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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x Oct 31. 2016

걷기왕

네 모습 그대로도 괜찮아

*스포일러주의


-꿈과  열정!! 노력!!!


딱히 하고 싶은 거도 없고, 그렇다고 잘 하는 건 없고, 욕심도 없다.

근데 난생처음으로 무언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17살 만복이는 4살 때 처음 나타난 멀미 이후 지금까지 쭉

어떤 교통수단을 타든 발생하는 선천적 멀미 증후군 때문에 편도 2시간 왕복 4시간이 걸리는 학교를 걸어간다.

공부는 하기 싫고,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열심히 걸어 학교만 다니던 만복에게

천진난만한 얼굴의 담임선생님은 노력과 간절함! 열정! 을 외치며 만복에게 "꿈"을 만들어 주기 위해 육상부를 추천한다.


담임선생님에게 흑심이 있는 육상부 코치 선생님은 달리는 걸 잘하지도, 재능이 있지도 않은 무작정 오--래 걷는 게 다인 만복을 경보부에 받아준다.

딱히 하고 싶진 않았지만, 공부는 하기 싫고 운동은 왠지 좀 쉬워 보여 담임선생님과 육상코치 선생님의 부채질로 경보를 시작하게 된 만복. 처음 시작은 그랬지만, 아무 능력도 없이 경보부에 들어온 만복을 아니꼽게 생각하는 수지 선배를 보고 처음으로 무언갈 하고 싶어 열심히 경보 훈련을 한다. 만복이는 정말 경보 선수가 될 수 있을까



-열정과 노력? 그게 뭔가요 먹는 건가요?

만복이 육상이 아닌 경보부에 입성하게 된 것은 무언 갈 잘하는 것도 그렇다고 딱히 열심히 하고 싶은 것 없는 만복의 성격과 이어진다. 만복은 여느 고등학생과 같이 친구와 쉬는 시간에 떡볶이를 먹고, 장난치고, 다투고 동네 짜장면 배달 오빠를 짝사랑한다. 하고 싶은 게 없어도 충분히 행복한 만복이다. 만복은 달리지 않는다 왕복 4시간 통학거리를 걸어온 그 모습으로 인생의 레이스에서 만복이는 걷고 있다.

그런 만복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멀미 증후군을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며 나약한 만복의 노력이 부족하다며 다그치는 아빠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노력과 열정이라는 단어로 만복이를 몰아치는 순진무구한 얼굴의 담임선생님

죽을 각오로 경보를 한다며 너 같은 각오의 애는 운동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수지 선배

벌써부터 공무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쉬는 시간에도 앉아 책만 파고 있는 짝꿍 지현

'이렇게 사는 내가 잘못된 건가? 꿈을 가지지 않고 노력과 열정 없는 내가 틀린 건가?'라는 생각이 들 때쯤 경보를 들여다본다.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꿈을 가지고 노력과 열정? 발휘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처음으로 "꿈"이 생긴 만복은 운 좋게 전국체전 선수로 선발돼 발톱이 빠지도록 열심히 훈련을 한다.

만복이의 열정에 불을 제대로 댕겨준 사람은 수지 선배다.

수지 선배는 어렸을 때부터 육상 유망주였지만, 부상으로 운동선수로 달릴 수 없다는 판정을 받게 된다. 하지만 불굴의 의지로 지옥의 물리치료를 끝내고 운동부로 복귀한다. 달릴 수 없는 수지 선배가 선택할 수 있었던 운동은 걷지도 달리지도 못하는 경보. 수지 선배는 여느 운동선수가 보여주는 불굴의 의지 노력 열정 모든 걸 가지고 있다. 목숨 걸고 하는 운동에 목숨 걸 의지도 없으니 넌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 수지 선배는 부상을 숨기며 훈련을 하고 전국체전에 도전한다.

하지만 수지 선배가 달릴 수 없다는 의사의 판정을 받고도 계속 운동을 하게 된 이유는 뭘까 발목 부상으로 의사와 이야기하던 수지 선배는 두려워서요 라고 말한다. 세상에서 그렇게 말한 열정과 노력 의지 내 모든 걸 쏟아부은 운동을 못하게 된 나는? 그 이후는 어떻게 되지? 내가 운동을 못하게 된다면?



전국체전에서 경보하던 만복은 선두로 나서고 있다. 이제 몇 바퀴만 그대로 더 돌면 1위는 만복의 차지. 하지만 만복은 모든 선수가 페이스 조절 실패로 넘어지고 난 뒤 그대로 드러누워 경기를 포기한다. 그러면서 누구보다 환한 웃음을 지으며 이제 됐어 그만할래요 라고 말한다.

그 모습을 생중계로 지켜보던 담임선생님은 절망하며 일어나라고 외치지만 수지 선배와 짝꿍 지현은 그 모습에 오히려 안도한 듯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도 어쩐지 안도감이 맘속에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자의든 타의든  우리 세대는 열정과 노력으로 중무장한 채, 혹은 그렇게 강요받으며 경쟁의 레이스를 쉴 새 없이 달리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저 앞의 목표를 보고 누군가는 내려갈 수 없는 쳇바퀴 굴레처럼 느끼며

그런 우리들이 말간 얼굴로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스스로 이제 됐다고 그만하겠다며 멈추는 만복이의 모습을 보고 편안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냥 네 모습 그대로도 괜찮아"


그래 만복과 수지 선배에게 하고 싶은 말이 그것이 아니었을까 벌써부터 그렇게 목숨 걸지 않아도 돼 아니 앞으로도 그러지 않아도 돼 그냥 네 자체로도 괜찮아 라고 말하는 듯했다. 열정과 노력을 강요하며 꿈이 없는 청년들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세상에서 그냥 네 자체로도 괜찮다고 말하는 느낌을 받았다.

열정과 노력을 강조하는 세상 속에서

열정과 노력으로 산 수지 선배도

열정과 노력 없이 산 만복도

두려웠다고 말한다.

그런 수지 선배와 만복에게 지금 네 자체로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만큼 더 큰 위로가 있을까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하며 공무원 말고 진짜 꿈이 뭐냐고!라고 순진무구하게 물어보는 담임선생님한테

지현은 외친다.

" 선생님이 말하는 꿈같은 거 없어요 열정과 노력 없고 그냥 전 퇴근하고 집에 와서 드라마나 보면서 맥주나 때리는 정도의 돈 벌면서 살고 싶어요 이건 꿈이 아닌가요? 그리고 공무원 되는 거 지금부터 준비해도 엄청 힘든 거거든요??!!"






근래 이렇게 순수하게 웃으며, 편안하게 즐긴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자극적인 서사없이, 그 흔한 유해한 캐릭터 하나 없이 관람객을 웃게 만들고 맘을 따뜻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극장을 나서면서 까지 미소 지을 수 있게 하는 영화. 더불어 앞으로의 수지 선배와 만복 지현을 응원하고 지금의 나도 응원하게 해 준 영화. 너도 네 모습 그 자체로도 괜찮아 괜찮을거야 라고 나를 다독이며 영화관을 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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