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이리의 교사론
내가 살고 있는 세계를 비판적으로 읽기 |
삶을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과의 관계라고 생각해 왔다. 일상생활에서 가족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 가르치는 아이들과의 관계 등은 내게 하루의 행, 불행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내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투자는 바로 ‘사람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나의 가족들에 최선을 다하고, 내가 만나고 있는 지인들에 대해서도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하고 있다. 그들이 바로 나의 인생에 있어서 ‘의미’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중요시 여기고 있었던 ‘관계’는 사람들 사이에서 형성되는 현실적인 '관계'를 의미하고 있었다. 나의 주변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들과의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것만으로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비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도 나의 일상에 평온을 가져다주는 가장 근원적인 바탕은 바로 그들과의 건강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프레이리는 '관계'에 대한 나의 시각을 넓혀 주었다. 그의 넓은 안목과 적극적인 실천 의지를 보면서 나의 좁은 안목과 소극적인 실천 의지들을 반성하고, 일상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내 주변과의 더 많은 ‘관계’들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던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프레이리로부터 새로이 배울 수 있었다.
프레이리는 활기찬 세계에서든 무기력한 세계에서든 삶의 기본 조건이 관계이며, 그 관계는 자신과의 관계와 주변 세계와의 관계를 일컫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인과 함께, 역사와 함께 관계를 엮어가는 관계의 주체가 될 수도 있고 객체가 될 수도 있는 유일한 존재이며, 타인과 역사는 우리가 형성하는 존재이기도 하고, 우리를 형성하고 재형성하는 존재이기도 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세계 속에서 실행하고 있는 실천 자체를 학습의 과정으로 삼고 실천 자체를 학습하게 되었을 때 세계가 우리와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이 되며, 세계 속에서의 단순한 움직임이 결국에는 세계 속에서의 실천으로, 세계 속에서의 실천은 세계에 대한 활동으로 바뀌는 것이라고 하였다.
프레이리는 이와 같은 세계 속의 관계, 즉 상호관계를 구체적 맥락과 이론적 맥락의 관계에서 분석하고 있다. 구체적인 맥락에서 행동할 때의 지식은 일상적으로 저절로 배어 나오는 습관이 되어버린 지식을 말한다. 구체적 맥락에서는 실천과 실천에 대한 지식이 잘 구분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론적 맥락에서는, 우리 자신과 실천을 분리하여, 실천을 실천에 대한 지식, 즉 실천의 토대가 되는 과학에서 분리하여 일정한 거리를 둘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른바 “실천 숙고하기”로 이론이 실천 안에서 어떻게 형성되는 지를 지각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며 이때 실천은 구체적 세계에서 이루어진다.
이것을 그대로 내게 적용을 시켜보면, 내가 학교 안에서 여러 가지 상황과 부딪혀 문제를 해결하고 교실 안에서 아이들과 치열하게 상호작용 또는 수업을 하고 있을 때는 구체적인 맥락에서의 ‘실천’이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는 그 ‘실천’을 인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학교 밖에서 교육과 수업에 관하여 고민하면서 학교라는 구체적인 맥락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관조를 하고 되새김을 해보면, 학교에서의 수업 속의 ‘실천’들이 더 내게 ‘인지’되어 가까이 다가오면서 이론적 지식이 된다.
수업 속에서의 아이들은 어떨까? 아이들이 학교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겪는 여러 가지 상황들은 아이들의 구체적인 맥락이다. 그 속에서는 자신들의 상황이나 실천을 인지하기 어렵다. 교사인 내가 어떤 방법으로 자신들의 구체적인 맥락들을 관조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구체적인 맥락에서 저절로 발생하는 호기심을 어떻게 구체적인 맥락과 상관없는 인지적인 호기심으로 연결을 시켜줄 수 있을까? 그래서 그 결과 자신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개선할 수 있는 의지를 일깨우며 동시에 실천과 활동으로 까지 연결시킬 수 있을까?
이 과정은 프레이리가 언급한, 아이들이 학습을 통해서 세계 속의 실천과 활동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며, 이 과정을 수업 속에서 풀어내는 것이 바로 과제인 것 같다.
프레이리가 제시하는 교육방법으로는 문제제기식 교육이 있다. 먼저 구체적인 맥락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세계와 실재의 문제들을 관조하며 그 안에서 비판적 자세와 의도성을 형성하여 의식화 교육을 한다. 이것이 이론적 맥락이며, 이 과정에서 문제를 인지하고 반사작용을 거쳐 다시 구체적인 맥락인 현장으로 되돌아가 반성적 실천의 실험적 행동을 시도하는 것으로 이것을 '프락시스'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대화’의 방법이 함께 이루어진다. 이때의 ‘대화’란 첫째, 세계에 의해 매개된 인간 사이의 만남이며, 둘째, 그 대화의 본질은 말이고, 셋째, 주체와 세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보았다. 그 ‘대화’의 실존적인 맥락을 객관적인 도식이나 서술 형식으로 구분하고, 그 실존적인 맥락을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문제화하는 단계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하면, 프레이리는 교육과정이 세계와 실재에 대한 현실적인 인식을 통해 깨닫는 '의식화'가 이루어지며, 그러한 '의식화' 과정을 통해서 세계와 실재를 분석적으로 비판함으로 세계가 변혁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또한 ‘대화’에는 ‘텍스트와 세계에 대한 비판적 읽기’도 있다. 세계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속해있는 세계와 대화하는 방법으로, 현실 세계나 그에 관한 글, 즉 텍스트 읽기가 있다고 이해되었다. 즉 세계 읽기란 현실 세계를 파악하거나 현실 세계에 대한 글을 비판적으로 읽는 행위를 의미하며, 그러한 행동을 세계와 대화하는 것으로 표현될 수 있다. 그래서 세계에 대한 비판적 읽기는 그에 대한 글을 읽고 쓰는 일, 즉 완벽한 방식으로 텍스트를 읽고 쓰는 일을 포함하며, 완벽한 방식이란 이론적인 맥락에서 텍스트의 의미를 밝히는 방식이다.
아이들이 그들의 구체적인 맥락인 자신들의 일상생활에서 보고 듣고 겪었던 세계 읽기의 경험으로부터 연결하여, 수업 속에서 내가 제공하는 텍스트 - 학습자료나 영상, 또는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 등 -를 읽고 그 의미를 밝혀서 다시 쓰는 작업을 한다면, 나와 아이들은 수업 속에서 대화를 통한 세계의 비판적 읽기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그들의 구체적 맥락을 나와의 수업 속에서 함께 관조하고 그 결과 학습이 이루어진다면 이론적 맥락으로 아이들은 그들만의 창조적 지식을 구성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반성적 실천으로 구체적 맥락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세계에 변화를 가져오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