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기초 연구를 더 하고 싶었다

농업 연구와 농민, 소비자, 정책의 큰 갭

by 진중현


나도 기초 연구를 더 하고 싶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 거의 초기 7년은 다시 돌아보고도 싶지 않은 시간이다.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오히려 '코비드 19' 시국이 내가 학교를 나가도 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어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고나 해야겠다.


농장에서 아내와 처음에 온실에 논을 단둘이서 만들었다. 당시 세종대에 새로 만들어진 학과의 첫 부임 교수 중 한 명이어서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더욱이 식물육종학을 해야 하는데 농장이 없었다.


모든 것을 다 새로 만들어야 했다. 온실, 농장, 실험실, 그리고 학생들 기초를 가르칠 선배들이 없으니, 나와 아내(방송대 농학사를 땄다) 둘이 직접 다 함께 하면서 직접 가르쳐야 했다. 다행히 두 학생이 정말 잘 따라주고, 정말 이론과 실전을 전부 겸비하는 학생으로 성장했다.


그사이, 난 50줄에 들어섰는데, 그 와중에 많은 분들이 정말 많이 도와주셔서, 랩도 성장하고 논문이나 과제도 비교적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화성에 농장을 만들고 해남 사업이 시작되면서, 길거리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일 년에 5만 km 이상을 주행하였으니...


그렇게 해도 한국 학생들이 추가로 쉽게 들어오지 않았었다.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처음에 만들어진 학과 대학원 학과인데, 학부가 없어서다. 제아무리 노력을 해도 타 학과 또는 타대학 학생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신설학과의 서울 중위권 대학에서 학생을 받는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행히, 몇 년 지나서 학교에서 우리 학과를 밀어주고 첨단학과로 학부를 만들어 주었다. 가능성을 만들기 위하여 몇 명의 교수가 정말 많이 노력했던 것 같다. 그렇게 만들어진 학과였지만 첫 졸업생이 이제 몇 명 나온 것 같다. 그 학생들로 대학원이 운영되기는 여전히 힘들었다.


그래서 외국인 학생 장학프로그램 개발하여 동남아의 학생들을 받고자 했다. 그것은 일부 성공을 했다. 우수 학생들이 들어왔다. 그런데, 한국 학생이 없이 외국 학생들과 연구원으로만 운영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 대학원은 정말 교수와 학생에게 전가한 행정부담이 너무 많다.


연구과제 제안, 선정, 운영의 과정에서, 그 수많은 문서와 비용처리 방법을 교수들이 감당하기 힘들어, 학생들이나 연구원 도움 없이 하기가 너무 힘들다. 그래서 연구원이나 연구보조원을 쓰는 것은 그나마 소수의 연구실이다. 우리는 다행히 지금 그렇게 하고 있지만, 그 사이에 교수들이 논문 숫자도 채워내야 한다. 질적 평가의 기준에 대한 왈가왈부가 많다. 그래서 여전히 논문 수 평가는 유효하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세상에 무슨 큰 이슈가 터질 때마다 만들어진 수많은 규제가 다 문서화되어 쌓여 있다. 기자재, 시약 사는 것부터, 출장의 전후에 처리해야 할 것들, 요식적인 연구노트를 막는다, 연구 윤리를 세운다 하면서 해야 할 행정 잡무가 산더미다.


여기에 교수들은 수시로 행정 잡무와 위원회, 각종 보직에 포함된다. 우리나라 교수의 숫자는 정말 부족하다. 인구당 대학 교원 수를 비교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일본만 해도 아마 우리나라보다 세 배는 되었던 것 같다. 이렇게 과학자가 부족하니, 교수가 되는 순간, 일본이나 중국 같은 나라의 교수보다 교육과 연구, 각종 봉사, 그리고 기록할 수도 없는 수많은 보직과 서비스에 시달린다.


그런데, 이 와중에 세상에 무엇이라도 좀 도움이 되고 싶어, 교수 스스로가 실사구시를 추구하거나, 언론 홍보 등에 관심을 가지면, 연구와 교육에 대한 노력이 희생된다. 양적이거나 또는 질적이거나. 그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희생이 대상은 교수 그 스스로, 또는 그와 함께 하는 학생들일 것이다.


나는 이러한 상황을 한 발짝 물러서서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 안에서 숨 막히게 돌아가는 삶을 사는 것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를 만들지, 어떤 방향으로 향해 가는 것인지에 대하여,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살아도 중간에 버벅거리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내 사비를 털어 채워 넣거나, 문제를 해결하거나 해야 했다. 연구를 하기 위해 자기 돈을 조금도 쓰지 않는 다른 동료들을 보면 지금도 신기하다. 나는 그런 곳에 신경을 쓸 머리가 없다.


