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옷은 어떻게 구했나? 그 후 옷은 어떻게 했나?
그 날이 정말로 '첫' 데이트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데이트'라고 할 만한 건 또 처음이었다. 늘 퇴근 후에 보다가 휴일에 온전한 약속으로 만난 건 처음이라 그렇게 기억하는 걸지도 모른다.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주로 포멀한 옷을 좋아한다. 그건 내가 좋아하는 겨울이면 더 그렇다. 그를 만날 땐 겨울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유독 좋아하는 옷들이 많은 시기였다.
어쩌다 보니 크리스마스 당일이었다. 여기 서울에 가족이 없는 나와는 달리 그는 서초동의 빌라 하나에 모든 가족들이 모여 사는, 전형적으로 가족적인 집의 아들이었다. 그렇기에 낮에 가족모임에 참석해서 모든 '역할'을 완수하고 나서 저녁 즈음에 만나기로 했던 거다. 사실 어딜 가야겠다 정해진 것도 없었고, 뭘 하겠다 정해진 것도 없었다. 가까운 곳에 갈지, 멀리 갈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일단 좀 갖춰 입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니까.
겉옷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블랙이었다. 유난히 손이 많이 가는 검은 반팔 상의는 티셔츠임이 무색하도록 조금은 로맨틱한 분위기를 풍긴다는 말을 평소 주위에서 많이 들었던 옷이다. 몸체 쪽은 적당히 붙는 면 소재이지만 팔 쪽이 시스루로 되어 있다. 묘해서 좋아하는 옷이기도 하고, 그렇다. 하의는 자세히 보면 모두 각각 꽃무늬 자수로 이루어진 검은 스커트, 그리고 그 아래로는 검은 스타킹과 검은 메리제인 슈즈였다. 여기에 겉옷은 새빨갛지만 톤이 조금 다운된 빨간 색의 모직 코트였다. 특징이라면 깃에 포인트로 들어가있는 검은 가죽 소재 원단. 이것도 좋아하는 '톤 다운된 빨간 빛'에 묘한 분위기까지 더해져 단숨에 골랐던 걸로 기억한다.
이들은 대부분 평소 잘 가는 SPA 매장에서 그리 비싸지 않은 돈을 주고 샀던 옷인 걸로 안다. 겨울에 만난 그와의 크리스마스 데이트 이후든, 그보다도 더 뒤인 그와의 이별 후든, 저 옷들의 '처리'에 대해서는 별다른 게 없었다. 그가 선물한 옷도 아니고, 특별한 추억이 있지도 않다. 공교롭게도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겨울 옷들일 뿐이다.
작년 겨울부터는 옷을 입는 무드가 약간 바뀌었다. 인생에서 제일 짧은 머리를 했던 지난 겨울에는 입는 스타일까지 덩달아 달라져서 간혹 '소년 같다'는 말도 들었고, 지금은 좋아하는 옷들이 거의 없는 여름을 지내고 있다. 다시 겨울이 오면 그 옷들을 잘 꺼내 입을 거다. 특별한 기억이 나지도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