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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중현 Jun 08. 2024

스승은 멍석이다


요즘 학부생들과 면담을 시작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평생지도교수'라고 하여, 각 교수들에게 어느 정도의 할당을 주고, 학부생 면담을 의무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것 같다. 


어제 한 학생에게 그랬다. "교수는 교사가 아니다. 다 큰 성인을 무슨 재주로 지도를 하느냐. 내 인생사 이야기만 좀 듣고 마음대로 생각하면 된다. 교수는 연구자고 전문가다. 가르치는 데는 재주가 없어도 된다."


내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교수를 임용하고 승진시키고, 또 교수가 정년을 보장받는 것은 거의 연구 업적에 달려 있다. 교수 업적 평가에 교육과 봉사도 있지만, 사실상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게 맞다. 어느 전문가들에게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아지면, 그 수요를 충족시키고자 '종합교육장'을 설립하고 전문가들과 학생들을 끌어모아 교육하는 것이다. 그게 '대학 (university)'의 기원이다. 따라서, 대학은 수요 없는 교육을 운영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특히 사립대학은 끊임없는 구조 조정을 하려고 한다. 세상에 필요한 인재를 만들기 위해서 경직된 학과 구조를 운영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못하고, 결국 교수의 전문성이 대학을 구성하도록 한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무전공'으로 대학이 시끄럽다. 내가 전공하는 분야도 딱히 인기가 많은 분야라고는 할 수가 없다. 비인기전공 분야의 교수들이 학과를 중시하고 전통을 중시하며, 기본 소양교육의 체계화를 강조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학교의 교육 수요를 생각해 보면 과연 교수들의 전문성이 이에 따라가는가 하는 부분에 의구심이 든다. 


외부 환경 변화나 연구 수요에 충실하게 발맞추지 않는 이상, 교수들의 연구 능력과 소양이 학생들의 요구를 얼마나 충족시킬 수 있을까. 교수의 교육능력은 가르침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저 보고 배워. 그리고 스스로 깨달음이 중요해. 학부는 자세를 배우는 곳이야.' 


내가 학생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네가 무엇을 나에게 배우면 그것으로 취직을 할 수 있다. 그것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다.'가 아니다. '학생은 나를 보고 무엇인가 하나라도 스스로 알 수 있다면 그것으로 다행인 것이다. 학교에 있는 동안 몸을 만들어야 돼. 내가 생각하는 무엇이 행동이 되고, 그 행동이 습관이 되고,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어떤 상황에서 몸이 자동으로 반응하는 것을 말하는 거야.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하게 되는 일이 직업이고.'


대학의 운영자들은 성급할 수밖에 없다. 교육자 비슷하게 살고 있는 교수들과는 달리, 학교를 설립할 때의 취지와 달라진 학교 운영의 시대에는 오로지 대학의 성장과 수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학은 중등교육기관과 달리 '시민으로서의 기본 소양'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개인으로서 전문 소양인이 되기 위하여 깨닫게 하는' 곳이라는 것이 약 8년의 대학 교수로서 갖게 된 생각이다. 


학생들에게 늘 그렇게 이야기한다. '학생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드는 자들의 말을 경계하고 듣지 말게. 어느 누구의 말도 들을 필요 없어. 그저 깨달아 가는 과정이고, 비교의 대상은 어제의 나야.' 


현실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과 경쟁하고 살아야만 하는 사회 구조 안에서, 학생들에게 이 말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겠느냐 싶다. 그래서, 반복해서 말해 준다. '최고의 스승은 책에 있어. 독서를 하게. 그리고 반드시 외국을 다녀와, 적어도 6개월, 아니면 1년. 나가서는 공부하지 말고 친구를 사귀고 돌아다니게. 그리고 말을 많이 하게.'


우리나라의 많은 문제들을 하나하나 짚어 봤자, 그것은 결국 다 문화의 문제요, 문화는 서서히 조금씩 변할 수밖에 없다. 문화를 변화시키는 핵심은 '돌아보고 살펴보고 깨닫는 과정'이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종종 '무계획'에 대하여 이야기하게 된다. '너무 많이 계획하지 말고, 계획을 위하여 소중한 삶을 희생하지 마라. 어차피 세상은 나의 계획과 무관하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너무 작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것 중 내가 결정한 것은 하나도 없다. 태어난 것도, 결혼하는 것도,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도. 살면 살수록 통제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


김삿갓(김병연). 스승은 자기 길을 갈 뿐이다

이것은 한편 나의 고백이기도 하다. 내가 나에게 해 주고 싶었던 말, 나를 위로해 주고 싶었던 말을, 그들의 귀를 빌려 나에게 이야기한다. 학생들에게 하는 상담은 나의 독백이다. 학생들은 나의 모노드라마를 듣고 깨달으면 된다. 교수는 애써 사람을 바꿀 필요도 없고 이유도 없다. 다만 스스로 깨달음을 주는 자발적인 사람으로서 충실해야 한다. 


스승은 가르치는 자가 아니다. 몇 발짝 바람직한 길을 앞서 걷는 사람일 뿐이다. 심지어 그 스승이란 개별 학생들에게 다르게 기억되는 법이다. 세상에 위대한 스승은 절대로 없다. 바른 스승은 자기를 밟고 지나갈 수 있는 멍석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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