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씨슬의 사례
밀크씨슬이라는 약용작물이 있다. 그런데, 내 눈에는 그냥 벼 같다. 너무 단순화한 것이 아니냐 하겠지만, 자식성 작물에 2n의 식물이고, 종자에서 유용 물질을 얻으니, 육종학자의 눈에는 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국화과 식물이기 때문에 기르는 방법, 생태, 재배적 특성들은 엄청나게 다른 식물이다. 하지만, 이 또한 논에서 기를 수 있는 작물이기에 여러 면에서 재미있는 식물이다.
세상 식물의 대부분이 벼과와 국화과이다. 우리가 먹는 식량 대부분은 벼과 식물이며, 약재나 기능 식물 중에 국화과 식물이 많다.
밀크씨슬은 실리마린이라는 물질을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0년 넘게 애용된 식물이며, 따로 정제된 물질의 가격은 Sigma에서 50g에 25만 원이 넘는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효능이 검증된 Silybin B는 10mg에 90만 원이 넘는다.
그래서, 이 식물을 표준화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 결과 '실리킹'이라는 식물을 EL&I가 개발했다(사진의 맨 왼쪽 심지형 대표, 이사진에 경영대표인 안광훈 대표가 빠져 있다). 그것에서 가장 중요한 실리마린 물질의 구성에 대하여 중앙대학교 이상현 교수님의 도움이 컸다. 이에 대한 논문도 제출하여 리비전 중이다.
그런데, 이 식물이 특허를 받았다고 해도, 그것이 천연물 원료가 되려면 세계적 수준의 표준 인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현 교수님은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천연물질 표준품을 만들 수 있으시지만, 다국적 회사 제품을 대신하여 산업계나 의료계에서 사용하는 데 장벽이 많다.
나는 그 시작점을 '권위 있는' 표준화라고 생각했고, 그 첫 단계를 종자의 표준화라고 생각했다. 종자의 표준화 방법은 특허와 다르다. 그 식물을 순계 또는 계통화하고, 그것을 품종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그런데, 품종은 두 가지 측면에서 한계가 있었다. 하나는 품종을 인정하기 위한 새로운 작물의 작물학적 특성 표준이 정립되는 것이 너무 어려운 절차를 겪는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그 인증조차 국가 단위, 곧 로컬 한 것이어서 별로 효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마침 농촌진흥청의 농업유전자원센터의 사업에 참여하게 된 EL&I는 밀크씨슬 수십 개를 개발하고, 그것들의 작물학적 특성을 표로 만드는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일단 그렇게 집적된 데이터는 향후 밀크씨슬의 농업적 작물학적 특성 검정의 잣대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다음 단계로서, 유전체적 표준화가 굉장히 중요하다. 중국은 '1001 프로젝트' 등을 통하여, 중국 내 중요 유용작물의 유전체 시퀀싱을 통하여, 국내 자생식물의 권리를 주장하는 토대를 만드는 것에 주력했던 것으로 안다. 그중에 밀크씨슬이 있었다. 나는 밀크씨슬의 다양성을 분석하는 일을 하려면, 일단 DNA 수준에서 정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DNA마커를 만드는 데, 당시에 존재하던 중국의 유전체 정보를 미 후생성(NIH)이 관리하는 NCBI에서 받아서 활용하였다.
이것을 활용하여, 우리나라에 귀화한 밀크씨슬 토착화 계통에 대하여 분석하여, 외국 밀크씨슬 등 분리 계통을 구별하는 DNA 마커를 몇 개 개발하는 수준으로밖에 연구를 진행할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결국 작은 논문을 내는 데 그친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많은 노력을 DNACare의 유의수 박사님과 세종대 이온유 교수가 많이 노력해 주셨다.
그런데, 진짜 좋은 유전체를 만들 수 없을까? 유의수 박사님의 노력이 연결되어 농촌진흥청 농업과학기술원이 진행하던 현장육종을 지원하는 사업에 선정되었다. 당시 이 부분에 있어서 농업과학기술원의 이근표 연구관의 역할이 컸다. 이근표 연구관은 밀크씨슬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담당자였던 홍수영 연구관에게 전달하고, 당시 과장님이셨던 안병옥 과장님 등과 과제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밀크씨슬의 진짜 유전체를 만들어보자! 무작정 Nanopore long read 시퀀싱과 Hiseq 등 시퀀싱을 진행하였다. 일단 진행하고 보자는 생각이었으나, 그게 다였다. 나는 다음 단계를 풀어내는 데 정말 고심하였다. 그런데, 친하게 지내던 명지대학교 김경도 교수가 밀크씨슬 이야기를 듣더니, 문제를 풀어줄 구세주가 되어 주었다. 추가적으로 Hi-C mapping이 필요했다. 전사체 정보도 많이 필요했다. 이 부분에서 홍수영 연구관이 어려운 와중에도 추가 지원을 하였다.
마침 long read sequence 데이터를 활용하여, 유전체를 굉장히 빨리 만들어내는 생물정보학적 pipeline도 구축되고, 프랑스 CNRS 과학자인 Dr. Moaine El Baidouri가 김경도 교수와의 친분으로 밀크씨슬의 transposable elements 분석까지 깔끔하게 해 주었다. 양질의 유전체가 완성되자, 김경도 교수는 미국의 PAG 콘퍼런스에 가서 연설하고 많은 호응을 끌어내었다.
밀크씨슬 유전체 쪽에 가장 많은 논문을 내고 있던 이탈리아 팀이 연락이 왔다. 공동연구와 재료 공유를 요청하는 것이었다. 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과제 제안서를 제출해 놓은 상태이다. 표준유전체는 현재 NCBI에 당당하게 'reference' 유전체로 등록되었고, 이 유전체는 Nature 자매지인 Scientific Data에 억셉되어 출판을 기다리고 있다.
아래 사진은 저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밀크씨슬 재료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김경도 교수가 한번 좋은 논문 써 보겠다고 인사한 것이 2년 전이다. 종자의 표준화 작업을 마무리하는 데만 2년을 쓴 것이다.
이런 작업이 성공하게 된 데에는 정말 여러 과학자들이 멈추지 않고 고민하고 꾸준하게 노력하여 가능했던 것이다. 밀크씨슬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스마트농업 기술, 표현체 기술, 대사공정 재설계 등의 다양한 연구 테마가 남아 있고, 내 개인적으로 밀크씨슬을 활용한 '화학형 육종'의 표준을 만들어 보고 싶다.
그리고, 땅끝황토 친환경영농법인의 윤영식, 윤영석 형제 대표는 밀크씨슬을 통하여 나를 만났다. 밀크씨슬의 대량생산을 활용한 쌀산업과 융복합하여 소득을 증진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밀크씨슬은 해남과 나를 만나게 한 매개 작물이다. 그 덕에 나의 쌀품종 'IPS'를 기술이전해 가시고, 그것으로 새로운 쌀산업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산업과 학계의 연결을 해 준 숨은 공로자가 있다.
요즘 지구본연구소에 자주 나가시는 남재작 정밀농업연구소 소장이다. 기술과 인싸이트를 연결하는 데 탁월한 안목이 있으신 분이다. 다음에는 숨은 조력자들까지 한번 다 모여 사진을 찍어보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