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도, 나의 석사 생활에도.
영국의 악명 높은 날씨에 대해 모르고 온 것은 아니었지만, 듣고 상상하는 것과 실제로 생활이 되는 것은 역시 너무나도 달랐다.
태어날 때부터 비 오는 것을 혐오했다고 믿고 살아온 나는 그나마 비가 덜 온다는 지역으로 학교를 결정하고야 말았다. 대학 세계 순위도, 학과 순위도 제치고 날씨가 내 석사 생활 고려 순위 1위였던 셈이다.
그렇게 영국에 온 지 8개월 차가 되었다.
작년 8월에 처음 들어와 두 달여간 구름 한 점 없는 행복한 날씨를 만끽하다가-
길고도 긴 겨울을 맞이했다.
대략 10월 말 즈음부터 시작된 영국의 혹독한 겨울.
"그깟 비 오는 것쯤, 살다 보면 다 적응하고 살 게 되어있지! 어쨌든 사람 사는 곳 아니겠어?"
라고 호기롭게 외치며 영국에 들어온 과거의 나 자신을 영국 날씨가 호되게 비웃는 것 같았다.
화창한 영국의 여름 날씨 만을 경험했던 나는 11월 초까지만 해도 영국의 만성 우기(?)를 의심했더랬다. 말 그대로 denial의 단계를 길게 겪었다. 아냐. 이럴 리 없어. 내가 아는 브라이튼이 이럴 리 없다고.
내가 영국의 우중충 하고도 우울한 날씨를 받아들였을 때 즈음 나는 이미 우울증 초기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온라인 자가진단에 의하면 나의 상태는 "전문의 상담 요망"이었다. 한국이었다면 당장이라도 병원으로 달려갔을 거다.
달리 방법이 없던 나는 영국 날씨 발 우울증 풍파를 그대로 맞고 괴로워하는 수밖에 없었다. 영국에서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비싼 보험료를 내고 왔으니 GP에 가볼 수도 있었지만,
짧은 영어로 넓고도 깊은 내 감정의 구렁텅이를 설명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 생각엔 너 괜찮으니 그냥 긍정적인 생각 많이 하고 가벼운 운동이라도 해보는 게 어때? 정도의 처방을 받았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도 했고,,,
한국에 가면 꼭 상담을 받아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나에게 주어진 일에 몰두하려 애썼던 겨울 동안의 나날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영국의 겨울을 보냈다.
비 오는 아이콘으로 도배가 돼서 열어볼 때마다 짜증을 부르던 날씨 앱에 구름+해 아이콘이 등장 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비 없는 그냥 구름 아이콘만 보여도 기분이 살짝 좋아지던 시절,,
영국에 비구름의 그림자가 서서히 걷히면서 거짓말같이 나의 우울도 같이 희미 해져갔다.
언젠가 날씨가 안 좋은 유럽지역에는 계절성 우울이 흔하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내가 당사자가 되어 볼 줄이야. 아무래도 그 계절성 우울이라는 것이 나에게 찾아왔던 모양이다.
내 생활에 변한 건 날씨 하나뿐인데 나를 괴롭혔던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 소모적인 잡념 들은 눈 깜짝할 새 사라져 갔다.
파란 하늘은 그런 힘이 있었다.
가뭄에 콩 나듯 내비치는 파란 하늘을 한 시도 놓칠 수 없었기에 나도 조금씩 야외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화창한 햇살을 맞으며 조깅을 나갔지만 어김없이 중간중간, 혹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비가 오곤 했다.
하루 종일 하늘에서 분무기를 뿌리는 듯 흩뿌리는 비가 디폴트인 이 도시에서
밖에 나가 걸을 수 있을 정도의 시간만 허락해준다면 그 뒤에는 비가 오든 태풍이 불든 그저 좋았다.
그렇게 봄이 오는 줄 알았다.
내가 사랑에 빠진 브라이튼의 여름으로 서서히 가고 있는 줄 알았지.
우울한 날씨를 핑계로 미뤄 왔던 것들이 많았다.
오로지 먹는 걸로 풀어왔던 스트레스도
언젠가부터 갈 길을 잃어버린 내 석사 생활도 이제야 다 제 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반년이 조금 넘게 지난 유학 생활 동안 겪어온 여러 가지 장애물 들은 예상보다 훨씬 나의 생활을 침해했다.
