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국제벼연구소를 방문해서 진행된 몇 가지 프로그램 중에, 한국 출신의 김성률 박사의 연구 진행 상황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김성률 박사는 중요한 형질 발굴과 새로운 유전자원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 중에 야생벼 자원 활용 새로운 유전자 발굴이 중요한 목표 중의 하나이다.
또한, 야생벼 자원을 서로 구분하는 분자표지를 개발하여, 야생벼를 도입하거나, 이것을 판별하여 활용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축적하고 있다.
김성률 박사는 경희대 박사 출신으로 토종 연구자다. 식물분자 생물학계의 석학이신 안진흥 교수의 제자이며, Dr KK Jena라고 하는 유명한 인도 출신 과학자의 박사 후 연구원으로 왔다가, 그의 뒤를 이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김성률 박사가 자신의 야생벼 온실을 보여주겠다고 하여, 함께 방문하니, 내가 2006년 처음 IRRI에 Dr. Brar가 운영하던 야생벼 온실 방문 기억이 난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일꾼도 많고 연구원도 많아 북적거렸었다. Dr. Brar가 표준화시킨 야생벼 연구의 성과로 이후 Arizona 주립대의 Rod Wing을 중심으로 OMap이라는 Oryza genus 전반에 걸친 대규모 유전체 분석 프로그램이 시작되었고, 이때 논문을 통해 알게 된 유의수 박사님과 지금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이곳은 벼의 기원과 다양성 연구에 있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실증적 연구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내가 IRRI에 처음 오게 된 것은, 내 서울대 지도교수님과 IRRI의 유명한 벼육종가이셨던 Dr. Darshan Brar와의 오랜 인연 때문이었다. 이전부터 국제 쌀농업 특히 벼 신품종 육성에 대해 관심을 가져온 내게, 교수님이 Dr. Brar를 추천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CGIAR 최고과학자상을 수여하시는 등, 벼의 신품종 개량과 세계 여러 나라의 후학 양성 등에 평생을 바치신 거장 중의 거장이시다. 내 처음 포닥 생활 (실제로는 방문연구원으로서)을 도와주신 이가 Dr. Brar이시니, 이 얼마나 큰 영광이 아니었겠는가.
워낙 조용하시고 근면하시며 평생을 봉사하시기에 여념이 없으셨던 분이신 데다, 시크 교도이면서 쌀도 드시지 않는 등의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기가 쉽지 않았던 분이었으나, 특유의 배려심과 따스함으로 내 부족함을 늘 먼저 찾아 채워주셨던 분이셨다.
그분이 내게 남겨주신 몇 중요한 말씀들이 기억나 남겨 두려고 한다.
1. 과학자는 너무 많은 친구들을 사귀어서는 연구에 몰입할 수 없다. 너무 많은 우정은 진정한 (과학자로서의) 기여를 방해한다.
2.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은 되도록이면 짧을수록 좋다. 그에 대한 질문자의 재차 질문을 기다려라. 그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주어라.
3. 오늘 나에게 내어 준 숙제를 당장 해내기보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이 좋다. 문장의 단어 하나하나가 미래의 나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
4. (내가 한 어떤 부탁을 들어주시면서, 그에 대한 해결을 하는 중 질문을 하나 던지시더니, 잠깐 주저하는 나에게) 너는 지금도 생각하느냐. 무엇을 해야 할지는 너에게 달려 있다.
5. (재정적 곤란에 빠진 나에게) 네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서슴지 말고 이야기해라. 일단 이야기를 하면 도움이 올 것이다.
6. (어떤 결론이 나지 않는 것에 조급한 나에게) 작은 부분들을 놓치지 말라. 사람들은 네 행동을 어느 순간에도 주목하고 있다.
7. (마지막 20년 넘게 근무하신 직장을 은퇴하시고 인도로 돌아가시는 마지막 인사에) 잊지 말고 끝까지 남을 돕고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Dr. Brar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심장병 관련이라고 들었는데, 늘 건강하고 감기 하나 걸리지 않으시던 열정의 소유자가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정말로 철저한 자기 관리로 꾸준한 연구로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신 분이었다.
아래는 Dr Brar의 육성이 담긴 야생벼 연구 내용이 나온다.
https://www.youtube.com/watch?v=XXVRlwh8FpE
온실을 방문하니, Boyett이 있다. 당시 Dr. Brar 연구팀에 Joie Ramos라는 여성 연구원과 Bert, Boyett이라는 시니어급 온실 담당 연구원이 있었다. Joie Ramos는 박사가 되어 IRRI에 돌아와 필리핀 연구자들의 선임이 되었다. Boyett도 온실과 농장의 전문가로 시니어가 되었다.
Boyett을 만나 서로를 껴안고 잠시 눈물이 났다. 내 첫 질문은 'Bert는 어디 있어?'였다. 이번에 Covid19으로 유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We lost Dr Brar'.
우리의 첫 두 마디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안부였다. 보통은 잘 산다고 말하는 상투적인 것이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두 위대한 사람들의 명복을 빌었다. 그래도 산 사람들은 열심히 산다. 내가 IRRI에 방문하여 생소함을 느끼지 않게 하는 사람들은 필리핀 출신의 과학자들이다. 우리는 떠나도 그들 중에는 평생을 바치는 이들이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몇 개의 사진을 다시 모아 보았다. 우리 가족이 처음 도착했을 때의 사진은 해상도가 나쁘지만 가장 행복한 사진이다. 나는 존경하는 분들과 중요한 사진들이 별로 없다. 좀 아쉽다.
육종과 건물로 사용되던 NCBL(Nyle C Brady라는 유명한 토양학자로서, IRRI의 과장도 지낸 적이 있는 분의 이름을 딴 건물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토양학 교과서인 Nature and Property of Soil의 저자임) 앞을 지나는데, Joie가 보여서 서로를 잠시 쳐다봤다.
그래서는 안되는데, 그 잠시의 시간 동안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왜, 내가 많이 늙었지?' Joie가 자기의 흰머리를 말하는 것이다. 아니라고 하고 싶었는데, 내 빠진 머리를 보여주며 위로를 삼는 게 나았다.
IRRI의 건물들은 처음 지어지고 난 후, 거의 변하지 않았다가 최근에 여기저기 변화가 보인다. 유전자원센터 건물이 전면에 나오고 리모델링되는 것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연구 그 자체는 힘들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이것은 지금 하기에는 적절치 않다. 이제 나는 국제벼연구소를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이고, 내 연구실에서 내 역량만큼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는 고독한 길이다. Dr. Brar는 나에게 과학자의 고독을 보여준 분이다. 그것은 위대한 고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