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20 명산 인증 챌린지 3편
쉰움산은
시작하기 전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가장 멀리 있는 산,
동해안의 산,
그리고 ‘하루에 두 곳 인증’이라는 욕심이 겹친 산.
지금 돌아보면
그날의 쉰움산은
산보다 내 마음을 먼저 시험하던 곳이었다.
산을 오래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정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했는데,
나는 그날 아주 기본적인 실수를 했다.
“1,000m도 안 되니까 쉽겠지.”
이 짧은 판단이
하루의 리듬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해안가 산은
시작 해발이 낮아
600m라도 경사가 깊고
등산로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몸으로 다시 배웠다.
쉰움산은
숫자로 판단하면 안 되는 산이었다.
계곡을 따라 걷다
본격적인 오르막에 접어들자
산은 말을 아꼈다.
계속 오르막, 계속 숨, 계속 생각.
‘왜 이렇게 서둘렀을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어야 하는데
쉰움산은 끝까지
사람을 시험하듯 올라가게만 했다.
정상에 도착했을 때,
쉰움산은 황홀한 일몰을 내어주었다.
삼척 시내,
그리고 멀리 바다까지.
그 순간, 나는 너무 많은 것에 빠져 있었다.
풍경에, 시간에,
서둘러야 한다는 마음에.
그래서
가장 중요한 인증을 놓쳤다.
GPS도, 인증 사진도.
이 산은
“멈추지 않으면 남는 게 없다”는 걸
아주 단호하게 알려주었다.
허둥대며 내려오는 길,
정상 부근에서 만난 사람이 있었다.
워낭소리님.
그분은 조용히
긴급 인증 방법을 알려주었고,
같이 내려가 주겠다고 했다.
쉰움산에서
가장 큰 위로는
풍경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산에서는
늘 사람이 남는다.
정상에 우물이 50여 개 있어
쉰움산이라 불린다는데,
눈으로 덮인 정상에서는
단 하나의 우물도 볼 수 없었다.
대신
바위틈에서 자라는 소나무들을 보았다.
죽은 소나무 곁에서
끝까지 서 있는 또 다른 소나무.
나는 마음대로
‘부부 소나무’라 이름 붙였다.
죽어서도
곁을 지키는 나무처럼
이 산은 오래 남았다.
쉰움산은
‘성공적인 인증’보다
‘겸손한 산행’을 가르쳐 주었다.
하루에 두 개를 욕심내지 말 것.
산은 언제나 그대로 있으니
사람이 서두르지 말 것.
이날 이후
나는 목표를 바꿨다.
✔️ 빨리 인증하지 않기
✔️ 안전하게 오르기
✔️ 한 산씩 제대로 만나기
2024년 강원 20대 명산 인증 챌린지는
산과의 싸움이 아니라
내 욕심과의 거리 조절이었다.
쉰움산은
쉼을 주지 않았지만
대신
다음 산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주었다.
그래서
이 산은
잊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