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 휴 94편 < 국립춘천박물관에서 만난 홍천 물걸리 절터 기와>
국립춘천박물관의 전시실 한편,
‘홍천 물걸리 절터 기와’라는 작은 안내판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8세기 신라의 보상화문 수막새가
천 년의 세월을 품고 이렇게 고요히 놓여 있다니—
그저 ‘유물’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따뜻하고, 너무 사람 같았습니다.
‘왕(王)’ 글자가 새겨진 기와 한 조각.
그 문양은 신라 왕경의 동궁과 월지,
그리고 천년 도시 경주의 흔적과 닮아 있었어요.
강원도 깊은 산골, 홍천 물걸리에서
어떻게 이런 왕실의 흔적이 남게 되었을까.
그 순간,
“신라의 쌍조문 전통을 이은 모습”이라는 문구가
유난히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홍천의 물걸리 절터는
단순히 사찰이 있던 자리가 아닙니다.
통일신라 시대, 강을 따라 물자와 사람들이 오가던
‘교통의 요지’였던 곳. 벌력천정(伐力川停),
즉, 지금의 홍천강 줄기를 따라
군사와 상인, 승려들이 머물던 자리였다고 합니다.
절터의 기와는 그때의 시간, 그들의 손길이 남긴 작은 증언이었습니다.
이 전시를 보고 있자니
홍천이라는 이름이 새삼 다르게 다가옵니다.
물길 따라 번성했던 고을,
사람이 머물고, 기도하고,
다시 떠나던 길목의 도시.
그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과거의 시간 위에 놓인 또 하나의 쉼표처럼
그 자리를 잇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절터에서 나온 기와 한 조각이
천 년을 건너와 내 마음에 닿는 일.”
그건 단순한 역사 공부가 아니라,
시간을 마주하는 ‘휴(休)’의 순간이었습니다.
오늘의 작은 휴식은,
국립춘천박물관 한편의 고요한 전시실에서 만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