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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중현 Mar 23. 2024

농업은 모두의 산업이다

먹는 것, 즐기는 것, 그리고 우리의 삶에 대한 산업이기 때문이다. 


어제 대전에서 심의를 할 일이 있어, 일을 마치고 올라오는 길에, 예산을 갔다. 


예산에는 충청남도농업기술원이 있다. 몇 년 전에 함께 간척지에 적응하는 벼와 색과 기능성이 있는 벼 등에 대하여 함께 연구했던 바가 있어, 어떻게 지내는 지도 궁금하고 하여 들렸다. 


'빠르미'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적인 극조생종 벼품종을 개발한 윤여태 박사가 팀장이 되었고, 당시 쌀연구팀 팀장을 맡았던 정종태 박사는 구기자연구소 소장으로 발령받아 이동했다고 한다. 


늘 그렇지만, 도농업기술원도 앞으로의 연구개발 전략과 방향에 대해서 항상 고민이 많다. 내가 만나보고 이야기를 나눠본 바로는 우리나라의 국가 중앙연구기관이나 지방 연구기관이나 연구사들의 실력 차이나 역량의 차이가 없다. 


그것은 농업의 특성상, 국가와 지방 단위에서 필요로 하는 농업 연구개발의 난이도적 측면에서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농업은 지역 특화성이 강한 측면도 있다. 벼와 같은 주요 작물이라고 하더라도 별로 차이가 있을 수 없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품종 개발과 자원 활용, 농민들의 수준 측면에서 상향 평준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벼와 콩 등 몇 개 작물은 이미 민간 영역에서 개발과 산업화를 주도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민간 영역이 뛰어난 상품기획, 판매, 수출 역량을 기반으로 R&D 역량을 주도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식량작물은 대규모화, 전문화를 통하여 가격을 낮추어 경쟁력을 만들지 못하면, 식량위기 문제는 남의 이야기가 안될 것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식량작물의 개발 주체는 중앙 정부에서 민간으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민간이 산업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주체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와중에 도농업기술원과 같은 지방의 공공 연구영역의 고민이 크다. 규제는 공공기관의 영역에 있으나, 미션은 영농법인이나 농민들의 요구를 직접 수용해야 하며, 지역에 따라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하는 품종과 재배법을 개발하고 확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공공기관의 수직계열화가 뚜렷해서, 농업 R&D의 지방자치화는 완전하지 않다. 실제적으로 중앙 기관에서 지명하거나 선임하는 형태로서, 또 연구자들이 기관을 옮겨 다니면서, 업무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지방 농업기관에서 소수의 인력(내가 방문한 충남농업기술원의 쌀연구팀도 3명에 불과하다)으로 사실상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양의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내가 최근 이루어낸 업적을 나누고, 앞으로 민간과 지방 연구기관들이 어떻게 쌀산업을 키워낼까를 함께 고민도 나누었다. 쌀산업 트렌드의 변화, 산업계의 변화, 기후변화에 따른 새로운 기회의 창출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거운 저녁을 함께 했다. 


젊었을 때 의욕과 꿈만 가지고 살았던 때를 넘어서서, 중년의 나이가 되니 배운 것이 있다. 나 혼자 고민하면 내 머릿속의 정보는 한 사람의 것이지만, 여럿이 함께 고민하고 경청하면, 내 머릿속에 수십 명의 수백 명의 아이디어가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고 경청하고 토론하고 다시 설명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생각하고 있다. 


요즘 지방에 가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서울에서 학교에서 느끼는 일반인들의 생각과 굉장한 차이를 느낄 때가 많다. 지방은 아직도 TV와 라디오에 의존한 정보를 주로 습득하는데, 어떤 이유에서든 개인화되고 고립화된 정보 시스템 하에 놓이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아마도 휴대폰의 알고리즘도 한몫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결국 사람들은 동종의 동류의 사람들 사이에서만 소통이 되어 오히려 새로운 정보가 차단되고 있음을 많이 느끼게 된다. 


