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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 연구생활 Nov 07. 2022

저는 행복한 박사과정을 보냈습니다.

박사과정을 선택한 이유

 저는 학부 09학번으로 전자전기공학 전공자입니다. 그때 당시 저는 수업에서 무선 이어폰 그리고 골 전도 이어폰이 곧 나올 것이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수업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다 실현된 기술들입니다. 

 

진부한 과학기술 발전 이야기는 건너뛰고, 사회에선 내가 아니어도, 다시 말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들은 곧 사라진다는 두려움이 싹트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상하게도 컴퓨터의 발전 그리고 AI의 발전이 뼈저리게 무서웠습니다 (ENTJ). 그 기술들이 어떻게 실현될지, 그리고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얕은 제 지식으로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거든요.

 

제가 내린 결론은 

 

창의적 생산 노동 이외의 노동력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단순 계산, 단순 노동, 단순 관리자의 역할은 이제 필요 없어질 것이 자명했습니다. 

 

저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였습니다.

“회사는 가지 말자!....”

“혹시 가더라도 창의적 연구를 할 수 있는 직종으로 가자”

 

특히나, 저는 터미네이터를 보고 자란 세대이기 때문에 다음 세대 기계나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더 두려웠을지도… 모르겠네요) 

2011년 그래핀이 노벨 물리학 상을 받으며 더 실감 나기 시작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인데 엄청난 전도성을 가지고 차세대 반도체를 이끌 것이라는 기사들도 제 이목을 끌었습니다.

 

저는 ENTJ이기 때문에 행동력이 빠릅니다!

바로 3학년이 되던 해 (2011년 해), 저는 모교에 학부 연구생으로 그래핀 연구실에 들어갔습니다. 모교는 그래핀 연구에 총력을 쏟고 있던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일단 트렌드에 맞춰 어디 한번 ‘찍먹’ 해보자는 마인드도 없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학부 연구생으로 첫 출근하는 날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따닥따닥 붙어있는 닭장 같은 대학원생 오피스에 홀로 앉아 있는 선배님이 계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실험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키는 크고 마른 체형에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는 박사과정 선배님이 본인 오피스에 앉아서 열심히 ppt를 만들고 계셨죠. 저는 가방을 고쳐 메고 선배님이 계신 책상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날아든 첫 질문이 있었습니다.

“너 밴드갭은 아니?” (대충 엄청 기초적인 질문임)

 

저는 그 당시 제가 좋아하는 것만 주로 재미있게 듣고 흥미 없는 과목들은 별로 공부도 하지 않던 시기라 학점이 난장판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자재료공학은 제 주 종목이었습니다. 그걸 알고 저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싶었죠.

 

그런데 제가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밴드 갭을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누구 앞에서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여기서 깨달았죠.

 

그 선배님은 저에게 밴드갭을 물어본 게 아니었습니다.

그 선배님은 저에게 소통능력을 알아보려 질문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학부 연구생으로 있던 랩은 정말 빡센 연구실로 유명했었죠, 실험 내용 정리 및 발표가 너무 힘든 연구실이라 선배님은 이런 것부터 저에게 트레이닝을 시켜주셨습니다. 처음엔 차가워 보였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대학원생은 원래 바쁘고 정신없잖아요.

 

저는 이러한 점을 대학원 와서, 그리고 박사과정이 된 후에 깨달았습니다. 너무도 고마운 선배님이었고, 데이터 플랏 ppt정리 그리고 아이디어 만들기 등 저랑 많은 것을 함께 해주셨습니다.

선배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후배는 좋은 기초 질문을 하고, 선배는 항상 대답할 준비해야한다고”

저는 아직도 이부분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담으로 제가 실험에 욕심이 좀 많았는데, 그걸 알아봐 주시고 항상 새벽까지 실험이 길어지면 항상 제가 집에 갈 수 있는 첫차 시간까지 (새벽 5시) 피시방에서 LoL을 같이하며 놀아주곤 하셨습니다.

 

지금 돌아봐도 정말 대단한 선배였고, 본받을 점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첫 사수 선배님은 초대 글로벌박사펠로우에 선정되고, 저명한 저널에 논문을 다수 출판하신 후 대기업 연구부서로 가셨습니다. 지금은 잘 살고 계시겠지요? 보고 싶습니다.)

첫 사수로 이렇게 좋은 선배를 만나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이번 편에 한줄평: 

저는 참 인복이 많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선배님이 계신 연구실로 진학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판단은 정말 중요했고, 지금 생각해봐도 잘했던 것 같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


필자의 한줄 생각:

“연구자는 세상에 아직 밝혀지지 않는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에 위험한 것을 처음 만드는 사람도 연구자이며, 위험을 인지하고 대비책을 만드는 사람도 연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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