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밥.
모내기 중에 논에서 먹는 밥. 간척지라 새로 만든 논이니, 길에 돗자리를 깔고 먹는다. 외진 곳이라 농번기에 흔히 보는 갑작스러운 트랙터가 길을 비키라 하지 않아 다행이다.
오래간만에 먹는 모밥이라 하지만, 모밥은 원래 그늘에서 먹고 막걸리와 술이 있어야 하는 법.
그러나, 우리의 모밥은 달랐다. 간척지 외진 뜬금없는 자릿 논이라, 주차된 차가 여럿, 운전을 해야 하니 막걸리는 없다.
그러나, 특별한 것은 음식!
윤영식 대표 누님은 우리나라 남도 음식을 대표할 만한 국가적 명인이시고 요리 연구가. 우리 학생들이 자기가 지금 무슨 밥을 먹었는지 알까?
달콤 매콤한 한천국과 홍어무침이 특히 기억난다. 재첩국 만으로도 힘이 났다. 모밥에 삼합과 홍탁인데, 막걸리가 빠진 이합으로 마음을 달래었다.
학생들에게 일부러 지친 얼굴을 지어 보라 했다. 교수의 빽빽거리는 호통과 잔소리에 지친 모습을 숨기지 말라 했다. 내가 웃는 이유는 셀카 모드로 하면 자동 미소를 짓게 되는 병이다. 나도 학생들만큼 열심히 했다.
연구용 모내기...
한 세 번을 계획을 짜고 고치고, 모내기 인원과 일정을 맞추고, 논을 새로 만들고, 계획대로 종자를 찾고, 선종하고, 침종하고, 파종하고 육묘하고, 논의 품종별 라벨을 만들고, 실험 계획대로 논을 구성하고 구획을 정리하고, 라벨 붙인 폴대를 박고, 모배치를 하고, 비료를 치고, 물을 잡아 모내기 준비를 한다. 한 달은 족히 걸리는 작업이다.
모를 심는다. 한 개씩 떼어다, 섞이지 않게, 뜨지 않게, 너무 깊지도 않게. 한 줄 한 줄 못줄 잡이가 넘기면, 구역마다 정해진 조장은 모춤을 잡고 모를 나누고 폴대를 다잡는다. 못줄 잡이는 못줄을 넘기고 잘못된 모를 고르고 모내기꾼들의 실수를 잡고 교정하며, 때때로 분위기를 돋운다. 속도를 조절하며 분위기를 잡다 보면 경칭이 어려우니 가급적 고령의 경험자가 못줄을 잡는다.
연구용 모내기는 섬세해서 일탈자에겐 가벼운 체벌성 멘트도 농을 섞어 할 수 있다. 너무 느려도 빨라도 의심스럽다. 균형과 조율의 작업이다.
모를 심다 보면 빠진 자리가 있다. 비워 놓으면 실험용이라 비료기와 잡초 경합, 식물 간 경합 문제로 데이터가 문제 되니, 보라색 또는 남색 잎의 자도를 심는다.
모내기를 다 마친 후, 못줄 정리, 라벨 정리, 계획과 비교를 다 하고, 장화와 모자까지 정리하며, 남은 모들이 떠돌아다니지 않는지, 보식을 위한 남은 모가 떠돌아다니지 않은 지까지 확인하고, 내일 날씨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자리를 나선다.
모밥을 먹을 때, 밥 약간을 집어다 '고수레-' 하면서 주변에 던진다. 그것을 잊지 않으신 부장님께 감사한다. 우리 논에 짐승들과 새들이 들지 않고 이 밥을 먹고 참기를 바라며, 풍년을 기원한다.
그런데, 우리 논은 풍년의 논이 아니다. 염이 잘 들고 계획대로 강자와 약자가 드러나야 하는 논이다.
첫해라 부족하였다. 새 논에 새 사람들.
선생질 6년 차, 못된 버릇은 여전한 것을 보니, 나도 새로 나야 한다. 서산에서 첫 제자들과 개고생 했던 때가 기억난다. 힘들었지만 그 덕에 오늘이 있다. 간척지 벼 현장 연구를 가장 하드코어적으로 하는 팀이 우리가 아닌가 한다.
네비도 안 나오는 곳에 이제 열 명도 넘는 사람이 함께 한다. 이쯤 되면 성공한 게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