시골의 정적과 한가로움은 평화를 주지만, 조그마한 땅덩어리의 우리나라에서 끊임없이 인구와 에너지, 자원을 빨아들이는 수도권의 영향으로 지방은 쇠퇴하고 있음을 분명히 목격할 수 있다. 내 눈에 많은 사람들이 내부의 성장 동력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지만, 외부의 큰 영향력을 무시하면서 견디고 있는 것처럼 보이곤 한다. 


나는 서울에서 농업과 농학을 가르친다. 내 학과의 이름에는 '농'이 없고, 학생들이 공학 학위를 받지만, 상관없다. 농학은 본디 융합학문이다. 사람과 사람이 먹고사는 생물과 환경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공학이든, 자연과학이든, 인문학이든, 사회과학이든, 농학은 그것을 다 융합하는 학문이기에 상관이 없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 대부분은 농업을 잘 모른다. 농업의 현장에 대한 경험도 부족하고, 단지 먹을 것을 만드는 산업 정도로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세상이 한 바퀴 돌아서, 이제 서울 사람들이 농업에 더 관심이 많다. 그들 주변에서 가장 생경하고 신선한 산업이 농업이기 때문이다. (못난) 어른들의 넋두리가 오히려 그들의 삶의 터전이 되어 준 농업의 가치를 낮출 뿐이다. 


나는 8년 동안 진행해 온 교양 과목을 통하여, 대학원 학생 지도를 통하여, 정말 날것의 농업과 미래 농업을 함께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정치, 경제, 인류, 사회, 문화, 취향 등 다분히 인문사회적인 요소들을 버무려 이야기하기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농학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정의를 내리느냐 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우연히 어떤 유명 연예인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치자. 그 연예인에 대한 짝사랑이 아니라, 진짜 사랑 말이다. 이 사랑의 가장 큰 위협은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지에 대한 의문일 것이고, 또, 다른 사람들이 내 연인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을 받을 것이다. 그런 사랑을 내가 살아가는 삶에서 한편으로는 삶의 도구로서, 또는 하나의 지향으로서 받아들이는 '농학'이라는 학문이, 또, '농업'이라는 분야가, 더 나아가 우리의 '미래' 그 자체로 치환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 교양강의에 어느덧 언제나 만석이고, 조는 사람 하나 없이 끝까지 경청해 주는 학생들이 있고, 때때로 감사와 박수를 받을 때면, 농업이라는 것은 참으로 천천히 스며들고 녹아들어 가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농업에 종사하고 농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더 재미있고 즐겁게, 다양한 방식의 소통 방식을 추구해야 한다. 더 매력적이고 더 객관적이며, 더 세밀하고 섬세한 방식으로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그렇게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으며, 아무도 그 사연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무한 경쟁의 시대, 산업 간에도, 학문 간에도, 왜 자기 것이 중요한 지를 근본부터 다시 설명해야 할 시대가 되었다. 알아서 잘해 주는 시대는 저물었다. 농업이 죽어간다고, 쌀산업이 죽어간다고, 누가 식량을 생산하겠느냐고 한탄하는 자들은 죄다 농학 전공자요, 농업 종사자였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중요하다고 현장에 뛰어가는 사람은 농학을 전공한 자도 아니요, 공학과 자연과학, 경영, 법을 전공한 사람들이다. 


식량은 우리 모두의 것이요, 모두가 풀어야 할 숙제이기 때문이다. 그 중요성을 깨달은 자가 뛰어나가서 일하는 것이 농업이기 때문이다. 농업은 모두의 산업이 된 것이다. 


미래는 적응하는 자의 것이다. 적응은 삼단계의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면밀히 관찰하고 빠르게 판단하며, 신속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중 어느 하나가 부족해도 적응하고 생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다음 백 년은 인류 역사상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백 년일 것이고, 과거의 지식은 거의 다 쓸모없을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작물을 개량하는 능력을 소유하기 바라며, 나는 모든 사람들이 식물 생산을 즐기며, 나는 모든 사람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삶의 활력을 얻길 바란다. 그것은 가르침의 산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부터 그렇게 살아야 한다. 내가 그렇게 살면, 내 제자가 나의 친구가 그렇게 살 것이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조금씩 늘어날 것이다. 올라오는 밤길의 도로에서 그렇게 생각을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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