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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차 농학도의 인생 중간정산

90까지 산다면, 난 50년을 채우겠지.

by 진중현


서울 중간 정도 수준인 우리 학교에서 연구를 하게 되면 겪는 어려움 중 하나가 사람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 보면, 사람의 상승 욕구는 당연한 것이어서, 김박사넷 등을 보면, 사람은 끝없이 공부에 따른 명예욕이 있어서, 서울대나 카이스트 등에서도 계속 일어나는 일일 것이다.


우리 연구실은 현재, 포닥 1명, 박사를 앞둔 학생 2명과 석박통합 1명, 연구원 2명과 인턴 2명이 있다. 대학원 진학 의사를 분명히 했으나, 코로나 시국 등으로 인하여, 3명의 외국인 대학원 진학 예정자가 입학을 못했다.


작년 이맘때부터 사람의 들고남이 잦아서 피곤하였다. 거기에 연구실의 리모델링 및 다양한 공사가 있어서 이제 좀 지쳤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포닥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조기 귀국을 결정하였다. 포닥 2명과 연구원 1명이 얼마 일하지 않고 떠난 사이, 박사과정 학생들의 희생이 커졌다.


올 초에 마쳤어야 할 공사가 다양한 일이 생기면서 6월 말까지 지연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도 그 사이, 번듯한 실험실과 학생 연구실, 종자 저장실, 암실, 온실 2동(서울과 화성), 컨테이너 팜 연구실 1동, 실험농장 등 연구를 위한 공간이 거의 다 확보되었다.


협업이 더욱 강화되어, 이엘엔아이와 기자재 등을 임대할 수 있게 되어, 환경조절 설비도 사용 가능하게 되었고, 해남의 파트너와 연대하여 스트레스 포장도 확보하여, 시험 운영에 들어갔다.


성장은 늘 피곤함을 수반한다. 만으로 49세, 내년 1월에 만 50이 된다. 노안 때문에 밤 10시 이후에 글자가 잘 안 보인다. 일 년에 한두 번씩 겪지 않던 장염으로 힘들고, 심장이 약간 이상하게 뛰어 왼쪽 팔에 통증이 오곤 한다. 만성 비염은 환절기나 온도차, 건조 등으로 거의 늘 달고 산다. 나를 계속 괴롭히던 위궤양은 덜한데, 그게 장염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사라져 버린 병이 있다. 종종 등 한가운데를 찌르는 것 같던 통증은 사라졌고, 고질병인 왼발의 통풍은 잠만 잘 자면 없어진다. 온몸이 종종 간지러워서 피부 여기저기에 두드러기가 나곤 했는데, 그것은 거의 사라진 것 같다. 그러나 탈모는 심해지고 있다.


나이 50이 되니, 신체가 달라지고 생각도 달라지고, 몸은 점점 나약해지고, 그러나 세상에 대해서 이제 좀 어떻게 살아야지 하는 생각은 조금씩 더 명확해지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거의 보지 않는다.


이전에는 모자란 것들이 보이더니, 지금은 차고 넘치는 것을 경계한다. 예전에는 말하지 못한 서운함이 있었으나, 지금은 괜한 의욕에 종종 후회한다.


나는 성장이 늦은 사람이다.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 오랫동안 열정과 의욕을 불어넣어 주었다. 나는 그것이 내 미성숙에서 왔음을 깨닫는다. 왜냐하면, 열심히 하였으나 여전히 배고프고, 그것이 나의 정신적 성숙에는 그다지 도움을 못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주말에 쉬어야 한다. 오늘 하루는 푹 쉬기로 했다. 캘린더를 뒤적거리고, 30분 단위로 일정을 짜오던 인생에 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내가 많은 것을 성취했다고 칭찬해 주곤 한다. 그러나, 그 실체는 내가 제일 잘 안다.


지금은 나의 주변에 공을 돌려야 할 때이고, 감사함을 돌려야 한다. 여전히 나는 우리나라에서 경제적으로 중간도 못된다. 가끔 서운했다. 열심히 살아도 여기구나 하고. 그런데, 내 열심은 정직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돈을 벌 열심이 아니었는데, 돈을 아쉬워하는 비겁을 보였다.


그런데, 50이 되니, 돈 자체가 무상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니, 내 삶이 다시 보인다. 그렇게 후회할 삶은 아니다. 왜 그럴까. 그래도 난 내가 살고 싶은 삶을 그럭저럭 살지 않았나. 그래서, 늘 돈은 부족하지 않나. 그리고 주변에 얼마나 좋은 친구들이 많나.


그제 학생들과 밥과 차를 하면서,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친구요 관계라 하는 말이 나왔다. 내가 제일 존경하던 Dr. Brar는 '불필요한 우정을 경계하라. 그것은 학문을 좀먹는다' 했는데, 그때는 '우정'이라는 단어가 크게 들렸는데, 지금은 '불필요한'이라는 단어가 크게 들린다.


내가 복이 많음은 내 꿈을 이해하는 사람이 늘 옆에 있고 함께 해 주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나도 그들의 꿈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자신감과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대체 불가한 지식보다 대체 불가 관계가 삶의 중심에 있을 때 행복감이 커진다.


어제는 학생 때에는 스쳐 지나갔던 선배와 후배를 만나, 오히려 더 깊은 인생의 대화도 나누었다. 그 대화에서 내가 본 것은 사람이 아니고 그 사람의 입과 눈이 아니었다. 그 사람의 마음, 머릿속, 그리고 그 사람의 내일과 미래였다. 이제 그런 게 보이는 나이구나.


나에게 분명히 큰 변화가 오고 있음을 안다. 그것은 신체의 변화를 포함하고, 나에게 적잖은 서러움을 준다.


불과 6년 전쯤만 해도 내 책상은 깨끗했다. 찜찜하게 남아 있는 To-do-list는 나에게 혐오의 대상이었다. 가끔 그런 말도 들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빠른 회신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이 말은 바로 작년까지도 들었던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애써 무시하려고 한다. 내가 그들에게 불성실해서가 아니다. 나에게 더 소중한 것은 관계이고, 그 관계도 우선순위가 지켜져야 한다. 이제는 간절함과 진심이 더 소중하고, 간절함과 진심은 값어치를 지불해야 한다.


내 책상과 사무실이 조금은 지저분해지더라도 용납하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려고 한다. 하지 못한 일들을 아쉬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일을 잘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일에 안 먹힌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 것 같다. 가끔 번아웃되면 삶을 다 산 것 같다가도 중간중간 삶의 새로움을 깨닫는 순간이 오면, 참 신기하다.


나는 천천히 나이 드는 사람이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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