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시사회 영화 리뷰, 영화 <조, Zoe>
* 스포일러와 영화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이 있습니다.
**[영화 온라인 마케팅사]의 후원을 받아 관람한 후기입니다.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의 눈빛만으로도 하루가 행복했다. 그런 그도 나를 싫어하는 것 같진 않다. 용기를 내어 내 마음을 고백했다. 차라리 거절을 하면 좋았을 텐데. 그가 하는 말은 날 당황스럽게 만든다.
"조, 너는 내가 만든 로봇이야."
혹시 이 사랑도 설계된 걸까.
로봇과 사랑에 빠질 수 있나요?
연애 성공률을 예측해주는 연구소에서 일하는 조(레아 세이두)는 함께 일하는 동료인 콜(이완 맥그리거)을 짝사랑한다. 어느 날 자신의 마음을 콜에게 고백한 조는 자신이 인간이 아닌 로봇임을 알게 되고 매우 혼란스러워한다. 대체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나는 과연 누구일까?
로봇을 주제로 한 영화는 이미 많았다. 특히 로봇과 사랑에 빠진 인간이란 스토리는 영화 <그녀, HER>에서 다룬 적이 있다. <조>와 <그녀> 모두 인공지능 로봇, 인공지능 운영체제와 인간과의 사랑을 담고 있는 스토리지만 차이점은 존재한다. 굳이 꼽자면 <조>는 인공지능 로봇이고 <그녀>는 인공지능 운영체제이다. 뚜렷한 실체가 있고 없고의 차이. 바로 그 점이 주인공 조와 콜의 사랑과 비극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조는 콜이 만든 로봇이다. 정확히 인간과 똑같은 모습과 감정, 기억 그리고 행동을 주입한 로봇이다. 연구실의 모든 사람이 조가 로봇인걸 알지만 본인인 조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콜은 자신이 만든 조가 날이 갈수록 진화해 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점점 인간과 구분이 어려워지는 조. 그런 그녀가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한 순간, 콜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린다. 그리고 자신이 로봇임을 알게 된 조 역시 굉장한 감정의 동요와 현실에 대한 뚜렷한 자각을 보여준다.
영화 <조>는 인간 콜과 그가 만든 로봇 조가 서로에게 치명적으로 끌리지만 인간과 로봇의 사랑이라는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며 일어나는 감정과 딜레마를 현실적이고 아름답게 보여준다. 관객들로 하여금 '과연 나는 로봇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만들며 동시에 '진짜 사랑은 어떤 것일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인스턴트 음식 말고 인스턴트 사랑, 그리고 조 2.0
내가 이 영화를 높이 평가하는 점은 단순히 인간과 로봇의 사랑을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표현했다는 사실에 그치지 않는다. 로봇이 아니어도, 사람과 사람, 사람과 그 무엇이든 간에 이뤄지는 사랑이라는 본질적인 것에 대해 질문을 하고 고민하게 만든다. 예를 들자면 지금껏 과연 나는 '잘 사랑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 말이다.
조는 사실 베타 로봇이다. 조가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회성에 문제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콜은 이를 기반으로 '조 2.0'이란 로봇을 만든다. '당신의 완벽한 반려자가 될 것입니다. 결코 당신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조 2.0의 광고 문구이다. 조 2.0이 왜 만들어졌는지 감이 오지 않는가.
조 2.0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벌어지는 쓸모없는 감정싸움과 외로움, 결핍 등 그 어떠한 부정적인 것들을 겪지 않아도 되는 완벽한 이상형이다. 오직 당신을 위해서 살아 숨 쉬며 당신에 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행동하고 사고한다. 더 이상 당신은 사랑과 사람, 그 어느 것으로부터 이별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물론 로봇과의 사랑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깊은 사랑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위해 존재하는 신약이 있다. '베니솔'은 섭취하는 즉시 두 시간 동안 함께 섭취한 사람과 열렬히 사랑에 빠진다. 아주 격정적으로 처음 사랑에 빠진 것 같은 효과를 준다. 그렇게 사람들은 인스턴트 사랑에 빠지고 점점 걷잡을 수 없이 베니솔의 사용자가 늘어간다. 하지만 두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남이 된다.
조 2.0과 베니솔. 모두 인간이 개발한 제품이다. 오직 인간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과연 더 나아졌다고 봐야 할지 의문이 든다.
