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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맛 - 도돌이표 이야기

기후와 취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by 진중현


많은 분들이 '밥맛'에 대한 이론을 펼치시는데, 내가 여기에 와서 달라지는 생각이 있다. 요약하자면,


1. 품종 정말 중요하다. 어떤 분들은 품종보다 밥 짓는 법이 더 중요하다고 하는데, 물론 밥 짓는 법 중요하다. 그런데, 내가 일본에서 쓰는 이 밥솥은 그냥 평범한 전기밥솥이다. 물도 적당히 대충 맞춘다. 아마도 보통 사람들 이렇게 하지 않을까? 그런데, 한국에서 우리 쌀로 먹었던 밥보다 훨씬 맛있다. 이런 말하면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품종' 중요하다.


2. 쌀의 관리 중요하다. 내가 먹어본 두 개의 품종 쌀은 모두 편의점 판매 2kg짜리 무세미다. 홋카이도는 조생종만 재배되고 판매된다. 보통 조생종 그러면 맛없다는 의견이 있는데, 홋카이도는 맛있는 조생종 품종 개발의 역사가 길다. 그런데, 그것에 더하여 무세미 기술을 도입하니, 쌀의 균일도가 매우 높다. 씻을 필요가 없는 쌀이 이렇게 맛있는지 새삼 느꼈다. 한국에서도 예전 '라이스텍'이라는 회사가 무세미를 판매했는데, 우리나라는 그것이 시장에 안착되지 못했다. 이유는 많다. 그런데, 무세미가 함의하는 사업은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즉석가공밥' 시장으로 흡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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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쌀을 선택하는 기준이 바뀌게 되었다. 내 개인적으로 혼란이 있었다. 이론과 실재의 괴리다. 학교에서는 밥맛을 결정하는 것이 수확 전과 수확 후로 나뉘고, 수확 전 시기는 품종, 재배환경, 재배방법이 지배하고, 수확 후 시기는 수확 방법, 건조, 저장 및 유통, 취반 방식이 지배한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품종과 취반 방식이 가장 중요한 변수라고 하였다. 그런데, 밥맛을 올리기 위한 기술은 주로 품종과 취반 방식(밥솥 포함)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그것은 현대의 품종에서 차별성이 적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재배 방법이나 수확 후 관리에서 차별화하는 것이 현대의 밥맛 올리는 기술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부분에서 밥맛의 차별화를 꾀하는 기술을 만들기가 어렵다. 너무 많은 변수와 환경적 요소가 작용하기에 우리나라의 영세농이 따라잡기가 어렵다(다른 말로 영세농의 쌀을 전량 구입해 주려는 정부의 노력도 한몫한다). 따라서, 여전히 품종과 밥 짓는 법, 쌀의 용도가 밥맛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라는 생각으로 회귀하게 되었다.


4. 지역은 고정된 독립 변수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벼 품종을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지리적 요소다. 지리적 요소 때문에 환경이 결정된다. 환경은 기상 환경, 토양 환경,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인문사회적 환경이다. 도시 근교냐 농업 중심 지역이냐 하는 것까지, 또 운송이나 지역의 산업적 특성까지, 모두 다 중요한 것이다. 이 환경적 요소를 통합한 개념이 '지리'다. 이 지리적 요소는 시군 단위의 요소가 아니라, 생태학적 니체로 작동한다. 한 지역 내에서도 음습한 지역이 있고 양지바른 곳이 있다. 논밭으로 바꾸어 재배를 할 수도 있고, 단지 벼만 되는 곳도 있다. 그것을 세밀하게 구분할수록, 맛있는 밥을 지을 수 있는 쌀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보면 '정밀농업'이 추구해야 될 방향이 나온다. '지리적 요소'를 우선적으로 정밀하게 결정해야 한다.


5. 지리적 환경이 결정된 후, 품종을 결정한다. 그리고, 그 품종을 잘 이해하는 농민과 농업 집단이 나와야 한다. 이 과정은 그 지역의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사회, 또는 시장의 수요를 파악하고 그 수요에 대응하는 농민 집단이 존재하는가, 그것을 추구하는 강한 의욕이 있는가, 또 그것을 뒷받침하는 제도가 있으며, 그 제도를 운용하는 지자체 또는 정부가 있는가. 쌀은 다른 농산물과 달리 시장에 의한 가격 결정과 수요 예측이 일어나기보다, 정부가 가격의 많은 요소를 좌지우지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래서, 생산과 소비에서 일어나는 가격차이에 대해 정부가 욕을 많이 먹기도 한다. 일반적인 쌀은 이 구조로 운영될 수밖에 없겠지만, 프리미엄쌀은 그렇지 않다. 일반쌀에 대한 가격을 정부가 너무 크게 잡으면 프리미엄쌀이 설 곳이 없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이런 시장의 변화에도 꾸준히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농업인들이 있고, 그러한 곳의 전통이 축적되어 명품쌀이 나오게 된다.


맛있는 쌀이 뭘까. 개인이 맛을 보고 향을 느끼고 그런 관점에서만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은데, 쌀은 물건이다. 물건은 물질로 되어 있고, 물질은 생산의 객체다. 결국, 생산이라는 관점을 무시한 채, '맛만 있으면 된다'는 단순한 사고는 우리 생활에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먹을거리, 그중에서도 식량에 대한 단편적 결정이 계속 누적되게 하여, 결국 이도저도 못하게 되는 것 같다. '맛만 있으면 되고 그냥 사 먹으면 된다'라는 사고가 보편화된 사회는 엄청난 비용을 들여 식량을 수입해야 하고 결국 사회의 기반을 외부에 많이 의존하게 되며, 환경 비용을 많이 지불하게 된다.


맛과 즐거움을 추구하면서도 그러한 즐거움이 지속되게 할 수 있고, 개인이 아닌 모두가 즐겁게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 나는 그 키워드로 '기후와 취향'을 꼽았는데, 이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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