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 사귀었던 남자 몇 명과 친구들 몇 명에게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소개해 주곤 했다. 의도적으로 사귀는 남자마다 이 책을 소개한 것은 아니었다. 친구들에게 소개한 것도 그렇다. 모두 뭔가 자연스러운 대화의 흐름 속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이방인'을 소개받고 읽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재미있고 좋았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한 친구 놈이 딴지를 걸었다.
"네가 그렇게 극찬해서 읽었는데 난 모르겠다. 솔직히 이 책이 왜 좋냐?"
아니, 이런 질문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솔직히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소설은 아니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하고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친구는 이 소설의 주인공인 '뫼르소'라는 인물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주인공 뫼르소는 소위 '자유로운 영혼'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거르지 않고 말하고,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충동대로 행동한다. 때문에 사회적 규약과 질서에 따라 여러 가지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일반적인 우리와 다른 '낯선' 면모를 지닌, '이방인'이다. 소설의 사건은 뫼르소라는 인물이 자신과 상관없는 사건에 우연히 연루되어 의도치 않게 살인을 저지른 데에서 발생한다. 권총의 방아쇠를 의도치 않게 당겨버려 자신을 공격하려던 인물들을 살해하게 된 어처구니없는 사건에 휘말린 비운의 주인공 뫼르소. 소설에서 작가는 뫼르소의 입장에서 글을 전개하고 있지만, 내 친구는 어쨌든 살인자는 살인자이지 않냐며 뫼르소에게 혐오감을 표시한 것이다.
"솔직히 이 소설이 왜 좋냐?"
친구가 따지듯 물었을 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스토리 전개도 재미있고, 자신에게 솔직한 '뫼르소'라는 인물을 살아보는 과정에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지. 하지만 그런 건 그렇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야. 내가 '이방인'을 좋아한 것은 마지막 장면 때문이야. 마지막 장면 기억나지? 살인을 저지른 뫼르소는 결국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게 되고, 사형장에 끌려 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목이 잘려나가게 되는 상황이지. 사형을 당한다는 건, 일종의 살해를 당하게 되는 거야. 그것도 공개적으로. 그런데 거기서 뫼르소가 어떻게 반응해? 뫼르소는 전에 없던 지극한 행복감을 느끼고 삶에 대한 사랑으로 벅차올라.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즐겨주기를 바라지. 이게 일반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해, 친구?"
"음... (까뮈는) 천재네..." 친구가 말했다.
"그런데 나는 사람은 그런 존재인 것 같아. 바깥에 펼쳐지는 상황이 어떤지와 상관없이 자기 내면에서 삶에 대한 무한한 긍정과 사랑을 발견하고 기꺼이 어떤 삶이든 살아내는..." 나는 다소 격해져서 말했다.
내가 그때 왜 그렇게 격하게 대답을 토해냈을까? 그리고 난 왜 그렇게 '이방인'의 마지막 장면에 감동받았을까? 가끔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사라지곤 했다.
그런데 오늘 저녁이었다. 밥상을 차리려고 미역국을 뜨는데 문득 떠올랐다. 내가 왜 '이방인'의 마지막 장면을 가슴 한편에 꼭 쥐고 있었는지를.
내가 정말 원하는 건, 삶의 이러저러한 조건 혹은 사건과 상관없이 기꺼이 스스로에게 주어진 모든 순간을 사랑하는 '진정한 나'를 내 안으로부터 발견하고 살아내는 것. 어쩌면 이것이 전부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