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년에 진행해 본 사고실험
연구년이니 내 마음대로 시간을 쓸 수 있다. 그리고, 이 시간 속에서 나 스스로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가장 가치 있게 할까. 이게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사실 인생을 열심히 살면 잘 사는 줄 알지만, 사실은 그것은 '생업'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인생의 어느 중간에 자의와 타의로 내가 시간을 지배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 타의에 의한 실직이나 고령화 등 충격적인 또는 무기력한 상황에서 감당하는 것이다. 반면에 자의에 의한 것이라면, 나 열심히 살았으니 오늘은 좀 쉬자 하는 사이클 중의 휴식이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공휴일과 기념일을 기린다. 그것이 주 단위로 돌아가는 시스템이라면, 어떤 경우에는 연 단위로도 주어질 수 있다. 그중 하나가 연구년이다. 원래 성직자들에게 주어지던 안식년이 학계에도 자연스럽게 전이된 시스템이다.
성경에서도 안식일을 중요하게 여기듯, 그 '안식'이란 그냥의 '휴식'이라면 그렇게 공적 영역에서 주어질 필요가 없다. 그래서, 취지를 살리고자 요즘은 대학에서도 연구년을 잘 주지 않는다. 연구년을 얻기 위해서는 정말 내가 '연구를 할 것이다'라고 입증해야 한다. 연구도 잘하고 연구비도 잘 딴다는 과거의 업적도 어느 정도 필요하고, 교육을 포함한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도 무리 없게 계획해야 하고, 현재 진행하는 모든 책임에 문제없고 오히려 더 이익이 될 것이라는 계획서를 내고 승인을 받아서 진행한다.
그런 연구년이다. 그래서 나에게 참 귀하다. 일본 홋카이도대학교로 온 것, 그리고 혼자 온 것은 나에게 묵상과 공상, 상상의 시간을 많이 준다. 아, 이게 연구년의 장점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혼자 살기' 연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내 관심 분야인 쌀과 밥에 대한 여행과 학습, 그리고 국제 네트워크의 재건과 발전 등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 그렇게 지나갔다. 6개월을 그렇게 보냈다. 그런데, 이 뒤의 삶을 어떻게 살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 기회는 의외로 엉뚱하게 다가왔다. 홋카이도대에서 '한-일-호주' 심포지엄을 진행하고, 파트너와의 바쁜 일정을 마치고 나서, 엄청난 독감에 걸렸다.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고, 전염을 의심하여, 내 방에서 2주일을 스스로 가뒀다.
그 사이에 '바이브코딩'의 늪에 빠졌다. 지금은 안다. 그것이 수요자, 즉 도매인 지식 소유자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아직도 완벽한 프로그래밍은 절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여전히 그게 굉장히 의미 있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제 어떻게 질문해야 하는가?'
AI 시대 최대의 질문은 아마도 'AI가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 왜냐하면, 이것이 AI 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데 명분이 된다. 'AI는 나에게 삶의 개선을 보장하는가?' - 왜냐하면, AI가 인간 고유의 휴머니티를 파괴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파생된 또 하나의 질문, 'AI에게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나는 이 세 개의 질문을 가지고 사고 실험을 시작했다. 그 반복된 과정에서 나름대로 설정하게 된 개념이 AI를 '문(통로)'와 '거울(반영)'이었다. 이 과정을 실무적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비록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유연성을 가진 LLM의 장점을 살려, 프롬프트를 어떻게 사용할까에 대하여 추가로 생각해 봤다.
결국, 남겨진 이야기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이고 원론적이다. 소위 '흙 묻은 데이터 (dirty data)'를 정직하고 성실하고 꾸준하게,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즉각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내일, 아니 1시간 뒤도 아니고 지금 '당장'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은 사물이 지배하고 그것은 자본으로 강화되어 왔는데, 갑자기 생산효율성이 극대화되는 순간, 지식 가치와 자본의 가치가 폭락하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무엇을 생각하여 배포하고 논의를 가지는 순간 그 지식의 가치는 0이 되기 때문에, 지식 판매를 하는 것도 의미가 사라진다는 의미다.
