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이라는 이름으로

홍천 휴 99편 < 홍천이라는 이름으로 >

by 원 시인

홍천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이야기 — 올챙이국수에서 비발디파크까지

홍천에서 나고 자란다는 건,
그저 한 고장에서 오래 머무른다는 뜻이 아니다.

이곳에서의 삶은
음식과 풍경, 사람과 바람이
마치 한 권의 책처럼
내 삶의 장면을 덧대어 준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장면들은
어느 날 문득 떠오르는 한 그릇의 음식,
한 번쯤 지나친 오래된 길,
한적한 부도탑과 같은 흔적들 속에
조용히 숨어 있었다.


1. 어린 시절을 데우던 맛, 올챙이국수

홍천의 시장은 늘 소박했다.
하지만 그 소박함 속에 내가 배운 삶의 태도가 있었다.

어린 시절, 여름날이면 아버지와 함께 먹던 올챙이국수.
커다란 그릇에 담긴 노란 면발은
고급 음식도, 화려한 요리도 아니었다.

옥수수 반죽을 바닥이 뚫린 네모박스에 넣고 박스를 누르면
구멍 난 바가지로 물속에 뚝뚝 떨어뜨리면
올챙이가 꿈틀거리듯 짧게 굳어 나왔다.
그래서 ‘올챙이국수’.

그 한 그릇의 올챙이국수를 먹으며
아버지와 함께 먹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배부르진 않아도 마음은 따뜻했던 밥상.

그게 내 삶의 첫 번째 “휴(休)”였다.


2. 지친 마음을 품어주던 곳, 풍년식당

세월이 흘러 직장인이 되었을 때,
내가 자주 찾던 곳이 풍년식당이었다.

이곳의 밥상은 이상하리만큼
‘아버지의 손’, ‘어머니의 숨결’을 닮아 있었다.

겉으로 보면 그저 된장찌개, 고등어, 김치 같은
평범한 메뉴들이다.
그러나 한 숟가락 뜨는 순간,
어릴 적 집에서 먹던 밥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고단했던 하루의 끝에서
나는 이 식당에서
‘살아간다는 건 결국 누군가의 따뜻한 밥 한 끼 같은 것’이라는
평범하지만 위대한 진실을 깨달았다.

풍년식당은 단순한 맛집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마음이 다시 제자리를 찾는 자리였다.
고향의 풍년은 들판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밥상에서 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3. 묵언으로 가르침을 주는 자리, 물걸사지

홍천에서 오래 살다 보면
말없이 많은 이야기를 건네는 장소들이 있다.
물걸사지가 그렇다.

사찰은 사라졌지만
그 터에는 아직 기도가 남아 있고,
바람이 지나가면 오래된 경전처럼
나뭇잎이 사각거리며 페이지를 넘긴다.

거기 서면 이상하게도
세상과의 거리감이 조용히 좁혀지고,
내 안의 목소리가 더 또렷해진다.

나는 물걸사지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을,
지금의 나를 만든 시간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깨닫는다.
사라진 것이 끝이 아니라,
사라졌어도 남는 것이 진짜 기억이라는 것.

물걸사지는 홍천이라는 고장이
나에게 준 보물 같은 곳이다.

그런 물걸사지를 국립춘천박물관에서 만났다.

일몰이 지는 어느 날 물걸사지를 찾아 부모님과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4. 지금, 내가 다시 홍천에게 묻는다

올챙이국수에서 배운 느림,
풍년식당에서 얻은 따뜻함,
물걸사지가 남긴 깊은 울림.

이 모든 것이
내가 ‘홍천 사람’으로 살아온 이야기다.

99편까지 글을 쓰며 나는 알게 되었다.
홍천은 내 고향이라는 두 글자가 아니라
내 삶의 태도이자, 마음의 중심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제 마지막 한 편,
100편을 향해 가는 지금
나는 이 고장에 다시 한번 인사를 올린다.

“고맙습니다.
저를 자라게 해 준 비발디파크의 근무시간과 풍경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 휴를 만드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