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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 Jul 26. 2020

가족이 뭘까요?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를 돌아보며



*드라마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린 잎들이 여름의 색으로 갈아입기 시작한 어느 날에 왔다가 더위를 자꾸만 유예하는 듯 긴 장마철의 한 가운데에 떠나간, 따뜻한 푸른색을 띈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이하 별가족). 너무나 좋았던 드라마를 만나 행운이었고 앞으로 곱씹게 될 날들이 분명 많아질 것을 예감하며, 그동안 쌓인 생각들을 풀어본다.     


드라마는 가족회의를 소집하는 어머니 이진숙(원미경)의 전화로 시작된다. 귀찮음에 몇 번이나 피하려 했지만 끈질기게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 애써 밝은 목소리를 꾸며내 보이는 둘째 김은희(한예리)와, 아직 독립하지 못 하고 집안 구성원들의 눈치를 살피는 막내 김지우(신재하). 일을 그만두기까지 하며 노력했던 임신을 포기하고, 그동안 포기했던 것들을 하나씩 찾아가려는 냉정하고 이성적인 첫째 김은주(추자현). 일이 줄어 야간산행을 즐기는 아버지 김상식(정진영). 그래도 잘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평범한 가족 앞에서 어머니는 '졸혼' 선언을 한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어머니가 제2의 인생을 찾는 이야기일까 싶었는데, 산에서 사고를 당한 아버지가 기억을 잃은 채 어머니에게 프로포즈를 했던 22살의 기억까지만 가진 채 나타난다. 16회 동안 이 가족은 본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         



⓵ 살아온 삶을 마주보다. 이진숙, 김상식의 삶.  

  

드라마가 끝이 나고 되돌아보면서 좋았던 것 중 하나는 부모님 캐릭터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점이었다. 드라마도 현실과 맞닿아 있기 때문인지 많은 드라마를 보았어도 주인공 부모님 이름까지는 기억하지 못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드라마는 (주인공의) 어머니, 아버지가 아닌 이진숙, 김상식을 기억하게 만들었다.

    

이 둘은 가부장제 안에서의 성역할을 충실히 이행해온 캐릭터이다. 다시 말하자면 가족들 얼굴 볼 시간도 없이 생계유지를 위해 노동만을 해온 아버지, 그것이 역할과 책임을 다 하는 일이라고 믿으며 살아온 김상식이 있다. 22살 프로포즈를 하면서는 누구보다 좋은 남편이 되겠다, 아이를 가장 행복하게 키우겠다며 약속했고. 사랑하는 여자와의 결혼에 성공한, 행복한 남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만족과 약속한 노력 대신에 실체 없는 불안과 평생을 싸우게 된다. 상대적으로 집안이 좋고 고등교육까지 받은 이진숙에 대한 일종의 자격지심, 본인이 가상으로 만들어낸 남성성과의 비교. 쉽게 해결되지 않는 가난 속에서 아내가 부족한 자신을 떠날 수도 있다는 불안. 이 말도 안 되는 불안은 끝내 괴물이 되어 상식을 잡아먹는다. 아니, 그는 스스로 불안을 선택함으로써 변했다. 폭력적이고 더없이 가부장적인 남편이자 아버지로. 그렇게 시간을 속절없이 흐른다. 본인이 살아온 삶은 돌아보지 못 한 채 일이 줄자 아내가 졸혼을 요구한다고 생각하고, 아이들이 본인에게 연락을 자주하지 않는다며 섭섭해 하는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아버지 상이다.     


