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종학자와 관련 과학자의 소양, 그리고 필요조건을 생각해 봤다
그제는 동물 유전체학에서 세계적 대가이신 김관석 교수님, 그리고 활발한 생물정보학자 김경도 교수와 만나, 인간과 경종, 축산을 연결하는 이야기를 유전체로 풀어보면 어떨까 고민하는 한 판이었다.
어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벼의 대표적인 형질을 함유한 다양한 근동질 계통과 형질 결합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생물정보학과 유전체학의 활용, 그리고 그것의 결과물을 어떻게 활용할까 하는 고민을 나누었다.
사실 유전체학과 생물정보학, 그리고 오믹스 기술, 다양한 표현체 분석 기술, 스마트 기술 등을 결합하여, 품종 개발에 활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도, 이것을 결합하고 연결하고 의미 있는 체계로 만드는 연구가 잘 안되고 있다.
우리는 '융합'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그저께에는 경희대에서 전종성 교수님의 초청으로, (영광스럽게도) 수십 명의 교수님, 학생, 대학원생, 연구자들의 앞에서, '그린바이오연구원'의 출범에 맞추어, 육종학자로서 유전체학과 스마트 기술의 '융합'에 대한 의견도 낼 수 있었다.
연속된 이 세 가지 발표와 모임의 시간에서, 내가 배우고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것은,
(1) 목표에 대한 공유: '융합'의 산물은 실용화고, 그것은 산업과 우리 인류의 공영에 기여해야 한다. 농학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우리가 개발한 벼 종자가 쌀이 되어, 누군가를 먹인다고 하면, 그것은 적군이든 아군이든, 착한 사람이든 악당이든, 부자든 가난하든 구별하지 않는다. 나에겐 이것이 농학의 최고의 매력이었다.
(2) 체계의 일관성: 목표가 설정되면, 그것을 유지할 중장기적 체계의 안정성이 필요하다. 아시아/아프리카의 가난을 구제하기 위하여 설립된 아시아 최고의 농업기관, IRRI(국제벼연구소)는 록펠러와 포드 재단이 앞장서서 설립하여, 60% 수준의 쌀 생산성 수준 증가를 가져온 '녹색혁명'의 주역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 이전 이후에도, 이 정도 수준의 성공을 보기 어려운데, 그것이 국가와 정부의 주도가 아닌 기업주도였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성공을 가져온 '통일벼'조차도 IR8의 생산성을 빌려온 것인데, 이 IR8이 국제벼연구소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기업주도의 농업혁신이 왜 중요한지를 깨달아야 한다. 그 핵심에는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의 두 바퀴가 선진경제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나 가능하려면, 기업주도와 정부지원의 형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그것이 비로소 일관되고 체계화된 성장일 것이다.
(3) 깊이 있는 전문성: SCI 논문의 개수가 품종 개발 능력을 설명하지 않는다. 유전자 한 개를 발견하고 검증하는 것은 과학의 체계에서 중요하고, 그 성과는 보통 논문과 특허로 증명된다. 그렇게 하여 한 개의 식물이 나온다. 그런데, 이것이 수만 ha의 농장에서 길러진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앞의 것은 통상적으로 생명공학의 영역으로 이해되는데, 뒤의 것은 '농학'의 영역이다. 비타민A가 만들어지는 'Golden rice'가 만들어진 것은 90년대, 30년이 지나서야 필리핀에서 이제 '품종'으로서 일반재배를 승인받았다. 이 이야기는 생명과학에서 엄청난 수준으로 깊이 있는 각계의 전문가들에 의한 정치인, 기업가, 일반인들을 설득해 가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실험실에서의 한 번의 성공에 그렇게 흥분하지 않는다. 농장에서, 공장에서, 그리고 밥상에서 그 성공에 비로소 반응한다.
