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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안녕 Jan 03. 2022

남겨진 딸의 노래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 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열한 살 여자아이가 인적 없는 바닷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내 모습이다.


나는 혼자다. 11월 중순, 남도 바닷바람에 볼이 시리다. 스산한 바닷가다. 폐선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들이 모래밭에 이마를 박고 있고, 엉킨 그물이 너덜한 부표들을 아무렇게나 감싼 채 나뒹굴고 있다. 떠나버린 딸을 애타게 부르는 늙은 어부가 서 있기에 맞춤인 장소지만, 정작 그곳에는 자신이 떠나온 건지, 남겨진 건지 어리둥절해하는 어린 딸만 있을 뿐이다. 

      

엄마와 함께 밤기차를 타고 다다른 남도 바닷가 작은 병원. 나는 그곳에서 전신마취를 하고 반나절 넘기는 수술을 받았다. 화상으로 오그라든 오른쪽 손바닥에 내 여린 뱃가죽에서 떼어낸 살을 이식하는 수술이었다. 가난한 우리는 수술을 후원해주는 기회를 잡아 그 먼 타지 병원에서 몸을 푼 거였다. 혼자서는 돌아갈 수 없는 거리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입원 치료가 끝나고도 깁스한 손은 매일 처치가 필요했다. 통원치료를 위해 병원에서 운영하는 허름한 기숙사를 얻어 지내게 되었다. 고향 집에는 아버지와 오빠, 남동생 그렇게 남자 셋이 남아 있었다. 길게 그어진 배의 흉터가 아물어가자 기숙사에 거주하는 아주머니들에게 나를 맡겨두고 엄마는 남자들이 있는 집으로 떠났다. 몇 밤 자고 나면 돌아온다 했다.

     

나는 온순한 편이었지만 긴장해서 굳은 몸은 좀처럼 기다림에 길들여지지 않았다. 버려진 아이가 되지 않기 위해 하루를 간신히 버티느라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깁스를 한 오른팔을 직각으로 목에 매단 채 엄마가 돌아올 버스정류장 앞 구멍가게까지 걷고 다시 돌아오길 얼마나 반복했을까.





어느 날, 소나무 숲 너머서 날아온 의심스러운 비린내에 이끌린 그곳에서 내 최초의 바다를 만났다. 11월의 바닷바람이 어린 몸을 밀쳤지만, 파도가 가까스로 이르렀다 되돌아가는 모래밭까지 용감해지는 기분으로 무릎과 발가락에 힘을 주며 들어갔다. 한참을 서 있으려니 마치 이 날을 위해 내 속 어딘가에 오래 묵혀두었던 듯 노래가 흘러나왔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엄마와 아버지도 지금 내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가 없는 세상은 나를 잊지 않았을까. 눈물은 참았다. 울면, 진짜 버려진 아이가 될 것 같았다. 노래를 부르며 나는 철없이 떠난 딸이 되었다가, 홀로 남은 늙은 아비가 되기도 했다. 아무래도 상관없고 무엇이 되었든 쓸쓸했다.    


저만치 수평선을 막아서며 불거져있는 작은 섬들에 눈을 맞춘 채 몇 번을 되감아 불렀을까. 노래를 흘리는 입술도, 깁스를 한 손가락 끝도 모두 시렸다. 등 뒤가 별안간 서늘해졌다. 조각 섬들 사이로 이어지는 바다 저 편은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있었던, 등 뒤에 있던 세상이 홀연 사라져 버린 건 아닌가, 심장이 쿵쾅거렸다.


바다로 다가섰을 때처럼 돌아서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바다 따위에는 일말의 미련 없이 푹푹 꺼지는 모래늪을 박차며 뛰었다. 목에 묶인 오른팔이 균형을 흔들어 뒤뚱거렸다. 뛰는 동안 알아차렸다. 기다리던 그 자리로 어서 돌아가야 한다는 걸. 


어쩌면 엄마를 실은 버스가 이미 도착했을지도 모른다.





*그날 정말 이 노래를 불렀는지, 아니면 훗날 그 바다에 서 있던 내 모습을 되새김질하면서 이 노래를 풍경 속에 얹어 박제한 것인지... 이젠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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