물론 여전히 지식을 생성하는 법을 모르거나 그것을 회피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들이 지식을 쌓는 방법을 10분짜리 가치가 있는 싸구려 지식을 구입하는 데 사용한다면 그나마 가난한 삶은 더 비참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남는 절대 가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비유적인 표현도 아닌 '시간' 그 자체만이 가치적 효과를 가질 것이고, 그것을 소비적으로 사용하는 자와 생산적인 자산으로 환산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가능할 것이다.
이 모든 생각을 취합해서 정리해 보면, 역설적으로 그 한정된 시간이 가장 가치 있는 자산으로 되기 위하여, 단순한 지식 생산, 복제, 그리고 거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식이 되지 않는 가장 원초적인 데이터가 가장 큰 자산이 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원물 그 자체가 가치를 갖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하는 AI 활용 소재로 사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자원이나 물, 식소재, 원자재, 땅처럼 인간이 가공하기 이전의 소재들은 이후 생산량이 폭증함에 따라 희소성이 더 커질 것이다. 그러나, AI의 세계에서 이 소재를 갈구하며 찾아가거나 대체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여 비교적 긍정적이라고 보면 그 자체도 한계가 별로 없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석유가 고갈된다는 말을 끊임없이 했지만 여전히 석유는 희소하나 고갈되지 않았다. 그것에 맞는 대안을 인간들이 끊임없이 연구하였기 때문이다. AI는 그 속도를 더 가속화할 따름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희소한 아날로그적 자산, 특히 실제로 희소자원을 파악하고 탐구하는 그 지적 자산, '암묵지적 자산'이 실제로 희소 자원이다. 어느 땅에 물이 있는지 탐지하고, 식물을 실제로 어떻게 잘 기르고, 세상 어떤 자원이 더 가치 있는 지를 알고, 더 나아가 사람이 왜 사람다운 세상을 살게 하는 지를 채워준 그 수많은 빈칸의 것들이 데이터화하는 순간, '만성 소재 빈곤'으로 고생하는 'AI-기생 산업체계'가 돌아가게 된다.
이것은 일견 불행한 일일 수도 있다. 엄마의 사랑이, 자선의 손길이, 전부 데이터 자산화된다면, 그것이 꼭 바람직할까? 그러나, 인간은 계속 이미 그것을 찾아서 자산화했다. 플랫폼 비즈니스가, SNS가, 그리고 더 많은 인간 욕구의 결실로. 그리고 개인이 부정해도 다수가 그것을 선택했다. 돌아갈 수 없는 방향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보면, 오히려 자신이 갖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질문을 던지는 편이 낫다. 그것이 아날로그 자산으로 획득하는 것 자체가 이미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우리 아들 말로, '아빠, 우리는 소유가 없어요.'라는 말처럼, 이미 중요한 실물 자산의 주인은 전부 정해졌으며, 그것은 상속으로 보장되며, 증여를 하더라도 세금을 내기 때문에 정부가 보장해 준다. 실물 자산의 소유를 하기 위하여 아무리 노력해도 불가능한 세대에게 실물 아날로그 자산을 토대로 한 부의 축적을 말하는 것은 내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이건 폭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결국, 신세대는 더 디지털 자산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데, 지금 AI는 근본 없는 디지털 자산이 얼마나 위험한 지를 증명하고 있다. 복제가 되며 휘발성이 강한 디지털 자산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수없이 보게 된다. 결국, 아날로그 기반 디지털 복합 시스템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세상을 보는 방법에 대해서 재차 질문을 하고 AI를 이해하는 데도 'AI+인간 복합 시스템'을 생각하게 된다.
