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의 겨울을 걷다
겨울의 영월은 말이 적습니다.
소리가 줄어들고
바람은 낮아지고
강은 천천히 흐릅니다.
그래서 더 오래 남습니다.
이번 겨울,
나는 선돌에서 시작해
판운섶다리, 요선암을 지나
법흥사까지 걸었습니다.
그 길은
풍경을 보는 길이 아니라
마음을 비우는 길이었습니다.
동강 위 절벽 끝에
기묘하게 솟은 바위 하나.
영월 선돌은
언제 보아도 묵직합니다.
겨울의 선돌은
유난히 선이 또렷합니다.
나무는 잎을 내려놓았고
강물은 차분히 흐르며
바위의 윤곽을 더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전망대에 서면
동강이 휘어지며
고요하게 숨 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말없이 서 있는 바위.
그 앞에 서면
괜히 나도
말을 줄이게 됩니다.
선돌에서 내려와
강을 따라 조금 더 이동하면
판운섶다리가 나옵니다.
겨울의 섶다리는
조용합니다.
사람이 많지 않고
물 위에는 얇은 얼음이 떠 있습니다.
섶다리는
강을 건너기 위한 길이지만
이곳에서는
강을 천천히 바라보는 시간이 됩니다.
발 아래 나무판이
살짝 울릴 때마다
마음도 함께 흔들립니다.
겨울 햇빛은 낮게 깔리고
강물은 천천히 흐릅니다.
이 다리를 건너는 일은
어딘가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추는 일에 가깝습니다.
요선암에 도착하면
풍경이 달라집니다.
기암괴석이
강물 위에 펼쳐지고
겨울 물빛은 맑고 차갑습니다.
여름에는 물놀이 소리가 들리겠지만
겨울의 요선암은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돌 위에 앉아
강을 바라보았습니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풍경은 따뜻했습니다.
영월의 겨울은
차갑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을 가볍게 합니다.
하루의 마지막은
법흥사였습니다.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절은 조용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겨울 사찰은
더 단정합니다.
색이 줄어들고
소리가 사라지면
공간의 깊이가 드러납니다.
법흥사 마당에 서니
오늘 걸어온 길이
차분히 정리됩니다.
선돌의 시간,
판운섶다리의 발걸음,
요선암의 물빛이
한 자리에 모입니다.
절집의 종은 울리지 않았지만
마음속에서는
잔잔한 울림이 남았습니다.
선돌에서 시작해
판운섶다리를 건너고
요선암의 돌을 지나
법흥사에서 멈추는 길.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 하루였습니다.
영월은
크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깊이 남습니다.
겨울이 끝나기 전에
이 길을 한 번
천천히 걸어보셔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