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를 쓴다는 것

체력도 필요하구나. 그리고 심난하면 쓰는구나.

by 진중현


무엇인가를 쓴다는 것은 굉장한 공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페이스북에 자발적으로 쓰는 것은 재미있기도 하지만, 적당한 분량을 넘어서 더 자세하고 상세하게 쓴다는 것부터 체력을 요구한다.


집중력과 정신력이 체력에 의존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셈이다. 글쓰기는 체력이 필요하구나. 내가 무언가 소통을 더 잘하려면 체력이 필요하구나.


더욱이 글쓰기도 '총량의 법칙'이 있다. 어디 글이라도 부탁받아 몇 자 쓰고 나면, 내 자유로운 글쓰기의 양은 현저하게 준다. 방향과 양식이 정해져 있는 글쓰기는 여유를 바탕으로 생각을 펼쳐나가는 글쓰기를 현저하게 줄이는 작용을 한다.


공식 문서나 간단한 토론을 위해 필요한 자료는 AI에게 아이디어의 핵심만 적고, 기존 문서를 pdf로 만들어 올린 후, 까다롭게 지시를 하여 얻는다. 그것을 죽 훑어보면서 에디팅 좀 한 다음에 공유한다. 그런데, 이런 것도 글쓰기 에너지를 줄이기는 마찬가지다. 체력은 살짝 남지만, 이상하게도 의욕은 확 줄어든다.


페북 글쓰기를 종종 하게 될 때는 결심했다기보다 무엇인가를 남기고 싶어서 쓰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시간들이 확 줄어들었나 보다. 그러면, 지나가는 길에 좀 이쁘다 싶은 풍경 사진 올리고, 음식들 사진 찍어 올리고 그러면서, 소위 '(나에 대한) 의무감'을 해소한다.


지난 4개월 동안, 일본의 껍데기들을 보았다면, 이제 조금씩 다른 것들을 보게 된다. 사람들의 표정이 좀 더 구체적으로 보이고, 안 가봤던 골목도 가 보고, 숨어 있던 가게도 가 보게 된다.


한편으로는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하는 안도감 비슷한 것을 느끼게 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인들이 참 힘들게 산다는 생각이 든다. 왜 구태여 그렇게 어렵게 사나, 왜 그것들을 다 붙잡고 사나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보고 '유아적'이라고 심하게 말하는 경우도 있다. 가진 것을 쉽게 못 버리는 것, 그것은 개인적으로는 '취향'으로 고상하게 불릴 수도 있고, 집단적으로는 '전통'이라고 불릴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것들이 하도 섬세하고 집요해서, '다름'을 용인하지 못하거나, 점잖게는 스스로 당황하거나 의아해하는 표정을 많이 본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참으로 많이 애쓰는 문화, 우리는 어쩌면 그것과 싸웠는 지도 모른다. 우리나라가 AI에 대해 정말 개방적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일본 친구의 말을 들으니, 우리의 그런 자세가 다르게도 생각된다.


새로운 기술을 쉽게 받아들인다는 것으로 간단하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다르게 볼 수도 있다. 기존의 가치에 대한 불신이 혁신을 만들고, 고치는 것이 가능한 사회가 개혁을 성공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발전을 하고 있지 않을까. AI가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기보다, 과거의 것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더 쉽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두 단계, 먼저, 기존의 가치에 대한 재검토를 할 수 있는 문화가 있고, 그것은 의심과 반항이 허용되는 문화가 형성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다음으로는, 실제로 그렇게 하였을 때, 더 나은 결과를 확인하는 역사적 경험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독재 또는 비민주적 권력에 대한 시민적 반항이 성공한 사례도 여럿 있지만, 한편으로는 국가적으로 집약된 역량이 필요한 발전 시대에 개인의 삶까지 개선할 만큼 강력한 지도력을 가졌던 것도 한편으로는 개혁이고 혁신이었기 때문이다. 두 상반된 정치적 개념이 모두 '성공적'이었다는 경험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변화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문화적 바탕이 사회에서 되먹임 현상으로 나타나니, 개인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스트레스가 많지만, 그것이 변화 역량을 만들어낸다. AI가 세상을 뒤집어엎어버릴 것 같아도, 그에 대해 상대적으로 담대할 수 있는 것이 한국인 특유의 개방적인 자세인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일본의 새해맞이가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가 다 보존되어 있다는 것도 놀랍고, 그것을 대부분의 국민들이 잘 지키고 있다는 것에도 더 놀랐다. 전통을 잘 보존하는 것이 한편은 부러웠지만, 구태여 그렇게 많은 다양한 음식 재료들을 다 지켜가면서 갈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한 것이 외국인으로서 나의 시각이었다.