(4) 자율성이 보장된 커뮤니케이션, 그것은 '융합'의 시작: 과학자들은 잡담을 좋아한다. 나는 국제 연구기관에서 10년을 지냈다. 그 기간 동안 가장 의미 있는 대화는 대부분 본부 옆에 위치한, 조그맣고 잉어가 노니는 일본풍의 'Japanese Garden'을 옆에 둔 카페에서 이루어졌다. 연구를 하다가 심심하면, 아니면 그냥 지나가다가도 거기 앉아서 커피를 하면서, 우연히 함께 자리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냥 이야기를 한다. 나는 단지 10m를 걸어 프랑스의 과학자를 만나고, 20m를 걸어서 남미와 아프리카의 과학자를 만났다. 온라인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지식이 어디에 있는지 정도는 금방 알 수 있지만, 대화를 하지 않으면 그 맥락을 도저히 알 수가 없다. IRRI의 카페는 그야말로 엄청나게 값싼 비용으로, 최소한 융복합적인 농학과 세계 식량 연구에 있어서는, 거인들과 노닐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중요한 점 - 융합을 성공적으로 하려면, 정직, 솔직함, 겸손함을 함께 한 대화술이 적절히 필요하다. 영어공부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
(5) 이제 시작해야 할 때, 역시 '행동': 한국인의 가장 큰 장점은 실행력이다. 과거 수십 년 동안 개발과 발전이라는 단어는 거의 강박처럼 작동하는 단어였다. 이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하게 하는 집단적 요령은 '경쟁'이었다. 그런데, 극단적인 경쟁은 자유로운 사고의 결여와 통제 시스템이 강화를 가져왔다. 이제 성장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성장의 속도가 둔화되는 가장 큰 이유로, 핵심기술 인재의 부족, 과학자들 간의 자유로운 소통의 부족, 그리고 각 전문성에 걸맞지 않은 무심한 관리체계에 있다고 생각하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품종 개발을 하기 위하여, 식물세포생물학을 연구하는 사람과 토양환경 생리학자, 그리고 육종학자가 함께 일을 하는데, 이들은 모두 다른 형태의 성과물을 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육종학자에게도 똑같은 논문을 똑같은 기간에 내라고 한다. 그런데, 이면을 살펴보면, 학교를 평가하는 정부가, 또 언론이, 그리고 사람들이 논문의 개수에 치우친 지표만 보고 그것을 이해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많은 기초기반기술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실행력에 걸림돌이 되는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실제 필드에 가까운 연구자일수록, 융복합을 하려면 오히려 학교 시스템이 불리해질 수도 있다.
물론, 위의 이야기를 강연과 미팅에서 모두 나눈 이야기가 아니다. 준비가 부족했고 이야기도 방향성을 잃기 십상이어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다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솔직하고 가끔은 무례한 대화에도 너그럽게 경청하고 자신의 의견을 내어주는 전문가들과의 대화는 즐겁고 기억에 남는다.
나는 품종을 개발하는 '육종학'과 유전자를 발굴하는 '유전학'과의 관계에 대하여 생각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실제로 현대의 '육종학'이라고 생각하고, 엄밀히 말하자면, 육종학자만이 할 수 있는 '육종 방법론'의 체계화라고 생각한다.
보통 공학에도 산업공학 분야가 있어서, 공정과 프로세스, 가치평가 등이 있는 것으로 안다. 농학에서 연구자들의 최종산물은 다양하겠지만, 산업공학과의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 품종, 프로토콜, 데이터베이스 등 다양한 산물은 모두 프로세스, 그리고 그것을 지배하는 철학과 관점, 융합의 성과다.
학생들이 50의 나이가 되었을 때, 우리나라 인구 중위수는 '59살'이라는 서울대 인구학자의 이야기를 전달해 주었다. 그들은 30년이 지나도 청년과 같이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다시 말해, 깊이 있는 전문성을 획득하기 위한 기간이 중위수 44세의 시대를 사는 나보다 훨씬 길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청년은 깊이 있는 전문성을, 그리고 소통능력을 함양하게 하고, 중견 학자들은 융합과 소통에 주력하며, 원로들이 철학적 기반과 지향점을 정립해 준다면, 학계는 그야말로 행복한 공간이고, 세상의 젊은이들이 되고 싶은 직업인으로 과학자가 1등이 되는 세상이 될 것이다.
벼 과학자가 되면 좋은 점은, 나를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살며, 벼와 쌀을 연구자가 되어 좋은 점은, '거의 모든 나라에서 쌀을 먹기 때문에' 세계 여러 나라에 친구가 있다는 것이고, 내가 오늘 연구하는 것이 결국 반드시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고, 내가 흘린 눈물은 어느 쌀 품종의 유전자가 되어 세상에 남을 것이라는 점이다.
나는 100개가 넘는 나라에 아는 사람이 있고, 40개가 넘는 나라에 절친이 있다. 나의 꿈은 65세쯤 되어, 친구들과 밥 한 끼씩 하는 '한끼줍쇼' 여행을 하는 것이다. 벼와 쌀을 연구하는 학자만이 꿈꿀 수 있는 여행일 것이다. 그게 나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