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이리의 교사론
학습자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에서 그들과 더불어 이야기하기까지
학습자들에게 귀 기울이는 것에서 그들이 귀 기울이기까지
1. 나 혼자 이야기하는 듯한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한창 설명을 하다 보면, 가끔 나 혼자 독백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초임 교사 시절의 나는 교실에서 분필 하나로 수업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교사가 학습내용을 칠판에 쓰면, 아이들은 공책에 옮겨 적고, 그 후에 학습내용에 대해서 자세하게 또는 보충하여 설명하는 방식이다. 말 그대로 특정 교과 지식이 고스란히 내게서 아이들에게로 전달되는 수업이었다.
아이들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설명을 받아 적고 손을 들어 질문을 하곤 했다. 아이들과 나 사이에는 수업과 관계되는 질문과 대답은 있었지만, 수업 중에 아이들이나 나의 삶과 관계되는 대화는 거의 없었다.
수업 시간 속에서의 나는 아이들에게는 별로 귀 기울이지 않고 그들에게 전달해야 할 것들에 더 많은 관심을 두었던, 그러나 스스로는 너무나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고 자부했던, 그런 보통의 교사였다.
세월이 좀 더 지나 새로운 문화를 가진 아이들이 교실을 채우고, 학교 현장에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교실 수업에서도 다소 변화가 나타났다. 수업의 모습이 제법 바뀌었을 때도 나 혼자 독백을 하는 것 같은 수업은 여전히 간혹 있었다. 그 당시의 나는 수업시간에는 아이들은 무조건 조용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조용히 시키려 애썼다.
그러나 점점 자유로워지는 아이들의 수업 태도는 나를 고민에 빠트렸다. 나는 그때까지도 아이들의 생각과 말에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다만 내게 해당되는 문제들, 즉 내가 가르쳐야 하는 교과내용과 그것을 효과적으로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한 교수방법에만 집중했다.
나는 내가 가르쳐야 하는 교과내용을 잘 계획하고 준비하여 아이들에게 '빠짐없이' 가르쳐야 한다고만 생각하였다.
나는 스스로 결코 권위적인 교사가 아니라고 생각해 왔지만 수업을 할 때의 나는 교사의 권위를 당연하게 생각하며 위압적으로 수업을 해왔던 것 같다. 즉, 당연하게 '아이들은 조용히 듣고, 나는 설명한다'는 식이다.
내가 수업 시간 속에서 아이들에게 귀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교육 경력이 10년이 훌쩍 넘어서이다. 나는 그제야 내 설명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빠른지 알았고, 내 말이 아이들에 따라 제각각으로 받아들여질 뿐 아니라, 같은 공간에서 내 수업을 듣고 있어도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아이들이 나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그 아이들의 말이나 행동, 그리고 생각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거기에 발맞추어 수업을 준비하는 것은 더 어려웠다.
2. 학습자들에게 말을 건네고, 또 그들과 더불어 이야기하기
여러 해를 가르치다 보면 하필이면 유난히 별난 아이들이 모여서 학교가, 아니 교실이 순간 무법천지가 되어버리는 해가 있다. 여학교에서 주로 근무하다가 어느 해 남학교로 가게 되었을 때 그런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해 나는 그러한 아이들로부터 고유한 나의 영역인 '내 수업 시간'을 지키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내가 어려움을 겪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내가 당시 근무했던 남학교는 아이들이 드세다고 소문난 학교였다. 그 학교로 부임하기 바로 전 해만 해도 학교폭력 건으로 신문에 실릴 정도였고 학교에서의 수업 분위기는 교실붕괴 상황까지 이르렀다고 듣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히 내가 부임했던 그해는 분위기가 조금 나아졌다고 하였다.
대부분 여학교에서 수업을 주로 했던 나는 말을 험하게 하지 않는 비교적 우아한(?) 교사였다. 내가 그때까지 해오던 대로, 혹은 내가 상담 연수에서 배웠던 대로 ‘나’ 대화법을 주로 써가면서, 아이들이 무얼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존중'과 '배려'하고자 애쓰며 부드럽게 수업을 했다.
그러자 점차 내 수업시간에 무법천지의 기운이 스멀스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교사들이 드센 남학생들을 휘어잡고자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조용히 진행하던 수업을, 내가 그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부드럽게 수업을 했으니 아이들에게 내 수업시간은 그야말로 그들의 에너지가 집중적으로 분출되는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나는 이제 막 부임해 온, 자신들을 잘 모르는 교사이지 않은가.
