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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르보르 Jul 09. 2023

나의 게으름엔 이유가 있다

새벽 4시, 혹은 새벽 5시. 

자주 새벽에 눈을 뜨곤 한다. 


그렇게 일찍 눈을 뜰 이유는 아무것도 없는데, 내 몸은 새벽의 기운을 유난히 예민하게 느낀다. 다시 잠이 들더라도 일단 깨고 본다. 그렇다고 바지런히 활동을 시작하는 일은 거의 없다. 시간이고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며 침대에서 뭉그적거린다. 연체동물처럼 사지를 흐느적거리며 게으른 기운을 온몸으로 만끽한다


새벽이 아니더라도 소파에 푹 퍼져있거나, 침대에서 낮잠을 즐기곤 한다. 다시 뭔가 하고 싶어질 때까지 결코 나를 재촉하지 않는다. 쉼에 있어서는 꽤 헤픈 편이다. 


직장을 관두고 집에서 놀거나 일을 하던 시절부터 내 게으른 신체는 아주 신이 났다. 언제든 소파와 침대를 누빌 수 있는 자유가 허락되었기 때문이다. 


게으름을 못 견디는 우리 엄마가 이런 내 모습을 본다면 엄청 발끈하실 것이다. 그런데 엄마가 본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나의 게으름에는 이유가 있다. 


아, 표면적으로 보이는 이 게으름 이면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침대에서 뭉그적거리거나 소파에서 멍 때리며 마음은 삶을 창조하는데 있어 아주 중요한 여러가지 활동들을 한다. 간단히 세 가지만 짚어보자.


첫 번째로 깊은 호흡을 관찰하며 편도체를 안정적으로 관리한다. 호흡과 신체의 감각에 의식을 집중시킴으로써 명상에 드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불필요한 긴장이 풀리고 심리적으로 안정된다. 둔감했던 감각이 깨어나고 생명체로서의 나 자신을 인식하며 내면으로부터 세계와의 연결감을 회복한다.


두 번째로 그리고 싶은 그림들, 만들고 싶은 영상들을 떠올리며 몽상의 젖거나 이야기를 지어낸다. 내게 있어 창작은 언제나 나만의 시간을 충분히 갖고 내면을 탐색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게으름을 부리는 동안 긴장이 풀려서일까? 아이처럼 몽상에 젖으며 내면세계를 새롭게 탐험하게 된다. 그러는 중 신기하게도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서 막혔던 문제가 풀리기도 한다.


세 번째로 게으름 속에서는 셀프 심리 상담이 이루어진다. "뭔가 불편한 건 없니?", "날 힘들게 하는 건 없니?", "내게 지금 하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어제 했던 경험은 어땠지?", "지난번 만났던 사람이 왜 불편했더라?"... 스스로를 질문을 던지며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그대로 느껴준다. 억눌렸던 분노의 감정이나 알 수 없는 우울감, 어딘가 숨고 싶어지는 초라한 내 모습, 이런 저런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오면 자상하고 지혜 깊은 할머니처럼 아프고 쓰라린 마음들을 품어준다. 충분히 품어주고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의 게으름은 치유와 회복의 시간이자 몽상과 창작의 시간이다. 한껏 게으름을 피우고 나면, 다시 즐겁게 살아갈 기운이 돈다. 반면 게으름이 부족하면 상당히 다루기 어려운 까칠하고 신경질적인 인격체가 튀어나온다. 게으름을 피우면서 해왔던 수많은 딴짓들을 생략한 탓일 것이다. 


그러니 어머니시여! 부디 나의 게으름을 탓하지 마오~~~


음...글을 써놓고 보니 게으를 이유가 더 분명해졌다.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게을러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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