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의 성장 없이는 농학도 없고, 농학 없이는 청년농도 없다.
한국정밀농업연구소 남재작 박사의 아래 글을 보고 나서 쓰게 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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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학을 하는 연구자로서 한마디 하자면, 농업이 영세해서 농학도 하기 힘들다.
국내는 좁고, 국외 연계는 어려운 것이 우리나라 농식품 시장이다. 각종 정책이 죄다 영세농 지원 정책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더니 규모화 정책에는 죄다 반대한다. 규모화가 영세농을 어렵게 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실은 우리가 말하는 규모도 미국과 유럽의 정말 엄청난 대기업이 아니다.
자생 능력이 없는 정말 작은 영세농을 대상으로, 정부가 직접 경영을 한다. 한 번은 일본의 정부 청사 클러스터 지도를 본 적이 있는데, 그 건물들 중에 가장 큰 건물들이 농림수산성이다. 그 설명인 즉, 농업을 국가가 경영하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그렇게 운영된 일본도 어려운 판국이다.
농업을 정부가 경영할지, 아니면 많은 부분을 시장 경제에 놓고 통제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몇몇 위원회에 들어갔다가 정말 마음이 힘들어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나오게 된다. 농촌은 영세농이라 지원은 해야겠는데, 관료가 경영을 직접 운영하는 CEO처럼 생각하려고 한다. 절대 그것이 안될 운명인 줄 알면서도 그런다. 정부와 관료의 역할은 분명히 '지원'을 해야 할 터인데, 실은 정책을 결정하는 '파견직 CEO'처럼 생각하는 게 아닌가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농과대학들을 비판하는 분들이 있는데, 청년농을 양성하는 주체가 농과대학이어야 한다. 그런데, 농업의 현실이 이러하니 농과대학이 힘을 쓸 리도 없고, 그 농과대학 교수들이 죄다 작은 연구와 생물학 연구를 하게 된다. 농과대학 교수들도 과거 농대에 입학할 때 어떤 꿈을 꾸었을까? 많은 수는 지금 청년농의 생각과 많이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내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시 출신인 나는 어린 시절에는 농업에 대한 경험이 없다. 그래서, 국민학교 중학교 시절만 해도, 농업을 말하는 그 용어는 '생명과학'이었다. 그러나, 그 공부의 효과는 늘 '식량위기 극복'이었다. 요즘 가끔 뵙게 되는 이공계 여타 교수님들도 '식량위기 극복'에 나름의 연구 방법으로 기여하고 싶어 한다. 비슷한 심리일 것이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와서, 실제 '농업'에 대해서 다시 비하적인 시각을 느꼈다. 식량에 대한 관심은 많은데, 우리나라 농업에 대해서는 그러하다. 왜 그럴까. 대입 시험을 치르고 나는 순간부터 각자의 머리에 '계급'이 붙는다. 대학 입학 점수부터 시작되는 계급장에 함몰된 사고가 지배되면서, 그것이 직업 계급으로 강화되는 시절을 살아왔다. 엉뚱한 제도는 엉뚱한 곳에서 크게 힘을 발휘하고, 정작 근본적인 것은 손도 못 대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 분야에 들어오는 학생 상당수는 전공에 대한 관심도가 지극하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론'을 가르쳐야 하는 곳이 농학, 공학 계열이라면, 우리 학과는 정확하게 그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 그것을 구현하는 데 청년들이 다음 산업 현장을 짊어지고 이끌 수 있게 하려는 것이 교수들의 꿈 중 하나라는 것을 왜 의심하는가?
농산업이 성장해야 한다. 식품 산업도 소재 해외 의존도가 굉장히 높은 데다, 수출입이 원활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며, 그 기술 난이도에 대한 시각은 전통농업에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왜 학문과 기술이 성장하는 것이 어려울까. 하물며 공학에서도 이론과 실제의 차이를 논하고, 자연과학에서도 실험실과 외부 환경의 차이가 거대함을 직면하는데, 왜 농학에 대해서는 가혹할까.
내 소견이 아직 좁고 세상의 석학들을 다 만날 수는 없었던 바라, 농학자의 수준을 상대적으로 가늠하기는 어려우나, 국제적 리더급 농학자들의 비전은 웬만한 의사나 정치가, 기업가의 비전을 능가하였다는 것은 확실했다. 인간과 자연의 상호관계를 늘 고민해야 하는 농학자는 사실상,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을 판단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농학은 '농업의 발전을 위한' 학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 한 가지 어려운 질문을 해 보자. '농'을 농업, 농촌, 농민으로 쪼개어 말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질문을 던진다. 농학은 셋 중 어느 것에 초점을 맞추는가? 전부일까, 아니면 일부일까. 내가 인식한 농학은 '농업 발전을 기반으로 한 농촌의 발전, 농민 소득의 증대'였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농민이 농업을 통해 소득이 증대하지 않는다면 그건 농학의 대상이 아니다. 농촌이 농업 발전에 기반을 둔 단순 '지가 증대, 타산업 유치' 등을 기반으로 한다고 해도 농학의 대상이 아니다.
농학은 근본적으로 농업 발전, 다시 말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자연자원의 활용 효율을 극대화하고 저렴하게 공급하는 것을 일차 목표로 하는 것이다. '고부가가치' 등의 개념은 그 하부 개념, 그 산업의 일부 개념으로서, 자연자원 그 자체가 비싸지는 것이 아니라, 여타 산업이 결합하여 가치가 '부가되고 융합'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하여, 농업은 '융복합 산업'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농업은 근본적으로 소위, '전통 농업'의 영역인 식물의 재배와 동물의 사육, 그리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기술 발전과 농업인 기술력 증진에 그 핵심 역량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가장 혁신적인 글로벌 종자 회사 중에 EastWest라는 네덜란드-태국 합자 기업이 있다. 글로벌종자기업을 대상으로 한, 글로벌인덱스에서 매번 일등을 하는 회사다. 이 인덱스는 각 기업들이 종자개발 역량뿐만 아니라, 종자가 실제 생산물이 되어 산업 체계를 성장시키는 잠재 역량까지 평가하여 제시되는 것이다.
농업의 성장 없이는 농학도 없고, 농학 없이는 청년농도 없다. 그리고 우리 미래도 없고 식량 위기나 기후에 대한 대응, 취향을 고려한 미래 먹거리 창출도 없다. 그리고 농학은 부끄러운 단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가장 근본적인 단어이고 그 자체로 이미 융복합적 의미를 보존하면서도 전통 농업의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단어다. 대학 입학 등을 포함한 사회에 팽배한 공명 의식이 만들어내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