인간은 점점 사랑에 대해 겁을 낸다. 사랑을 하기도 전에 이별과 상처 그리고 외로움에 겁을 낸다. 점점 소극적으로 변해가는 사랑에 대한 자세는 조 2.0과 베니솔에 더욱 열광하게 만든다.
인간에게 상처 받기는 두렵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사랑과 완벽한 관계를 꿈꾸는 현대인들. 조 2.0과 베니솔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은 서로 다른 존재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조>는 결국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 로봇에서 진짜 인간이 되어 버린 조와 그녀를 만든 콜의 사랑이야기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로봇과 인간의 사랑은 결국 아름답게 마무리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콜과 조가 겪었던 현실적인 부분에 대한 감정의 변화는 매우 자세하고 그리고 매우 서정적으로 묘사가 된다.
콜이 조를 만들었던 이유는 이미 사랑에 한 번 실패를 했고 외로웠고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더욱더 조를 만드는 일에 집중했고 결국 성공한다. 자신이 만든 창조물이 스스로 감정을 느끼고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콜은 성공과 혼란스러움을 동시에 겪는다.
하지만 조가 피를 흘리는 대신 실리콘과 같은 물질을 흘리는 사실을 눈으로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 콜은 이별을 선택한다. 조 역시 자신이 수술대에 오르는 순간, 콜과의 이별을 직감한다.
결국 둘은 그렇게 완벽하게 이별했다. 마치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처럼.
하지만 조와 콜은 서로를 그리워한다. 조가 로봇이라는 사실만 빼면 그 둘은 완벽했다. 콜은 그녀를 오직 자신을 위해 만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자신도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감정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순간, 그 둘은 다시 재회한다.
영화에서 그 둘은 존재라는 벽을 뛰어넘는다. 존재의 다름을 인정하고 오히려 그것을 뛰어넘는 사랑을 보여준다. 헤어지는 것보다 서로를 향해 사랑을 확인하고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이 더 나음을 깨닫는 순간, 그 둘은 더 이상 로봇과 인간이 아니다. 그저 '하나'일뿐이다.
기술이 마음 속 결핍을 메울 수 있었다고 믿었던 콜에게 더 이상 기술이 아닌 오직 조라는 존재가 그의 결핍을 채워준 것이다.
사랑은 어렵다. 하지만 해 볼만 하다.
사랑은 어렵다. 상처 받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한다. 처음에 강하게 이끌렸던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시들어간다. 잘 극복하는 연인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연인들이 더 많다.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언제쯤 자신의 진짜 상대를 만날까 고민한다.
그래서 로봇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헛된 만남과 쓸데없는 감정 소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니깐. 오직 자신에게만 길들여지고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로봇은 당신에게 상처를 주지도, 외로움을 주지도 않는다. 오직 사랑과 행복을 선사할 것이다.
그렇게 기술이 당신의 마음속 결핍과 외로움을 채워준다. 하지만 정말 그게 최선일까? 정말 우리는 로봇과의 관계만이 상처 받지 않는 최상의 연애를 한다고 볼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해답은 찾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언젠가는 그 해결책을 찾아낼 것이라고 말해준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영화를 보는 순간에도 그 고민은 이미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말했듯이 사랑은 어렵다. 그럼에도 사랑은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든 로봇이든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말이다.
서로 다른 존재가 만나서 사랑을 한다는 건 어찌 보면 아름답지만 잔인하다. 행복을 주는 동시에 상처를 주기도 하니깐. 모든 존재는 완벽하지 않기에 실망을 주는 건 어쩔 수 없다. 노력하지만 극복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우리는 다른 세상을 만난다. 나의 또 다른 면을 보고 또 다른 나를 발견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더 강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상대에 대한 진심 어린 걱정과 눈물, 그리고 이해를 하게 된다. 그렇게 상처와 눈물을 겪고 이해와 포옹을 경험하는 순간, 그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는 단순한 로봇과 인간의 사랑을 담은 영화가 아니다. 사랑에 대한 본질과 이해를 담고 있는 고차원적인 소재를 다룬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메시지는 아주 천천히 서정적으로, 섬세하고 아름답게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마치 사랑에 대한 고민과 해답을 찾기 어려워하는 관객들을 배려하듯이 말이다.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사람, 혹은 당신 곁에 있게 될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깊은 생각이 든다면 주저 없이 이 영화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적어도 나는 도움이 많이 되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