그렇게 9년을 지낸 사이, 나는 기초연구와 거리가 멀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윤석열 정부가 그런데 나를 강제로 기초연구를 하라고 했다. 그전에 나는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는 기초 연구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나도 Nature 2 저자(사실 1 저자와 동일한 수준의 그림과 표를 그려냈지만...), Plant Physiology를 포함한 유수의 논문에 주저자를 하였고, 여러 개 기초 논문의 교신도 했었다. 기초 연구이지만 충분히 응용이 가능한 것들이 많았고, 그래서 그 전의 기간 동안 대부분 응용 연구를 수행했고 그렇게 자리매김을 해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갑자기 소위 'R&D 사태'를 불러왔다. 육종학을 하고 필드를 운영하며 협력 중심으로 연구를 하는 나로서는, 학생들과 연구원들을 거의 다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운영하던 필드와 협력 회사도 문을 닫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정말 10개월을 과제 따는 데만 집중했던 것 같다. 당시 내 생각은 필드를 포기하고 실험만 하는 연구실로 축소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초연구 제안서를 여럿 내었고, 그 과제들이 선정되었다. 그래서 분자생물학 전공 연구교수님도 연구실로 모셨다.


그런데, 그 이후에 감사하게도 농촌진흥청의 응용 과제가 다시 선정이 되었다. 학생들이 여럿 늘었으니 과제를 마다할 필요도 없고, 연구원을 다시 배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기초 연구 계획을 세웠지만, 연구실 색깔이 기초와 응용까지 뒤섞이면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범위가 너무 넓어지는 것이다.


바로 이 시점에서, 다행히 연구비와 연구 업적은 채워낸 시점에서 연구년 기회가 다가왔다. 나는 연구년에 정말 어떤 해답을 얻어야 했다. 그 질문들은 이랬다. 1. 육종학 연구를 해야 하나? 그렇다면 학생들을 어떻게 취업을 시켜야 하나? 2. 기초 연구를 해야 하나? 그렇다면 내가 과연 그 공부를 다시 할 수 있을까? 그러면 어떤 분야를 해야 하나?


내가 이해하기에, 종자를 개발하는 육종학이 성장하려면,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종자 시장이 건전해야 한다. 그러려면, 시장이 커야 한다. 우리나라는 종자 시장이 정말 좁다. 종자의 수출입도 상당히 제한되어 있고, 특히 식량작물에 있어서 정부의 시장 주도가 과하다. 종자를 개발하여 얻을 수 있는 기대 수익이 없거나 마이너스이니,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아이디어를 내어도 도로 정부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러한 배경에는 일반 소비자의 시각이 한몫한다. 모든 식량작물은 생명공학 기법을 적용하는 데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고 정책도 그것을 반영한다. 그러니 모든 생산을 로컬 중심으로 저 투입과 친환경, 전통적인 농업 기법을 선호하는 것 같다. 다시 말해, 기술을 투입할 수 있는 영역이 전자적, 기계적 방법(요즘 스마트, AI 등 용어를 쓰지만, 사실 그냥 농토목, 농기계학의 발전이라고 봐야 한다)으로 해결하려고만 든다.


문제는 종합적인데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은 방치한다. 기계적 방법은 재배적 방법의 접근만 가능하게 할 뿐이다. 생물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유전적 특성을 개선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접근하기 힘든 것이 현 우리나라의 시장이다. 그런데, 농민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품종을 원한다. 이게 무슨 앞뒤가 안 맞는 말인가.


풀 수 없게 기술 장벽을 다 쳐 놓고는, 유전적으로 구별되는 것을 해 달라는 아이러니다. 농민들이나 일반 소비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지식이 많은 것이 생명과학이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농업을 속칭 문과적으로 이해한다. '농업은 생명산업이다'라는 말에서 생명이 갖는 속성을 철학적으로 풀이한다.


그리고, 농산업을 논의할 때마다 나오는 말이 '자주적 농업'이다. 외국의 것은 거의 '악마적'으로 느껴질 정도의 발언을 듣곤 한다. 다른 산업은 이미 개방적이고 글로벌한데, 농업은 그러면 안 된단다. 몸에 구멍을 뚫고 주입되는 주사액은 외국 글로벌 기업에서 들어와도 되고, 입에 들어오는 식품은 그러면 안 된단다. 의약품 기준은 더 엄정해서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세계 최고 수준의 농식품 규제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는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을까?