이미 두 번의 해외생활을 겪어봤고 당연히 어렵고 힘들 줄 알고 온 유학이었음에도,
언제나 현실의 벽은 내 상상 속의 벽보다 훨씬 높고 단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유학을 오고야 만 것은 나의 선택이었던 탓에 그로 인한 괴로움도 오롯이 나의 몫일 수밖에 없었다. 단 하나 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사실은 "그래. 이럴 줄 알았지."라고 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다.
생각보다 더 괴로웠지만 어느 정도 예상했던 어려움들은 그래도 참을만했다.
마음속에 참을 인을 수 백번 되새기며 인내로 겨울을 보내고 이제 막 이곳저곳에서 꽃을 피우려는 차에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판데믹이 나타나 내 계획을 몽땅 망쳐버릴 줄 대체 누가 알았을까.
첫 학기에 비해 조금은 지루하게 2학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래도 한 번 해봤다고 과제들 하나하나에 목매지 않게 되었고 적당히 시간을 들여 큰 스트레스 없이 공부를 해 나갈 수 있었다. 앞으로 진로에 대한 압박,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내가 선택한 시간을 즐기는 법을 터득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던 중이기도 했다.
큰돈 주고 해외에 나와 대학원을 다니다 보면 가성비, 기회비용 이런 것들에 집착하면서 괜한 시간낭비 겸 셀프 고문을 하게 되는 시간이 많았다.
어쨌든 스스로 넘어야만 했던 감정의 산들을 넘고 넘어 해탈과 약간의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고 있을 무렵.
긴 겨울의 끝에 나에게 주는 선물로 예약한 포르투행 비행기에 타기 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을 때.
이제 막 봄의 향기가 퍼지기 시작했던 바로 그때
코로나의 영향이 내 생활권에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미 두 달 여간 전 세계적으로 난리가 나고 있었지만
워낙에 집 밖을 안 나가고 세상만사에 무덤덤한 나에게 코로나의 영향은,
하필이면 내가 살고 있는 브라이튼에서 확진자가 발생해서 잠시 예민했던 게 다였다.
이때 영국의 확진자 수는 10명 미만이었다.
비슷한 무렵, 중국인 학생들이 chinese new year를 보내고 영국으로 대거 입국하는 시기가 겹쳐서
진짜 조심해야겠구나. 이러다 일 나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을 잠시 했던 것 같다.
물론 영국에서도 꾸준히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었지만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나라들에 비하면 잔잔하게 흘러가는 듯 보였다.
그 후로도 계속해서 세계는 점점 폐쇄적이 되어야 했고 사람들의 일상은 크게 달라졌다.
covid-19가 pandemic으로 선언되기까지 영국이라고 예외는 아니었겠으나,
과하게 무딘 성향을 가진 나는, 게다가 태생적으로 집순이인 나는 심경의 변화도 생활의 변화도 느끼지 못한 채
어쩌면 멍청하다 싶게도 태연했다.
학교에서 이제는 온라인 강의를 하겠다 공지했을 때까지도 마치 타인만의 일인 듯 아무렇지 않았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언제나 위기상황에 제일 행동이 빠른 건 중국인들이다.
강의가 온라인으로 전환되기 무섭게, 중국 친구들은 우르르 중국으로 돌아가기 바빴다.
고작 2주가 조금 넘는 짧은 시간 동안 나의 영국 생활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빠르게도 흘러왔다.
휴지를 못 사게 될까 불안했던 날도
아마존에서 말도 안 되는 금액을 주고라도 마스크와 세정제를 당장 사야만 했던 날도
하루아침에 텅텅 비어버린 마트에서 황당했던 날도
200만 원 300만 원이 장난인 듯 치솟는 비행기 값을 보면서 벙쪘던 날도
그래, 이럴 줄 알았잖아- 라며 나를 위로할 수 없었다.
나에게만 일어난 불행이 아니기에 혼자 감당해야 하는 역경(?)은 아니지만,
먼 타국에서 이방인으로서 겪는 소외감, 불안함과 더불어
이렇게 유학 생활이 끝날 수 있다는 허무함이 나를 더 외롭게 한다.
나라와 가족의 울타리란 뭘까.
정말이지 생소한 기분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해도 영국에 남으려고 해도 영영 울타리의 밖에 있는 사람이 된다는 건.
서머타임도 시작되고 날씨는 따뜻해지지만
아직도 내 영국 생활은 겨울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