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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 Mar 02. 2021

시도

2021.02.

나는 불의의 사고로 죽어가고 있다.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그동안 살았던 삶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스쳐간다. 점점 숨이 가빠져오고 눈을 감기 직전 나는 가느다란 탄식을 내뱉은 채 숨이 멎는다. 그 탄식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후회가 적은 삶을 살고 싶어 하면서도 결국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라는 모순된 생각을 품고 살아가는 나는, 아마 마지막 순간까지도 후회했을 것이다. 무엇이 그렇게 후회스러울까. 당장 어제, 그리고 죽지 않았다면 오늘이 되었을 매일의 하루가 마지막 한숨이 된다.면 상상만 해도 우울하다.



사람들의 일상은 대부분 비슷하고, 나의 하루 또한 그 보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비슷한 매일매일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안정을 취하는 것이 사람이다. 나같은 경우에는 짜임새 있는 일과들로 이루어진 일상에 안정은 물론 행복을 느낀다. 그 일과들은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들로 조립된다. 내가 가장 즐겁고 건강하게 일상을 영위했을 때는 조립된 비율이 거의 반반이었다. 그렇지만 해야 하는 일에 대한 비중이 커진 요즘 나는 눈 감는 것과, 뜨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준비시간과 출퇴근, 그리고 업무를 모두 합하면 거의 12시간가량이 된다. 보통 7시간 정도 수면을 취하면 남는 시간은 5시간. 그중에서도 자잘한 집안일들과 반복적인 일과들을 제외하면 하루에 2-3시간 정도가 내가 가치 있게 쓸 수 있는 잔여분이 된다. 이 시간만큼이라도 내가 선택한 일을 하고 싶어서 운동 혹은 독서 등을 계획해놓았지만 (가끔은 실천도 한다) 대부분 실패하고 만다. 그렇게 3개월, 건강은 나빠졌고 마음은 텅 비어있다. 한 달 사이에 두 번이나 위와 장이 같이 탈이 나며 느낀 점은 현재 스트레스와 내 몸 사이의 완충지대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스트레스를 받는 족족 필터링 없이 신체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나는 사라진 완충지대를 다시 건설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아이들 집에 가면 바닥에 깔린 폭신폭신한 매트를 볼 수 있다. 현재 나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불안하게 발걸음을 내딛던 시절 나를 지켜주던 알록달록하고 조금은 어지러웠던 것. 아마 사람이기에 위협하는 충격을 흡수할 나만의 완충 매트가 평생에 걸쳐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다만, 이제는 다 커버렸기에 완충지대의 조각을 만드는 일은 나의 몫이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매일 같은 시간에 책을 펼치는 일. 규칙적으로 몸을 움직여 쌓인 피로들을 풀어내는 일은 거창하지는 않지만 나를 지켜줄 수 있다. 나만의 완충지대를 만들기 위해 조각조각을 찾아 끼우고 닳은 것을 교체하는 일이 일과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스트레스와 몸 사이의 완충지대가 생겨나지 않을까. 2월, 내가 찾기 시작한 첫 조각은 바로 글쓰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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