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휴, 진부령의 설경을 바라보며

by 원 시인

진부령은 한 번쯤 멈춰 서야 하는 고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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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령은
‘지나가는 길’이 아니라
한 번쯤은 멈춰 서야 하는 고개다.

넘는 길 위에는
언제나 시간이 쌓여 있다.

고성의 바다를 뒤로하고
산으로 오르다 보면
차창 밖 풍경은 조금씩 낮아지고,
생각의 속도도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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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령 정상 전망대에 서면
이 길이 왜 오래도록
중요한 통로였는지 알게 된다.
맑은 날에는 고성과 속초의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오고,
겨울이면 설악의 능선이
흰 숨을 고르듯 펼쳐진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사진을 찍지만
진부령은
바라보는 곳이라기보다
돌아보게 되는 자리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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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인근의 작은 미술관은
이 고개의 분위기와 닮아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길 위에서 만난 예술처럼
잠시 머물다 가기 좋은 공간이다.

고개를 넘는 여행자에게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조용히 건네는 곳.


한때 진부령에는
영화를 누리던 시절의 흔적도 있었다.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알프스 스키장.
이름만으로도
설렘이 남아 있는 공간이다.
겨울이면 스키를 들고 모여들던 사람들,
눈 위에서 하루를 다 써버리던 풍경들.
사라진 자리지만
기억은 아직
이 고개 어딘가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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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령의 겨울을 이야기할 때
황태를 빼놓을 수 없다.
차가운 바람과 맑은 공기가 만나
덕장마다 황태가 줄지어 걸리던 풍경.
이곳에서 겨울바람은
춥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삶을 말리는 바람이었다.

진부령은 그렇게 사람들의 겨울을
먹여 살리던 고개였다.


눈이 내린 날의 진부령은
특히 조용하다.
바람 소리마저 낮아지고
길 위에는 발자국만 남는다.
그 풍경 앞에서
여행자는 자연스럽게
속도를 줄인다.


넘어가야 할 길이 있다는 사실보다
지금 서 있는 자리의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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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휴의 끝자락에
진부령을 남기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 고개는
이별의 문이자
다음 이야기를 향한
준비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시작한 고성은
진부령에서 다시
산을 넘는다.


진부령은 말하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잘 다녀가라고
고개를 내어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