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휴, 단종이 머무르던 곳 청령포

by 원 시인

강은 원래 길입니다.
어디론가 흘러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


그런데 청령포의 강은
누군가를 세상 밖으로 밀어내기 위해
돌아 흐른 것처럼 보입니다.

IMG_8596.JPG 청령포

삼면이 물로 막힌 땅.
배를 타고 들어가야 닿는 공간.
섬은 아니지만, 섬보다 더 고립된 자리.


이곳에
조선의 어린 임금
단종이 머물렀습니다.


열일곱.
왕이기엔 너무 어렸고,
죄인이 되기엔 아무것도 몰랐던 나이.


청령포에 들어서는 순간
바람이 다르게 붑니다.
강물이 낮게 숨을 쉽니다.
소나무 숲은 하늘을 가리고
세상의 소리를 한 겹 덜어냅니다.

노송들은 곧게 서 있습니다.
굽지 않습니다.

IMG_8629.JPG 600여 년이 된 관음송


마치 무언가를 끝까지 지켜보았다는 듯이.

나는 천천히 숲길을 걷습니다.
발자국 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이곳에서는 말보다 침묵이 더 무겁습니다.

IMG_8671.JPG 단종어소

단종이 머물던 어소 앞에 서면
권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 생각하게 됩니다.

왕이었지만
아무것도 지킬 수 없었던 시간.


그러나 역사는 묘합니다.
폐위되었던 왕은
세월이 흐른 뒤 복위되었습니다.


사람의 권력은 사라졌지만
기억은 돌아왔습니다.


강은 여전히 그 자리를 맴돌고,
숲은 여전히 그늘을 드리우고,
하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푸릅니다.


요즘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촬영지로 다시 주목받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장면을 떠올리며.

하지만 청령포의 진짜 이야기는
화면 밖에 있습니다.


여기서는
강이 말을 합니다.

“흐르는 것이 다 떠나는 것은 아니다.”

IMG_8684.JPG 청령포입구의 단종과 정순왕후 사랑 "천상 재회"

청령포는
역사를 공부하는 장소가 아니라
자신의 시간을 마주하는 자리입니다.


강이 감싸고,
숲이 품고,
시간이 낮게 흐르는 섬.

영월 휴의 첫 장
이곳에서 시작되는 이유입니다.


강은 사람을 가두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스스로를 가두었음을
보여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