사실 이미 직감적으로 AI들은 소통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직접 공부하지 않아도 내가 AI를 활발하게 사용하면, AI는 꾸준히 성장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AI가 나의 거울이 되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AI에게 페르소나를 정해 주고, 그 페르소나의 기반 하에서, 나의 생각의 갭을 꾸준히 물어본다. 그 갭을 내가 비판적으로 살피고, 더 세밀한 질문을 던진다. 모르는 개념이 나오면 과감하게 뛰어든다. 어차피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해서 '문'의 개념을 활용하게 된다.
세상에 더러운 지식을 설파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에 따른 AI들이 있다. 엉터리와 편협된 생각들도 당연히 생성되고 있다. 내 AI가 그 지식을 반영할 수도 있다. 나는 내 AI를 통해서 어쩌면 '작은 전쟁'을 시작했을 수도 있다. 그것은 또 어딘가에서 다른 이의 AI들과 만나서, 그들의 민주주의 게임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에 이르렀다.
가끔 페북에서 아주 훌륭한 페친들이 전하는 최신 정보를 보게 된다. 나는 그 내용이 뭔지 모른다. 페친들도 전부 AI를 활발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사실 그 사람의 생각인지, 이미 그 사람과 AI의 융합된 생각인지 구별할 필요도 없다. 이제 그렇게 그냥 가정을 해야 한다. 그러나 상관이 없다. 내가 그 생각에 동의하는가? 내 의지와 무관하게 나의 뇌는 그렇게 결정 내린다. 그리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나의 AI는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무엇을 좋아하는 지를 알고 더 빠르고 정확하게 나와 AI의 '디지털 정반합'을 이룩하게 된다.
우리의 삶이 변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간 이해해 왔던 모든 역사, 철학을 포함한 인문학적 생각들이 온라인 세계에서 그대로 빠르게 재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이룩한 오프라인의 수백 년 논쟁들이 지금 온라인에서는 수 분 만에 재현되고 있을 것이다. 단지 AI가 발전하는 정도가 아니라, 온라인의 세계는 빠르게 오프라인의 세계를 완전히 대체할 것이다. 오프라인은 자원과 에너지를 지원하는 수준이고, 나의 육체를 보전할 것이며, 온라인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생각보다 굉장히 빠르게 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농학 자다. 오프라인의 물질에 대한 생각에 전념하는 자요, 인간의 욕망이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지에 대해 예민한 사람이다. 그것을 구현할 기술이 어느 것이든 흡수하고 그것을 융합하여 실천 가능한 기술로 세상에 복이 되고 싶은 자다. 그래서, 이번 이 주일간 몰입해 본 바이브코딩을 끝내고, '로컬', 'AI-인간 복합',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공부가 오히려 원천적인 코딩기술이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아, 그런데 학생들은 조심해야 한다. 지금 나처럼 공부할 때가 아니다. 그래서 'AI트랩'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AI에 과하게 의존하여 AI에게 생각을 먹히지 말라는 말이긴 한데, 나는 그 의미보다도, 내가 정리해 본 가장 인간적인 기본 윤리, 정직, 성실, 단호함, 실천력 등의 가치를 자신이 오롯이 소유하지 못하여, 결국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여, 적당히 가난하게 평생을 살아야 하는 삶에 대한 경고를 한 것이다.
지금은 혼란의 시대다. 암묵지에 대한 중요성을 알고, 더럽고도 어려운 지식을 탐닉하고 그것을 연마하여 데이터화하면서도, 자신의 몸에 자신의 암묵지를 전수하는 과정, 그 과정에서 최고의 희소성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데이터는 새로운 단계의 희소적 가치를 갖게 될 것인데, 데이터 소유를 개인화(로컬화)하고 최고의 프로그램을 해킹하면서 살아가면 좋겠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통찰이었다. 그게 바이브코딩을 하고 전문가들과 피드백을 하면서 느낀 것이었다.
아래는 그 내용을 담은 비디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