다면 딕 체니는 과연 무엇을 위해 전쟁을 한 걸까? 관객들로 하여금 되묻게 한다.


네 번째는 딕 체니가 그의 측근들과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장면이다.

웨이터가 건넨 메뉴판에는 온갖 그들이 저지른 악법들로 채워져 있다. 오늘의 스페셜 요리처럼 아무렇지 않게 다양한 악법을 권하는 웨이터에게 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악법들을 주문하는 그들의 모습은 감독의 위트가 느껴져 매우 인상적이었다. 

미디어와 정치 문건 조작, 고문 법 통과 등 수많은 악행과 악법들. 결국 그들은 아주 훌륭한 저녁식사를 마쳤고 그것은 결국 미국을 위한 것도 아닌 오직 그들만을 위한 리그였다.



#결국 이 영화는 풍자와 코미디를 살짝 넣은 공포 영화이다.

이처럼 맥케이 감독은 낚시를 통한 비유 및 상징과 뜬금없는 엔딩 크레딧의 난입, 암전 효과와 함께 셰익스피어 희곡 스타일로 연출 전환, 그리고 내레이터의 죽음을 보여주는 등 단순히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에 대한 재현이 아닌 시중 일관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며 영화를 끌고 간다. 

자칫 사실에 기반한 '재현'보다 '비판' 쪽에 무게가 실려 영화가 균형을 잃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이 조차도 바로 감독이 말하는 미국 사회의 한 측면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방향성을 잃은 힘', 그것이 영화가 딕 체니를 통해 투영한 미국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일각에선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선거 문제와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에 대한 문제, 애국 법에 대한 문제들은 이미 15년 전 감독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에서 다룬 문제여서 다소 신선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심지어 블랙코미디라는 형식마저도 동일한 부분이 많아서 아담 맥케이의 <바이스>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개성을 느낄 수 없어 아쉽다는 평이 많다.

이와 덧붙여 내 경우에는 극 중 이라크 참전 군인으로 나오는 내레이터가 대부분의 상황과 딕 체니의 심정을 대변하여 말해주긴 하지만 딕 체니에 대한 전기 영화로 보기엔 그에 대한 심리 묘사가 거의 없던 부분이 아쉬웠다. 그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왜 그런 악법들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이유가 권력에 대한 야망 혹은 욕심이라고 하기엔 그의 이야기가 다소 부족하다고 느꼈다. 

물론 그도 그럴 것이 딕 체니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비해 잘 알려진 사람도 아니고 오히려 이번 영화를 통해서 그를 알게 된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만큼 대통령 뒤에 은닉하며 모든 것을 그의 뜻대로 휘두른 사람, 그게 바로 딕 체니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담 맥케이는 실제와 가장 비슷한 재현을 통해 부통령 딕 체니의 악랄한 모습을 고발하면서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의 책임이 전적으로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그는 그저 한낱 꼭두각시였을 뿐, 실제로는 딕 체니가 조정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이건 나조차도 이번 영화를 통해서 알게 된 부분이고 많은 사람들도 그러할 것이다.

한 사람의 잘못된 생각과 악랄함이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고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뜻대로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해 존재하던 법마저 자신의 입맛대로 뜯어고쳤다.

이것이야말로 그 자체로 공포 영화가 아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 정권 시절 백악관 서버에서 사라진 이메일 수만 22,000,000개라고 한다. 

어떤 방향으로 힘을 쓸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하면 힘을 쓸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

내가 직접 힘을 행사하겠다는 생각이 아닌, 내가 직접 행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힘이 발휘되기를 바라는 욕망. 모든 것들이 앞서 말했던 '방향성을 잃은 힘의 논리'굳혀지며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지금도 뉴스와 인터넷을 통해서 쉽게 있다. 


꼭 딕 체니가 아니더라도 딕 체니와 같은 인물은 늘 존재한다. 

다만 아담 맥케이 감독은 그 시절 딕 체니라는 인물을 대표 삼아 우리에게 신랄한 풍자와 위트로 비판하고 있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은 무엇을 믿고 있습니까? 영화 <우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