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를 돌아보며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⓶ 가족이니까? 가족이니까!
오랜 시간 동안 부부 사이, 부모 자식 간 문제를 지적할 때 원인으로 ‘대화 부족’를 꼽는 사회에서 살아왔다. 아니, 살고 있다. 이런 현실을 생각했을 때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라는 드라마 제목은 오히려 공감을 부른다. 드라마 내에서도 가족이니까 미루고, 하지 않았던 대화들 때문에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어떤 과학자가 그랬어. 우리는 지구 내부 물질보다 태양계 물질을 더 많이 안다고. 지구에 살고 있는데 지구 내부는 알아서 뭐하냐, 이런거지. 가족이 딱 그래.”
“가족의 문제가 뭔지 알아? 할 말을 안 하는 거야. 먼지처럼 털어내 버릴 수 있는 일을 세월에 묵혀서 찐득찐득하게 굳게.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빠앙 하고 터지는 거지.” 3회
어느 시절에는 서로의 존재를 알지도 못 했을 남인 두 사람이 만나 가족으로 살아갈 결심을 하고, 함께 살기 시작했으면 얼마나 부딪치는 것이 많을까. 또 얼마나 다를까. 부부는 그래서 참 신기한 것 같다.
별가족 내의 부부 진숙과 상식은 서로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게 너무나 많았다. 그리고 같이 한 세월 40년만큼의 오해와 상처가 쌓이고 찐득찐득하게 굳어 둘 사이에 벽을 만들었다.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켜켜이 쌓인 오해들을 보며 그들이 사랑을 잃고 보낸 세월이 안타까웠다. 내가 믿는 최악이 정말 사실일까 두려워 묻지 못 했지만, 묻지 않음으로써 이미 진실로 단정 짓고 한 문장뿐이었을 질문을 하지 못 해서 서로를 미워하며 보낸 시간들. 남편 상식에게 사고가 없었더라면 진숙과 상식은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준 채 졸혼을 하고 죽을 때까지 사과나 위로을 하지 못 했을 수도 있다.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남으로 살아온 세월보다 가족으로 산 세월이 더 긴 부부가 서로를 미워하며 남보다 못 한 채 눈을 감았을 수도 있다. 부부, 가족이라 할지라도 상대방은 내가 아니다. 나의 말, 행동이 언제든지 의도와 다르게 비춰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살펴야 하며 상대방도 그럴 수 있으니 질문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간단한 한 마디지만 의외로 말하기 어려운 단어들이 있다.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이같은 표현들은 어느 순간 가족에게 더 어색해지고 야박해진다. 가족이니까 말하지 않아도 이해해주겠지, 알겠지 하는 마음. 사실은 표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쑥스러워서 혹은 귀찮아서 넘긴 한 마디가 내가 누군가에게 진 빚이 될 수도 있다. 어른을 유독 어려워하고 아랫사람에게 표현이 인색한 문화를(도대체 어쩌다가) 가진 우리나라에서 부모가 자식에게 고맙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건 유독 큰일처럼 느껴진다.
어린 두 동생과 사고로 장기간 입원한 아버지, 아버지를 간호해하는 어머니. 큰 딸은 막 사회초년생이었다.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말없이 기간제 교사와 주말 과외를 병행하면 집을 지탱한다. 큰 딸 은주에게는 숨조차 쉬기 버거웠던 긴 시간이었다. 말과 웃음을 잃어가는 딸을 아버지도 어머니도 알았다. 다시 일을 시작한 아버지가 선택한 것은 집에 보내는 생활비를 줄이고 남은 돈을 저축해 결혼할 큰 딸에게 건네주는 것이었다. 은주는 그 돈을 쓰지 않았다. 대신 시간이 지나서야 진숙, 상식에게 묻는다.
“그냥 궁금해서. 내 딸 수고한다, 고맙다. 왜 그 말 한마디를 안 해줬는지 묻는 거야.”
