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자기 멋대로 살아야 하겠지
삶의 궤적을 돌아볼 때가 있다.
거의 50이 되었다. 대충 인생의 반환점을 돌았을지도 모르는 나이다.
죽어도 꼰대가 되기는 싫다. 그러나, 내 삶을 종종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를 좋든 싫든 따르는 젊은 친구들에게 내 속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나는 두 명의 박사학위를 준비하는 학생이 있다. 이 두 친구는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열심히 노력한다. 요즘 보기 드문 친구들이다.
"직장에 적당히 다니다가 휴직 수당 받는 친구들을 보면 말이 안 나와요."
내가 유도한 질문에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는 친구들이다. 비인기 학문 분야에서 무엇인가 자신의 길을 가는 친구들이니, 어쩌면 아무렇게나 사는 듯이 보이는 친구들이 잘 나가는 모습을 보면 어찌 마음이 편할까.
"왜, 서울대 대학원으로 진학하지 않았어? 요즘은 서울대 이공계열 대학원도 지원하면 합격하는 것이 예전보다 쉬워졌을걸?"
"공무원 준비에는 관심 없어?"
지도교수는 학생들을 보면 늘 좋은 마음을 갖는 법이다. 내 무슨 구석이 좋다고 따르는 친구들이다. 처음에는 어떻게 지도를 해야 할까 하는데 큰 부담감도 있었다. 다른 사람의 삶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개인의 소신도 한몫했던 바다. 그런 내가 두 친구의 마음을 잘 알면서도 종종 앞의 두 질문을 하곤 한다.
삶과 공부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데, 처음의 마음 같겠냐고 묻는 게다. 처음 몇 년은 정말 힘들었다. 연구실을 새롭게 구성하고 세운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부임하고 나서 실험실은 아무것도 없고, 우리 학교는 서울에 위치하였으나, 연구의 속성상 지방에 위치한 농장과 협업 파트너들을 수시로 방문하여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식물 개발을 연구하다 보니, 짠내 나는 서해안 간척지도 다니고, 여러 도농업기술원, 지금은 전라남도 해남 땅끝도 가곤 한다.
첫해에 두 친구를 차 뒤에 태우고 몇 시간을 운전해 가서, 같이 작업하고 다시 운전해 올라오는 일이 잦았다. 몰려오는 졸음을 참아가면서 옆에서 뒤에서 열심히도 쫓아다니는 제자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말하게 되었다.
"자식은 낳는 순간부터 떠나보내기 위해 키운다. 제자는 남으로 태어나 함께 살게 되는 것이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나와 공부한 지 4년이 되어가자, 스스로 연구계획과 실험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국제 유수 학회지에 몇 편의 논문도 내고, 새로운 신품종과 특허도 여럿 같이 내었다. 기술이전을 하여 받은 로열티와 논문 게재에 대한 장려금도 받아서 나눴다. 늘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데, 자식도 커서는 남이듯, 아직 내 자식 같지만은 않은 법이다.
이제 내년에는 어떻게든 새 환경으로 보내고 싶은 마음이 그득한데, 우리 전공에는 이렇다 할 기업도 부족하고, 그나마 번듯한 일자리는 연구직 공무원이라, 그 이야기도 꺼내 보게 된다. 사실, 연구직 공무원이 될 것 같았으면 왜 나에게 와서 이 고생을 했을까. 시험 봐서 직장 빨리 얻고 파트타임으로 경력도 인정받으면서 학위를 받아도 될 것을.
이런 질문을 할 때마다 살짝 그림자 드리워진 안색을 보자면, 나 스스로 연구자의 철학과 신조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이제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다시 제자들의 앞날을 고민하게 된다.
예전에 국제벼연구소(IRRI)라는 기관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오랫동안 하였다. 5년쯤 되어도 기회가 안 오는 데다가 몇 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서, 이제 그만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한국인으로서 외롭게 어떤 주변의 지원도 받지 못하고 가는 길이 쉽지 않았다. 그때 인턴으로 온 터울이 나는 친구를 종종 집에서 밥도 함께 먹으면서 친했는데, 하루는 나에게 맥주 먹자는 것이다.
"박사님, 박사님 포기하면 안 됩니다. 박사님 보면서 꿈을 키우는 사람도 있어요."