그 비싼 성게알(우니)이 연휴 마지막날 떨이로도 다 팔릴 것 같지 않은 것을 보면서, 일본인들의 자연보호 정신과 친환경적 자세가 한계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세상의 다양한 부조리에 대해서는 길거리에서 다양한 목소리로 스피커를 들고 외치지만, 정작 자기 나라의 치부에 대해서는 어떤 의견도 들을 수 없었다.


일본에서의 좋은 것, 안 좋은 것을 모두 보고 생각하고 배워서 가자는 게, 내 연구년 시절 생활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한편, 이 시간을 통하여 앞으로 내가 어떤 인간으로 살까를 정리하고 계획해 보고 싶었다. 이미 전문가가 되기보다 무엇인가 더 다른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육종학자이긴 한데, 농업의 문제, 식량의 문제를 푸는 방법에서, 종자를 활용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유효한 생각일까를 많이 고민했다. 사실, 식량 문제는 그 자체가 복합적인 것이므로, 문제의 해결도 한두 가지 방법으로는 접근이 어렵다.


'문제'라고 정의된 것은 '해결되어야 할' 숙명을 가진 것 아닌가?


그렇다면, 해결할 수 있도록 문제를 재정의하고, 그것에 대하여 '나의 전문성'조차 심판대에 올려야 할 것이다. 과연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육종학자로서가 아니라, 농학자, 더 나아가 학자, 한 인간으로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해결 방안을 제안 또는 실천할 것인가.


이런 생각은 계속 나를 더디지만 한 발씩 나아가게 하고, 두렵지만 안 해 본 것들을 시도하게 하고, 안 가 본 곳으로 가게 하는 동력이 된다. 늘 걱정을 안고 살고, 보이지 않는 길을 더듬어 가지만, 가만히 있으면 어차피 똥오줌이나 생산하고 갈 것이라는 생각으로 견딘다.


그래도 오늘은 참 심난했다. 갑자기 수많은 걱정들이 몰려오는 것이다.


나는 여기 왜 있나, 학생들의 연구들은 진도가 나가긴 하나, 과제들은 어떻게 업적을 만들지, 심지어 성과 등록 같은 것들 빼먹지 않고 되고 있는 건가 같은 업무적 고민들이 몰려 들어오다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그리고, 부친께서 고인이 되시고, 나의 몸도 최근 관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내의 상황, 어머니 상황이 우려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좀 억울한 생각이 밀려왔다. 평생 일해도 쌓이는 재산도 없고 주변 사람들이 잘 되어서 좋은 모습을 보는 것도 기분은 좋은데, 나는 그냥 딱 거기까지구나 하는 인간적인 생각도 들었다.


좀 더 영악하게 살았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밀려드는 순간, 편의점을 들려, 홋카이도 우유를 넣은 달달한 디저트 봉지에 담아 집에 왔다. 어차피 또 이렇게 시간은 지나갈 것이니까. 또 잊고 캘린더에 있는 해야 할 일들을 삭제해 가면서 살겠지.


쓰고 싶은 글을 쓴다는 것은 어렵다. 글을 쓰려면 생각이 있어야 하는데, 그 생각은 참 유치하다. 그래서 공부를 하는데 그러면 내 무지와 건망증에 주눅이 들기 시작한다. 나에게 그런 중년이 찾아온 것이다.


좀 더 후배들이 대접을 잘해 주면, 나도 신날 텐데 하는 꼰대 생각도 나고. 생각이 많아지는 이것이 심난해지는 이유다.


그래서, 여기에 이렇게 쓴다. 딱 거기까지.


다음 주 수요일에 한국에 가서, 또 정신없이 이틀 보내고, 호주 가서 심포지엄 하고, 한국 잠시 들려 일본에 온다. 그러면, 2월이다. 2월 말에 홋카이도대팀과 우리나라 여러 팀이 연합으로 심포지엄을 하기로 했다.


3월이 되면 일본육종학회를 위하여 이바라키와 도쿄, 그리고 쓰쿠바를 방문해 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 4월에는 어머니가 오시고, 5-6월에는 일본과 한국의 모내기를 하게 된다. 7월에는 독일/프랑스를 가 보려고 하는데 계속 마음만 먹고 있다. 그 사이 니이가타를 들리려 한다. 8월에는 홋카이도 동부 지역 탐방하고 중국의 학회에 참석해야 한다. 그러면 내 연구년이 다 지나가게 된다.


그 사이, 책 한 권 초고를 완성하고 싶고, 논문 2편을 직접 쓰며, 2개 과목을 AI 반영하여 새로운 원고로 만들어내고 싶다. 그 외에도 언제나 그렇듯 잡다한 일들이 참 많이 있을 것이다.


이젠 좀 쳐내야지, 내가 하지 말아야 할 일, 별로 의미 없는 일 그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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