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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 Jun 16. 2022

메모들

소리가 잊혀 간다. 소리는 원래 거기에 있었으나, 사라지고 있었다. 사라짐이 익숙한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다. 물이 바닥을 조금씩 점령해  무언가 쓸려 나갔다. 창밖엔 이름을   없는 거대한 수초가 물을 기다리고 섰다.


돌이 중심을 잃는다. 돌은 원래 물 아래에 있었다. 붉은색 이끼가 그것을 감싸고, 물결이 세질 때마다 돌은 그 흐름과 함께 물밖으로 나아갈 마음의 준비를 한다. 돌이 이야기하는 것은 해방이나 이동이 아니라 보는 것. 시야를 갖는 것.


*


비가 많이 오는 오후에  밖을 나서면 금방 운동화가 젖는다. 열심히 피해 걷는, 움푹 파인 물웅덩이가 검다. 검은 웅덩이 아래 연한 색의 돌이 비와 만나 있다.   다음자갈 박힌 돌길이 나온다.


나는 그 길을 걸어, 집 주변을 빙 둘러 걸어 머리를 자르러 갔다. 무거운 검은 머리를 덜어내러 갔다. 미용실에서 만나는 밝은 빛을 상상하며 어둑어둑한 빗길을 걸었다. 2주 전에 머리를 잘랐는데도 여전히 머리카락이 무거운 것은 여름 때문이다.


미용사는 나에게 왜 머리를 또 자르는지 물었다. 머리 말리기가 귀찮아서라고 나는 말했다. 정말 그랬다. 긴 머리카락은 습한 날씨에 잘 마르지 않는다. 더워서 머리를 묶고 싶어도 머리가 다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머리를 자르면 머리를 감는 것도 간단해질 것이었고, 또…


머리를 자르고 운동을 갔다. 머리끈에 간신히 묶인 머리카락을 보며 잠시 후회했다. 그렇지만 간단한 후회. 그 정돈 충동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계속해서 그 충동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제에 비하면 아무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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