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말이죠, 일본 문화가 금지되어 일본 영화를 대학 내 영화제에서나 몰래 볼 수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웃 대학 운동장에서 여름에 열렸던 영화제를 찾아가 모기에 뜯겨가며 처음 봤던 일본 영화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였습니다. 그 하얀 영상이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그리고 그 스토리는 얼마나 또 애절했던지 20대 초반 대학생의 마음을 푹 적셔놓았었습니다.
이런 대학 영화제에서 봤던 영화 중 또 기억에 남는 것은 기괴함의 끝판왕인 라스 폰 트리에의 <킹덤>이었으니 아주 극과 극을 경험했던 셈이네요. 요즘에는 이런 이상한 영화들이 많지만 그 당시만 해도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일본 영화에 대한 인상을 심어준 그 영화 <러브레터>는 이와이 슌지 감독과 빼어난 영상도 유명하지만, 역시 여주인공 나카야마 미호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느닷없는 그녀의 사망소식에 다시 그녀를 처음 알게 된 옛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옛 시절을 추억하기에는 물리적인 뭔가가 필요합니다. 특히 영화에 대해 기억을 더듬고 싶을 때 가장 요긴한 건 바로 영화음악 OST이죠. 영화 <러브레터>는 아름다운 영상을 받쳐주는 작곡가 레메디오스의 OST도 많은 사랑을 받았었습니다. 이름만 알려졌던 작곡가 레메디오스는 나중에도 이와이 슌지감독의 영화를 여러 편 같이 작업했던 분인데, 알고 보니 레이미라는 가수로 영화 OST작업을 할 때만 이 이름을 사용했더군요.
먼지가 쌓인 CD를 꺼내보니 뒷면에 영화의 모든 정보가 알차게 들어있습니다. CAST처음으로 등장하는 게 바로 Miho Nakayama라는 이름이고 중간에 감독이름과 아래 작곡가 REMEDIOS도 눈에 들어옵니다. 제가 샀던 날짜인 11.20.99가 적혀있군요. 당시에는 이런 기록에 정성을 들였던 것 같습니다. 왜냐면 CD 한 장을 사려면 큰 마음을 먹어야 했던 학생이었으니까요.
내지의 그다음 페이지는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길거리의 아웃포커싱 장면이 등장합니다.
아래 러브레터의 예고편에 등장하는 피아노 연주곡 Winter story는 CD의 내지를 보면 8살의 Yui Makino라는 어린아이가 연주했다고 설명되어 있군요.
저는 OST 중에서 당시 유행하던 전자 올겐의 소리가 너무나 서정적이고 아름답게 들렸던 His smile을 가장 좋아했었습니다. 오늘은 미호를 추모하며 Her smile로 제목을 바꿔서 들어봐야겠습니다. CD player가 없는 시대에 CD는 꺼내서 사진을 보고 추억을 회상하는 용도이고 음악은 Youtube로 듣게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