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선생님의 단어
집 어딘가에 국민학교 6학년 때 생활 통지표가 있을 것 같은데, 거기에 당시 담임선생님이 나에게 적어준 멘트는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두뇌 명석하고 매사에 의욕적이나, 이상한 질문을 많이 하고 조금 이기적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1학기, 2학기에 '이기적임'이라는 표현이 두 번 나온 것을 봐서, 그것은 선생님의 소신 있는 판단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조차도 어렸을 적 '이기적이야'라고 말씀하신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본인이 그랬을 리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이기적이다'라는 말은 학교 생활에서 친구 사이에서도 쓰지 말아야 할 거의 '금기어'라고 본다면, 국민학교 생활 통지표에 남은 저 문구는 나에게 평생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이기심과 이타심, 그리고 인간의 본성과 표현, 그리고 대인관계에서의 심리 관계, 업무와 소통 등에서, 꼭 한 번씩 체크하게 된다. 선생님이 교육적으로 일부러 나를 아껴서 적으신 것이라면, 정말 대단히 성공적이다.
어제 술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했다. 면전에 두고 '이기적이다'라고 말하지는 못하는 게 아닐까 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꼭 한번 걸러 듣는 습관이 여전히 있음을 알았다.
이 말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내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내 행동이 갑자기 멈추게 하거나, 어떤 거래를 하게 할 때, 결국 갈등과 조율을 회피하고, 내가 지고 말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곤 했다.
그래서, 언젠가부턴가 숨기 지를 않기로 했다. '나는 국민학교 생활 통지표에 '이기적이다'라는 판단을 받은 사람이다.'라고. 그리고 나면, 오히려 불량배를 만났을 때, 돌아이처럼 옷을 하나하나 벗으면서 '때려봐'하는 것 같은 효과가 난다.
그 선생님은 내가 6학년 졸업을 하고, 만삭이 되어 출산휴가를 받았다고 한다. 중학생이니, 6학년 한 반이었던 녀석들이 '이기적'인 나에게까지 연락을 해서, 선생님을 문병 가자고 했다. 그 선생님 덕에 나는 평균점수를 잘 받고도 졸업 우등상도 못 받았는데, 중학교에 가서는 계속 1등을 놓치지 않았었다.
당연히 나는 선생님의 표정을 유심히 봤는데, 나와 단 한 번도 눈을 제대로 맞추지 않으셨다(아니, 못하신 건가... 어려서 모르겠다). 그렇게 애들은 다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지만, 나는 지금도 그 선생님이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 선생님은 내 이름을 기억하실까, 아니면 교육자로서 나 말고도 그 '이기적이다'라는 표현을 다른 학생들에게도 계속 쓰셨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선생님의 말 한마디는 정말 중요하다. 평생 간다. 그리고 그것이 내 가치관과 직업관을 갖게 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가 밝아지려면, 선생님들이 너무 직관적이고 현실적일 필요도 없다. 그런 사람은 세상에 참 많다. 선생님은 선생님이라서 특별한 것이다.
내 아내는 유치원 선생님을 한참 하다가 나와 결혼하고 외국에 나가 사느라 경단녀가 되었다. 그런데, 내 아내는 이 이야기를 듣고 함께 화도 내주고 위로도 해 주었다. 속된 표현으로, '선생님, 제 아내 아니었으면, 저 지금 당장 가서 따졌을 겁니다! 아내에게 고맙다고 해 주세요!' 했을 것이다.
그런데, 뭐 당시 한 반에 70명 가까이 되는 학생들을 어찌 2-3줄로 평가를 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그렇다면 더더욱 극단적인 용어는 쓰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그리 많이 했던 것일까.
한두 가지 기억이 난다.(이것을 쓸까 말까 하다가...) 어느 날 선생님이 시험 본 성적표를 나눠 주면서 필요한 경우 부모님을 오라고 하셨다. 나도 성적표를 받을 때, 선생님이 부모님을 오라고 하셨다.
집에 와서, 어머니께 성적표를 드리며, '엄마, 나 산수 100점이고, 그리고 (어쩌고 저쩌고) 그런데, 어머니 학교에 오시래요.' 그랬다. 어머니는 좋은 성적에 왜 학교에 오라고 하느냐고 하셨다. '몰라요, 오시래요'.
며칠 뒤, 선생님이 반 친구들 앞에서 나를 불러내어 엄청나게 화를 내시는 것이다. '도대체, 너는 어머니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하나하나 다 이야기해봐!' 그러시는 거다. 겁에 질린 나는 '나 산수 100점이고, 그리고 (어쩌고 저쩌고)... 어머니 학교에 오시래요.'라고 했다고 했다. 선생님은 '그게 아니고! 다시 처음부터 자세히 말해봐!' 그러시는 거다. 나는 다시 '산수 100점...'부터 말했더니, 선생님이 속된 표현으로 엄청나게 열을 내시는 거다. '그놈의 산수 100점은 빼고!!'
나는 말도 못 하고 울기만 했다. 나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체육, 음악, 미술 등 모든 과목의 실기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평균점수가 높은 데도 우등상을 못 받자, 교감선생님이 특별상을 만들어서 나에게 영어사전 한 개를 주셨다(상장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상에 관심도 없어졌고, 상을 그렇게 기대하지도 않는 성격도 생겼다. 몇 년 전 학회에서 상 받은 것을 언론에 노출한 것은 학교에서 그렇게 하면 성과 업적을 잡아주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는 잘난 척을 해야 하고 이기적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것을 잘 못하는 아마추어라 못난 표를 다 낸다고 생각했었다.
왜 이런 썰을 이리 오래 풀었냐면,
요즘 좋은 사람들을 만나 좋은 이야기를 자주 하기 때문이다. 선생님에 대한 소심한 복수를 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서울**국민학교 7*회 졸업생, 6학년 *반 유** 선생님의 학생이었다. 선생님이 나에게 '이기적이다'라고 하신 바람에, 가끔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이야기를 하게 되어, 결국 선생님의 이야기를 꺼내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세요. 저 위의 *표 부분은 한 번도 누설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저 문구대로 정확하게 '두뇌 명석하고, 매사에 의욕적이고, 이상한 질문 많이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기적이라는 단어보다는 '개인적'인 것을 착각하셔서 잘못 쓰셨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