“말이 너무 쉬워서 못 했어. (중략) 고맙다는 말을 어떻게 하니, 뻔뻔스럽게. 미안하다는 말을 어떻게 해. 아무 것도 못 해주는데. 말이 무슨 소용이 있어, 말뿐인데.” 7회
“10년 가까이를 계산도 안 되는 돈을 갚겠다고 빚쟁이 마음으로 사셨어요?” 12회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할 때 해결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 혹은 위로 받고 싶어 할 때가 있다. 은주도 그냥 서운했을 것이다. 날려버린 세월에 대한 보상을 이제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 시절의 은주는 친구를 만날 새도 연애를 할 시간도 없이, 가족 때문에 고생하고 있지만 돌아올 곳도 결국 집이었을 텐데 가족이 말뿐이라도 해주지 않았다면 얼마나 외로웠을까. 결국 외롭고 고단함이 쌓인 은주는 가족이 싫어서 가족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서, 또 다른 외로운 길을 선택하고 만다.
형제자매는 어릴 때부터 가장 친한 친구이자 경쟁자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존재이다. 누군가에게는 태어난 순간부터 존재했고 또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가족 구성원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부부만큼이나 신기한 관계가 형제자매이다.
별가족에서 보여지는 삼남매는 각자의 성격, 행동 특성 때문에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장녀 은주와 차녀 은희가 풀어간 이야기가 드라마의 가장 좋은 지점 중 한 가지라고 생각한다. 둘은 정반대이다. 이성이 앞서는 은주와 감성이 앞서는 은희. 남들이 보기에도 닮은 구석이 참 없다. 과거 어떤 사건을 계기로 몇 년째 얼굴도 보지 않는 둘이지만 엄마의 졸혼 선언에 대한 서로의 반응을 완벽히 추측할 만큼 잘 아는 사이이기도 한다. 은희의 사과로 다시 왕래를 시작한 후에도 서로를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부모의 입장에서 보는 자식과, 같은 자녀의 입장에서 서로는 보는 것은 또 다르다. 오히려 또래이기에 가장 잘 이해하지만 이해하고 싶지 않은 대상이기도 하다. 첫째라서 둘째라서 견뎌야 했고 취해야 했던 행동들, 상처받은 일들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한편 어쩌면 인정하기 싫어서 심술로 외면했던 가족 내에서의 언니/동생의 고단함 또한 진심으로 마음 아파한다.
“언니 한때 우리 집 가장이었잖아. 그런데 난 싫었어. 지가 대단히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처럼 말하는 거, 괜히 빚진 마음 들게 하는 거, 난 싫었어. 내가 이렇게 속이 좁은 줄 몰랐다? 우리 언니가, 언니가 날 원망하더라. 몇 년 동안 모른 척 해놓고 이제 와서 동생인 척 하냐고 딴 데서는 오지게 성격 좋은 척 다 맞춰주면서 살면서 나 언니한테 싸가지 없었나 봐.” 5회
“걔 누구 좋아하면 선 긋거든요. 둘째여서 이쪽저쪽 눈치보고 비유 맞춰주고 웃겨줘야 집안이 잘 돌아간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았어요. 겉으로는 그저 초긍정으로 보이니까.” 10회
“가족은 남이 찾지 못 하는 급소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언제든 강력한 한 방을 날릴 수 있다.” 9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가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 상처를 주고 나서는 심장이 부서지는 고통을 느끼며 결국엔 같이 울어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이상하고 복잡한, 딱 떨어지는 표현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게 형제자매 관계이다. 은주와 은희가 붙는 장면들을 보며 훌륭한 연기로도 드라마 자체로도 가슴 뛰게 좋았고, 나와 내 형제의 이야기를 떠올리게도 해주었다.
가족이라서. 가깝기에 깊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표현은 옅어지고 대화는 줄어간다. 서로를 잘 안다고 착각하여 함부로 마음을 어림짐작하는 실수를 잦게 저지르고 있는 게 가족이다. 가족이라서, ~ 해도 괜찮은 게 아니라, 가족이니까 우리는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걸 드라마 ‘별가족’에서는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너무 잘 알고 맨날 지겹도록 보는 가족한테도 노력해야 한다는 거.” 9회
③가족은 아니지만, 친구 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