다섯 개 반 가운데 두 개 반 정도의 아이들은 그야말로 개구리 튀어 오르듯 종잡을 수 없이 튀어 올랐다. 적지 않은 경력을 가졌던 나는 마치 초임교사처럼 어리둥절했다. 3월 한 달은 거의 멘털이 붕괴된 상태였고, 두세 달이 지나자 나의 수업 진행 방식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6월에는 정말 심각한 내적 갈등이 일어났다.
교사의 권위를 억지로 내세우면서
전통적으로 ‘학생이라면 해야 하는 당연한 행동과 태도’를 요구할 것인가,
좀 더디더라도 그들을 이해하려고 계속 노력해야 하는가.
이런 순간이 바로 프레이리가 말한 ‘교사가 권위자로서 학습자에게 말을 건네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적해주고, 학습자의 자유가 무법천지로 빠져들지 않도록 하는 한계점을 설정하는 순간’이 아닐까 여겨진다. 하지만 프레이리는 이런 순간들은 교육자의 정치적 선택에 맞게, 교육자가 학습자와 더불어 이야기하는 다른 순간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내가 취했던 행동은 어느 쪽일까.
나는 2학기가 시작되자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느낀 그대로 말했다. 1학기에 느꼈던 남학교에서의 나의 당혹감을 말이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수업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아이들이 내 수업 시간을 어떻게 보냈으면 하는지, 내 수업에서 무엇을 배웠으면 하는지, 최소한 그들이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생각은 어떤지 나의 수업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적고 원하는 형태를 적어내게 한 뒤, 최대한 반영하여 수업을 설계하려고 애썼다.
그 후 나는 지금껏 내가 해오던 교사 위주의 수업을 완전히 버리고 학생들 중심의 수업으로 바꾸어 설계하고 진행하였다. 너무나 바빠졌고 머리가 터질 듯 힘들었지만, '내 수업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하였다. 그러자 그 뒤, 아이들은 여전히 개구쟁이 짓을 하지만 내 수업 시간에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교육의 힘을 믿고 싶었다. 비록 이 시대의 아이들이 이기적이고 무질서하며 예의 없어 보이는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끊임없이 설득하고 타이르고 보살핀다면 그래도 아직은 순수한 나이의 아이들이기 때문에 충분히 나름대로 잘 자랄 것이다.
그때 나는 무너지려고 했던 '내 수업 시간' 속에서 절망하고 허우적거리는 대신,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프레이리의 말처럼 그들과 더불어 이야기하고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고자 노력한 결과, 나름 만족스러운 하반기 교실 수업을 이끌어나갈 수 있었다.
3. 학습자들에게 귀 기울이는 것에서 그들이 귀 기울이기까지
프레이리는 교사가 가지기 쉬운 이중성을 지적하고 있다. 자유를 위해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비판적 주체인 학습자들을 교육하면서도, 권위주의적 교사 자신들은 변함없이 아이들에 대해 권위적이라고 말한다. 교육자가 민주적이기를 선택하고 담론과 실천 사이의 일관성을 유지한다면, 학문을 탐구하면서 끊임없이 비판적 분석에 따르고 학습자에게 말을 걸고 서로 대화하는 경험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수업 속에서 이루어지는 대화가 배울 내용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런 대화가 이루어진다면 가르치는 행동의 관점에서도 타당하고, 우리의 교실을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 나도 안다.
프레이리의 말처럼 민주적 교사는 학습자들에게 귀 기울이고 그들과 더불어 이야기하는 것을 배움으로써 학습자들이 교사에게도 귀 기울이도록 가르친다. 그는 학교가 민주적 성향을 쌓고 만들어내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말하며 민주적 성향이란 호의가 아니라 의무로서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들을 존중하는 성향, 다수의 결정을 따르되 소수의 다른 의견을 표현할 권리를 인정하는 성향, 질문하고 비판하고 토론하는 성향, 우리들 사이에서는 사적인 일로 다루어지지만 실제로는 공적인 그 문제를 존중하는 성향 등과 같은 것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관념적인 말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반성과 실천으로 이루어지므로, 교사가 민주적인 태도를 학교의 교실로 가지고 들어와 수업을 실천하는 것을 그는 '정치적 행동'이라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교육자로서 우리는 정치가이다. 우리는 교육할 때 정치에 참여한다.
그리고 우리가 민주주의를 꿈꾼다면,
학습자에게 말을 걸 수 있고 그들과 더불어 이야기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우리에게 귀 기울일 수 있도록 밤낮으로 싸웁시다.’
<프레이리의 교사론>, 파울로 프레이리 지음, 교육문화연구회 옮김, 아침이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