드라마에서는 이러한 아버지를 시청자들이 냉소하며 비판하게만 두지 않는다. 선택한 것은 스스로 반성하게 한다. 이 부분은 드라마에서 가장 판타지적인 요소라고 생각했는데 본인이 아내와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 약속했던 22살의 기억으로 돌아갔다가 현재까지의 기억을 되찾는 과정을 통해 사랑 대신 폭력적 언사와 행동을 행해왔던 자신을 마주보게 만든다. 이 과정이 설령 어느 시청자에게는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은 반성으로 비추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연민의 대상으로만 나이든 아버지를 그려냈던 수많은 컨텐츠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유의미한 변화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가부장적이지만 그럼에도 가족을 위해 노력한 희생적인 아버지를 존경하고 애틋해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그렇게 보아왔던 것이 가부장제를 공고히 하고 많은 가정을 병들게 만들었다. 드라마는 아버지의 '모순된 사랑'에서 이제는 '사랑'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한다.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다.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할 수 있는 노력을 아내와 자식들에게 다시 시작할 때이다. 그것이 김상식이 보여준 '사랑'이 아닐까.        


이진숙은 대학 교육을 받던 도중 혼전임신으로 아이를 선택하고 김상식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인다. 이 때문에 집안에서 쫓겨났으며 이민을 떠난 친정 식구들을 평생 그리워하며 살았다. 배운 것과 가진 것이 없었던 김상식을 선택한 것은 그가 보여준 약속 때문이었다. 작은 방이지만 그래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남편이 자신에게 숨기는 게 생기고, 행동이 변하며 오해로 점철된 관계에서 이진숙은 또 한 번의 선택을 하게 된다. 엄마로서만 살 것. '자식들'을 위해 참을 것.    

 

많은 날들을 견뎠고 아이들이 자랐다. 큰 딸과 작은 딸이 서로 연락을 끊고 지낸 지 많은 시간이 흘렀고, 막내아들은 아직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지 못 한 채 같이 살고 있지만 그래도 다 키워냈다. 이진숙은 창고로 쓰던 방을 본인의 방으로 꾸며 놓고 세계고전문학과, 요양보호사 준비를 위한 서적을 읽는다. 틈틈이 봉사 형식으로 요양원에 가 노인들을 돌본 지도 꽤 되었고, 이제 때가 되었다.     


그렇게 이진숙은 졸혼 선언을 했다. 덕분에 김상식과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게 악화되고 아이들은 본인을 이해하지 못 했지만 혼자만의 삶을 꿈꾸며 행복했다. 하지만 김상식이 22살의 기억을 가지고 본인에게 '숙이씨'라 부르며 반짝거리는 눈빛을 하고 나타난다. 그 덕분에 이진숙도 잊었던 연애 시절, 신혼 시절이 떠올랐다. 어떻게 변했는지 알기에 상식이 마음의 문을 조금씩 두드려 와도 굳건할 뿐이다. 상식이 기억을 찾고 사과를 해도 다시 데이트를 시작하면서 평생을 해왔던 오해가 풀렸어도, 이진숙은 너무 오랜 세월을 견디면서 아내와 엄마의 이름으로 받았던 상처가 쉽게 낫질 않는다.     


결국 마지막회에 어디로, 얼마나 여행을 가는지 묻는 자식들 질문에 대답 없이 홀로 떠난다. 엄마, 아내의 시간이 아닌 이진숙 개인의 시간을 시작한다. 자신의 시간을 쌓기 시작한 이진숙은 집으로 돌아왔어도 다시 그 전으로 돌아가지는 않으려 한다. 아이들과 남편, 집에 얽매이지 않는. 이진숙이 바랐던 졸혼은 단순히 아내와 엄마로서의 졸업을 넘어, 잊었던 이름과 시간을 되찾는 일이 아니었을까.     



김상식과 이진숙은 부모님 혹은 그 이전 세대를 대표할 만한 캐릭터들이었다. 아빠, 남편이니까. 엄마, 아내니까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는 사회가 만들어낸 통념은 개인을 옭아맨 끝에 상처만을 남겼다. 별가족에서는 단순히 그 시간을 후회하고 연민하는 걸 떠나 자신을 마주하게끔 했다. 그에 그치지 않고 사과를 해나간다는 점, 가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상처는 단숨에 나아질 수 없음을 인정하고 계속 노력할 것을 보여주는 모습이 여느 드라마와는 다르게 인상 깊었다.     



⓶가족이니까? 가족이니까!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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