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일을 한다는 것

D+15

by 마음을 닮은 집

엄마는

쓸모 있는 것에 대한 집착을

잘 놓지 못하는 사람인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세상에서 말하는 쓸모 없는 것들 속에서

오히려 더 많은 행복을 느꼈던 순간들도 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쓸모를 먼저 따지는 사람이 되었을까

가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너는 조금 조심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엄마는 영화를 보다가도

주인공이 누군가를 죽이는 장면이 나오면

먼저 이런 생각이 스치곤 했다.

왜 죽이지,

저 사람에게 아직 쓸모가 있을 텐데.

왜 죽이지,

굳이 죽일 필요가 있나?


처음엔

내가 너무 이상한 사람인가 싶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엄마는 무엇이든

쓸모를 먼저 찾는 습관이 있는 것 같았다.


쓸모가 있으면 괜찮고,

쓸모가 없으면 가치가 줄어드는 것처럼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쓸모라는 것은 중요하다.


필요한 것만 소비하려 애쓰는 일,

무언가를 가졌다면 잘 사용하는 일,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일.


그 모든 것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태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기준을

사람에게도,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모든일에도

적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엄마는 가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괜히 바쁜 척을 하거나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만들어

시간을 채우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때에는

누군가가 열심히 하고 있는 일을 보며

그게 무슨 쓸모가 있지,

마음속으로 가볍게 여기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모두가 쓸모 있게만 살 수는 없는데 말이지.


돌아보니

엄마는 재미를 찾는 법을

잘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쓸모를 찾으며 시간을 채우다 보니

어느 날은

책을 읽으면서도

내가 좋아서 읽는 것인지,

쓸모가 있어서 읽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었어.


산책을 하면서도

건강에 좋으니까 걷는 것인지,

그저 걷고 싶어서 걷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때가 있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게 되는 순간들이 찾아온 거야.


피규어나 스티커를 모으는 사람들을 보며

왜 그런 걸 사느냐고 말하곤 했지만,

사실은 조금 부러웠어.


아이돌을 좋아하며

기쁜 마음으로 시간을 쓰는 사람들도

엄마는 한편으로 부러웠다.


쓸모 없어 보이는 일을

오래도록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이

어쩌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래서일까, 엄마는 결혼하고 나서

아빠가 게임을 더 열심히 하도록 응원했어.

엄마에게 게임은

가상 속에서 무언가를 얻겠다고 시간과 돈을 들이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데다 아무 쓸모도 없는 일처럼 보였거든.

그런데 그것을 열심히 하는 아빠에게서 대리만족을 느꼈던 걸까, 그냥 응원해주고 싶었어.

나름 이유도 멋지더라. 매일 실험하듯이 새로운 캐릭터로, 새로운 전술로 시도해보는게 재밌다는 대답을 해줬어.


아기야,


엄마는

삶에는

쓸모 없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유 없이 좋아하는 것,

그저 즐거워서 하는 것,

아무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런 것들이

사람을 숨 쉬게 한다.


인생은

모든 시간이 의미 있어야만

가치 있는 것이 아니란다.


너는

너만의 쓸모 없는 일을

꼭 하나 발견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쓸모 없어도 괜찮다는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사람은 오히려

정말로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 간다는 것을

엄마는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