이유가 어찌 되었든, 세상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유전학' 또는 '육종학' 적인 방법의 설루션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있는 것을 공무원들이 무대책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이상, 연구자가 그러한 이름으로 연구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생명과학 도구를 개발하는 데에는 정말 큰돈을 쓰지만, 그것을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시장을 막아 놓았다는 것은 정책을 수립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답답한 현실인 지를 공감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유전자편집'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데, 그것을 개발해도 쓸 수 없다. 그런데, 과거 황우석 박사가 세포를 조작하여 증식하여 질병을 고치고 인체에 영향을 주는 것에 대해서 그토록 관대했던 사람들은 다 어디 있는 것인가, 도대체 이런 딜레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나는 현재까지 우리 연구실에 유전공학 기술을 도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협력 연구를 통해서, 유전자의 기능을 연구하는 것은 진행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현실에서 농업인들이 사용하게 하기 위하여, 형질전환을 사용한 식물을 개발하거나 제공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내가 기초 연구를 주저하게 했던 것이기도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기초 연구로 돌아가 편하게(?) 살아보고 싶었던 생각이 있기도 했다. 그런데, 농민이 원하는 것(해남군, 경기도와 하는 일들)과 학생들의 미래를 생각해서 가야 할 과학 그 자체의 갭은 정말 크게 느껴진다. 논문을 써야 졸업하는 학생들, 인용이 많이 되어야 인정받는 과학계에서 살아남아야 과제를 따고 학생을 지도하게 하는 과학기술정책, 그러나 농업인은 당장 필요한 품종을 원하면서도, 농민과 소비자는 생명과학을 터부시 하는 현실.


그래서, 나는 10년 정도 안에 한국을 떠날 방안을 찾고 있다. 그사이에 우리나라의 농업 현장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새로운 종자를 만들어 기후와 취향의 요구를 흡수하여, 재배와 가공의 단계에서 필요한 비용을 저렴하게 만들 수 없다면, 우리나라는 엄청난 공공 비용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준비하도록 하는 생명과학 분야에 대한 과학기술 정책가와 일반 시민, 기업가의 시각 변화가 없는데, 연구자가 어찌 살까.


우리가 더 많이 베풀고 그만큼 시장을 넓히고 그 안에서 또 누군가는 뛰어다녀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자원도 시장도 부족한 나라다. 그래서 기술로 부가가치를 높이고, 시장 개척을 위한 영업직이 정말 많이 필요하다. 정치에도 외교적 수완이 좋은 사람들이 많아야 하고, 기업도 기술 기반의 창조적 기업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페이퍼워크와 변하지 않는 사무적이고 형식적인 수많은 잡무다. 이번 정부가 그런 것들을 많이 없애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그런 효과는 거시적인 부분에서 조금 있는 것 같아도, 여전히 세밀하게 보면 엄청나게 부족하다.


연구비 관련 행정을 대통령이 체크하면 좋겠다. 얼마나 요식적인 게 많은지. 그리고 매년 하는 그 수많은 교육들 하며, 연구를 할 사람들이 연구 행정이나 교육 행정에 얼마나 많이 시간을 빼앗기고 있는지. 잘못하는 소수의 문제를 예방하자고, 잘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귀찮게 하는지.


그 와중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바른말하면 어렵게 사는 경험도 많아서, 말이 적은 사람이 잘 산다. 이번 정부 지나고 다음 정부 가면 또 다 뒤집힐 텐데? 계속 뒤집히는 사이에,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법이다.


연말이나 연초가 되면 수없이 많은 업적 보고와 입력하는 것들이 인사 관리에 너무 강하게 반영되고, 여전히 양적 평가를 많이 하니, 그 부분에서도 문제가 심화된다. 홋카이도대의 경우에는 전분야 상위 10% 논문만 업적으로 평가한다고 하며, 그 외의 수많은 자질구레한 업적은 평가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단순한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10% 논문을 쓴다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다. 단번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에 이르기 위한 단계가 있다. 그러나, 그 단계를 다 평가할 이유가 있을까? 왜 그 과정을 전부 평가하는 것일까? 과정 평가를 많이 줄여야 한다. 최소한의 항목이 더 세상을 합리적으로 할 것이다.


여하간, 나는 오늘 기분이 좋다. 주민등록 상의 잘못된 생일인데도, 너무나 많은 분들이 축하해 주신다. 그래서 오늘 글도 길게 써 봤다. 그리고 나는 오늘 삿포로 LP 샵을 하나 개척하고 거기서 마음에 드는 장르의 음반 여러 개 샀다.


음반 수집은 각별한 다른 의미이고, 일단 일본에서는 그 음반을 음원에서 찾아 미리 듣고 있다. 밖은 어두워졌고 사람들은 뜸해졌다. 이렇게 마구잡이 글을 쓰면서 좋아하는 음악을 깔아 놓고, 깜빡 내려놓고 잊어먹은 식어버린 커피를 한 잔 하면서 저녁을 맞이하였다.


세상의 즐거움은 참으로 작다. 그런데, 그 작은 즐거움이 거대한 울분이나 서러움, 슬픔을 이겨내게 한다. 악마는 참 거대한데, 천사와 구세주는 참으로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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