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휴, 영화 '동주' 촬영지 왕곡마을

by 원 시인

영화 '동주' 촬영지, 왕곡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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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떠나지 않아, 시간이 남아 있는 곳

왕곡마을은 ‘보존된 마을’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는 마을입니다.
초가지붕 아래에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아침이면 연기가 오르고
저녁이면 불이 켜집니다.


이곳의 집들은
남쪽과는 조금 다른,
북방식 주택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부엌에 마굿간을 덧붙여 겨울이 긴 추운 지방에서

생활하기 편리하게 지은 ㄱ 자형 집입니다.
담장은 낮고, 집들은 서로를 향해 열려 있습니다.
바람이 지나가고, 사람의 발걸음이 스며들도록
마을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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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곡마을을 걷다 보면
‘관광지’라는 단어가 조금 어색해집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멈추는 순간보다
걸음을 늦추고 고개를 들게 되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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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지붕의 곡선,
마당을 가로지르는 햇빛,
골목 끝에서 들려오는 생활의 소리들.

이곳에서는
한과를 만드는 체험도 할 수 있고,

한과도 구매할 수 있는 곳입니다.
기다림 끝에 완성되는 맛을 배우는 일.
빠르게 소비하는 여행이 아니라
옛날 사람들이 살던 방식에
잠시 발을 맞추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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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곡마을이 더 깊게 남는 이유는
이곳이 영화 동주의 촬영지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윤동주(강하늘)와 송몽규(박정민)가 북간도

용정에서 고등학생 시절을 보내는 장면이 촬영된 곳입니다.
물론 영화 속 흑백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보다 이 마을이 가진 분위기 자체가
말을 아끼고, 생각을 남기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마을은 계속 살아갑니다.
촬영이 끝나도,
사람들은 여기서 밥을 짓고
겨울을 나고
다음 계절을 준비합니다.


왕곡마을은
고성에서 ‘머무름’을 배웁니다.
떠나지 않아도 되는 삶,
크게 바뀌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그래서 이곳은
보고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마음을 두고 나오는 곳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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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은 고성이
어떻게 자연과 사람, 시간을 함께 지켜왔는지를
가장 조용하게 보여주는 곳입니다.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왕곡마을은 이미 충분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