난 포기할 수 없었고, 더 기다리고 시도했다. 그래서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그 기관의 정식 스텝이 되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 힘들 때마다 그 친구의 말과 순간이 떠오른다. 그 친구도 운이 따라서, 스위스 ETH에 대통령 장학생으로 가는 영광을 얻어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잘 되고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따라가다 보면, 일이 나를 배신할 때가 있다. 그 일을 정말 하고 싶은데,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 그 일 자체가 없어지거나, 아니면 아주 어려운 상황이 되는 것이다. 한우물을 파고 간다는 것, 그게 꼭 쉬운 일은 아닌 게 분명하다. 어쩌면, 한 우물을 파는 것 그 자체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힘이 되는 지도...
제자들은 내 입에서 공무원 시험은 왜 안 보냐는 말을 듣기 싫을 것이다. 학자가 되고 연구자로서 평생을 가야 하는데, 정년도 빠르고 조직문화가 강한 집단에서 개성이 강한 연구를 진행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도 한국에서 어떤 포지션을 잡은 후 외국에 나가는 것이 유리하다는 말도 하고, 잠시라도 큰 조직에서 일해 보는 것은 나중에 좋다는 말도 하지만, 제자들은 일단 공부가 좋은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연구실 문화가 모든 사람들에게 매력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외국에서 잘 알고 지내던 친구들이나, 기관 재직 당시 알던 젊은 친구들이 지원하길래, 외국인들로 연구실을 꾸려볼까 했다. 그런데, Covid19 때문에 그도 여의치 않다. 어서 상황이 나아져서 그들이 오고, 내가 연구하는 내용들이 다양한 국가에서 함께 진행하면 좋겠다.
연구하는 삶은 고민과 도전의 연속된 삶이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정리하고 검토한다. 다른 연구자들의 업적도 놓치지 않고 체크해야 하며, 내 실험과 연구에 반영하여 가장 정점에서 돌을 하나씩 더 얹어가면서 진행해야 한다. 그렇지만 능력 부족을 늘 체감하고 자원은 부족하며, 밤이 되면 자야 한다. 나 스스로 많이 나태해지고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느끼는 요즘, 제자들에게 나도 모르게 또 그 말이 나온다.
"시험 봐야 하지 않아? 자격증은?"
그러나, 내 마음에 왜 답이 없겠는가. 제자들은 말이 없다. 자신들이 누구보다 더 잘 알지 않겠는가. 현실이 어떤지, 세상이 어떤지는. 나는 인생을 모범답안을 가지고 살지 못했다. 해야 하면 하는 것이고, 중요한 일이면 자원을 퍼부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 중 하나가 '효율성'이다. 그것은 이미 규정된 업무 프로세스나 정책적 제고를 할 때 필요한 말이지, 문제를 해결하고 개발하는 창조적 작업에는 맞지 않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 것인가? 멋대로 사는 삶을 동경하다가 정말 그런 사람을 만나면 팔로우하게 되는 것인가? 사람들이 연예인을 또는 유명인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멋대로 사는 것에 '섹시함'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럭저럭 오늘도 연구과제 고민하고, 식물 재료 관리하면서 새로운 것이 없나 고민하고, 그저 하루하루가 고민 덩어리인 삶이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정말 바라던 삶일 수도. 난 50이 다 되어서야 멋대로 사는 게 정답이라는 것을 겨우 깨달았다. 제자들과 팔로우어, 친구들에게 가장 좋은 나의 모습은 멋대로 사는 것, 그리고 앞으로는 그들에게도 '멋대로 살아!'하고 더 자주 말하고 싶다.
한해 준비를 한다는 게, 벌써 시원한 가을 공기가 느껴진다. 그래서 방금 전에 함께 하는 형님과 메시지로 주고받은 이야기다.
"벼베기 20번 하면 70 되겠네요. 형님이랑 10번 정도 하면 60이고. 얼마 안 남았네요."
* 맨 위의 사진은 중국 선전에서 학회가 있을 때 가서 찍은 것이다. 도시에 가서 높은 빌딩 숲 사이에 있는 시민 공원에 나가서 찍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남들처럼 사는 곳이 도시다. 그곳에서 저 높은 빌딩의 오피스에 있는 사람은 가장 존경받거나, 아니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일까? 잠시 생각해 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