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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르보르 Jul 28. 2023

'지금 이 순간의 삶'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스포주의)

연극을 전공했으나 다른 일도 했다. 아나운서, 승무원, 디자이너...

그렇지만 젊은 피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세상을 탐험하던 시절을 연극과 예술에 오롯이 바친 것은 진실이다. 지금 생각하면 맹목적으로 뭔가에 그렇게 미쳐 순진하게 몰입할 수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고도 안타깝게 여겨진다. 세상의 무심과 자신의 진실 속에서 균형을 잡지 못했기에 그렇게 맹목적일 수 있었을 것일까. 그러나 그 맹목의 시간이 후회되지 않는 것은 그만큼 그 시절 사랑했던 일에 내 모든 것을 던져보았다는 것.


연극을 통해 나는 무엇을 배웠을까? 그때의 경험들이 그 이후의 삶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까?


셰익스피어의 말대로 삶은 연극 무대, 나는 무대 위의 배우. 결국 내가 연기하고 있는 것은 모든 순간의 나의 삶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진실할수록 삶의 재미와 몰입도는 강해진다.




최근 부쩍 더 '나'자신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 깊이 있게 읽어 내려가고 있다. 나 자신을 비추어보기 위한 도구로서 심리학, 영성, 뇌과학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한동안 전혀 보지 않았던 문학과 영화를 다시 펼치며, 드로잉에 있어서도 다른 사람의 방식을 참고하지 않고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어제는 두 편의 영화와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양자경 주연의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2022), 헤어질 결심과 픽사의 소울(2022)이 그것이다. 헤어질 결심의 경우 재미있고 공감이 가긴 했지만 본질적으로 내가 크게 관심 있는 부분의 주제가 아니어서 울림을 주지는 못했다. 곧 잊힐 것이다. 하지만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과 소울은 지금의 나를 정확히 비춰주는 영화였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이 영화는 다중우주를 모티프로 지금 내 앞의 삶의 진실에 관해 말하고 있다. 다중우주와 양자역학, 트랜서핑이라는 개념을 영화로 풀어낸다는 것 자체가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다루기 어렵다고 여겨지며, 그것이 영화로 표현된다고 해도 피부에 와닿는 일상적 이야기로 엮이려면 정말 고수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할 것 같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모든 것을 유쾌하게 해내었다. 얼마나 커다란 열정이 쏟아부어졌는지 영화를 통해 오롯이 느껴졌기에 감동하지 않는 것이 불가능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다중우주의 현실을 체험하며 허무와 우울이라는 깊은 슬픔에 갇힌 자신들의 영혼을 구해낸다. 그리고 자신들이 일말의 희망도 없는 핍진한 삶이라 여겼던 일상, 세탁소를 운영하며 전전긍긍 살아가는 고단한 삶이 사실 다른 우주에서는 진심으로 원했던 바로 그 삶이자 무수한 가능성 속에서 피어난 단 하나의 유일하고 고유한 삶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그토록 문제시 삼았던 지금 이 삶이 사실은 모든 가능성 속에서 하나의 염원을 담아 솟아난 고원이라면... 그렇다면 자기 앞의 생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떻게 달라질까? 거짓의 장막은 저 멀리 치워지고 진실의 눈이 빛나게 될까?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난 후 몇 개의 질문을 던졌다. 나는 지금 이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은가? 내가 아닌 다른 나로 살아보고 싶은가? 음... 그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하지만 '지금과 다른 멋진 삶과 지금의 내 삶을 바꾸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바꾸고 싶지 않다'는 것이 나의 진심이었다. 내가 그토록 절망스럽고 고통스럽고 외롭다고 느꼈던 지금 이 삶은, 그렇지만 내가 그토록 사랑해마지 않는 사람들과의 체험이 녹아있는 삶이며, 지금 이 삶에서의 진실한 경험을 위해 매 순간, 자신의 최선을 다한 나를 나는 기억하고 있다.


지금 이 삶, 지금 이 순간을 선택하겠다는 것은 그러니까, 내 삶에 대한 나의 존경이자 사랑이다. 세상의 수많은 거짓 속에서 눈을 떼어 이 삶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마음에 나 자신을 내맡길 때 삶은 지금 이대로 완전하다.


연극을 통해 나는 '순간의 미학',  '지금 이 순간'이 말하는 진실을 배웠다. 영화처럼 반복해서 찍을 수도 반복해서 볼 수도 없는 연극의 순간들은 진실에 닿지 않는 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순간들이다. '지금 이 순간의 삶'이라는 진실이 연극과 삶이라는 두 개의 메타포를 통해 동시에 공명한다.


매 순간 자신의 진심을 사는 것은 이토록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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