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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지 Jun 30. 2020

3달 만에 앉아서 밥을 먹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유럽 코로나 극복기

유럽의 작은 섬나라, 아일랜드는 코로나의 확산을 막기 위해 3월 이후로 락다운이 시행되면서 모든 식당뿐만 아니라 카페도 문을 닫았다. 4월부터 점차적으로 문을 열었지만 식당 안에서 식사는 불가능했고 카페 또한 배달이나 포장(takeaway)으로 음식을 받아먹는 방법밖엔 없었다. 평소 집중력이 필요할 때 주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노트북을 자주 펼쳤던 나는 락다운이 시행된 이후엔 나의 작은 방 안에서 키보드를 두들겨야만 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해 외식을 해야 하는 날이면, 식당에서 음식을 포장해서 나와 차가운 길바닥에 쪼그려 먹고, 벽에 기대어 허겁지겁 끼니를 때웠다. 길거리에는 벤치도 많지 않아서 앉을 곳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찾아다니다가 포기한 적도 이미 여러 번이다. 뜨거운 카푸치노가 생각나는 날에는 카페에서 종이컵을 들고 나와 앉을 곳을 찾아 서성이다 커피를 절반 이상 마셔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길을 지나가다가 여기저기 그냥 걸터앉아서 먹는 가족이나 일행들을 보는 것도 어느새 일상이 되고 있었다.



6월 29일 월요일, 드디어 안에서 음식을 섭취할 수 있다!

드디어 식당 안에서 앉아 음식을 섭취할 수 있다는 완화 조치가 발표되었다.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평소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으러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식당에 들어선 순간 보이는 ‘앉아서 먹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의 그 감격은 잊을 수 없다. 식당에 음식을 들고 앉는 순간 행복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지난 3달간 언제쯤 식당에서 앉아서 먹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물론 아직은 모든 식당 안에서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식당 안에서도 테이블 간격을 철저히 유지해야 하지만 더 이상 길에 서서 불편하게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했다.


삼고초려 끝에 만난 ‘앉아서 커피를 마실  있는 스타벅스

이제 식당에서도 밥을 먹을  있는데, 카페도 앉을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에 주위 스타벅스를 찾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들어선 곳은 좌석이   없어서   있었고  번째로  곳은 의자가 없어서 아예 앉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아주 작은 스타벅스였는데, 창가에 배치된  형식의 테이블과 의자 4개를 제외하고는 앉을  없게 막아둔 상태였다.

오른쪽 기사는 레스토랑이 오픈할 때를 가정한 사진....;;

들어가자마자 먼저 직원에게 저기 창가에 앉아도 되냐고 확인한 후에야 커피를 시키고 앉아 키보드를 두드릴 수 있었다. 카페의 어수선한 음악소리와 기계에서 딸깍딸깍 커피 내리는 소리, 우유를 칙- 스팀 하는 소리를 오랜만에 들으면서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니 그동안 내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이제야 점차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고 느껴졌다.



은행 입구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는 이유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모든 펍 또한 문을 닫았다. 최근 일주일 내에서야 생맥주 테이크 웨이가 가능해졌고, 조용했던 펍 앞에는 플라스틱 컵을 들고 서서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고 일찍 문을 닫은 은행 입구 앞에 자리를 펴고 앉아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그동안 안에서든 밖에서든 먹을 수 조차 없고, 지인들과 시간을 보낼 장소도 잃어버렸던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와 펍 앞의 거리를 가득 채웠다.

이제 완화 조치 발표가 시행된 지 하루가 지났다. 아직은 물건을 사러 갈 때마다 줄을 길게 서야 하고, 서서 음식을 먹거나 포장해서 집에서 먹어야 하는 일이 더 많지만 이제 점점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는 중이다. 당연한 것을 누리지 못했던 지난 3달간 깨달은 것은 지금도 지나쳐가는 당연한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돌아오는 7월에는 시원한 기네스를 들고 거리로 나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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